우리 무슨 사이야?

by 마른틈

관계에는 늘 정의가 필요하다. 정의가 없는 관계는 방향을 잃고 불필요한 오해와 상처를 남긴다. 그 무분별한 방향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가, 허무로 고꾸라진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할 때 그 관계는 안정적인 틀을 갖춘다.

여기 그 관계에 대한 정의를 시스템으로 규정하는 세계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이다. 스치는 삶 속의 무구한 인연은 익명으로 사라지지만, 게임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름으로 정의된다. ‘길드원’, ‘파티원’, ‘친구’, ‘커플’같은 이름으로. 그 이름에 따라 우리는 서로에게 역할을 자발적으로 부여하고 시스템은 그것을 제도처럼 규정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커플’, 즉 ‘커플 캐릭터’라는 관계는 참 독특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커플’이 아니라 ‘커플 캐릭터’라는 것이다. 따라서 캐릭터 뒤에 있는 사람과의 실제 관계는 반드시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남녀라는 흔한 이성적 구도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내 아내가 게임 속에서 결혼했어요. 이거 바람 아닌가요?”라며 몇 달간 마음앓이를 하던 한 남편이 있다. 그는 결국 아내의 게임 속 ‘남편’과 삼자대면을 자처했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귀여운 중학생 여자아이였다.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는 밥을 사 먹여 보낼 뿐이었다.


이 ‘커플’이라는 관계는 생각보다 많은 게임에서 시스템으로 규정된다. 물론 게임의 분위기와 장르마다 적용되는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대체로 게임 내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로운 *버프와 서로의 소속감을 충족시켜주는 특별한 *타이틀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일부 게임은 결혼식을 올리고,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뒤풀이 격으로 레이드에 나서는 풍경까지 마련된다.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결혼식과 거의 진배없다.


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가진 생각을 품고 산다. 설령 쌍둥이라 해도 성향의 간극은 아득히 머니 모니터 너머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관계의 정의가 서로 달라 오해를 빚고 상처로 번지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단순히 게임 속 이득만을 원했던 이와 달리, 그 너머 깊은 교감까지 갈망했던 이는 헛도는 대화 속에서 꼬여버린 관계를 예감할 것이다. 또 어떤 관계 속의 무게추는 각자의 기대치와 우선순위가 달라 불필요한 충돌을 낳고 만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방구석 게임 속 남의 이야기 같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당신이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당신도 ‘현생’이라는 게임 속에서 수많은 캐릭터와 얽히며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ㅡ. 그렇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일시적으로 그 관계를 규정할 수는 있겠으나 끝내 지탱할 수는 없는 시스템처럼, 현실의 관계를 만드는 것 또한 법과 질서가 아닌 당신과 나, 우리의 상호 작용이다. 그 관계가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든, 인간은 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며 그렇지 못하면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한다. 마치 게임 속 버프와 *디버프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고, 끝없이 겹치고 충돌하며, 끝내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것처럼.


그러니 이제, 작고도 복잡한 이 세계에서

조금은 더 솔직하고 치열한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SYSTEM NOTICE]

플레이어 “마른틈” 님이 “독자” 님께 청혼했습니다.

[ 수락 ] [ 거절 ]


버프 효과: 경험치 획득률 +10%, 체력 회복 속도 +5%

타이틀 획득: [나만의 독자]


*타이틀: 특정 조건을 달성했을 때 얻는 칭호,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부여하는 장치

*버프: 게임 속에서 캐릭터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해주는 이로운 효과

*디버프: 게임 속에서 캐릭터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