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말은 귓속말이 키우고 밤말은 로그가 남는다.

by 마른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던가. 아무리 은밀한 속삭임이라도 당신이 모르는 사이 새와 쥐가 들어 외부로 흘러나간다는 뜻으로, 결국 언제 어디서나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물론 이 흔해 빠진 격언을 모르는 이가 없겠으나,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말실수를 하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사정이 조금 더 무거울지 모르겠다. 흘려보내면 그만일 말도 그곳에서는 ‘기록’으로 남는다. 버튼 한 번으로 찍히는 스크린샷과 시스템로그는 지워지지 않는 증거가 된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 몇 명에게 남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마른틈씨는 여전히 진성게이머였다. 그녀는 자신이 성별과 관계없이 실력 있는 플레이어라고 여겼다. 그래서 게임을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남에게 얹혀가는 여성 플레이어를 보면 얼마쯤 계몽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꽤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그녀는 누구나 향상된 실력으로 다음 레이드로 향하고 싶을 것을 굳게 믿었다.


“언니, 할 수 있어…! 그렇지…! 지금은 딜 타이밍이니까 버프를 주면 돼! 옳지…!”

“이…이렇게…?”

“응, 응, 너무 잘했다. 우리 한 번만 더 해볼까?”

“정말…? 그런데…나 여기까지만…피곤해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아…그래? 알겠어! 수고했어!”


마른틈씨는 그녀들의 적당히, 편하게 얹혀가고 싶었던 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훗날, 친한 길드원에게 “걔네가 너 존나 나댄다고 뒤에서 씹어”라고 전해 들으며 그들끼 대화가 담긴 수많은 메신저의 스크린샷을 건네받게 된 것이다.



[메신저 1]

B: 아 진짜 마른틈 또 시작이네 ㅋㅋ

C: 아니 걍 가만히 있지 누가 알려달랬냐고 ㅋㅋ

A: 그니까... 어차피 수요일이면 길드에서 데려가주잖아….

B: ㅇㅇ그냥 누워있을래 나 깨주셈~~

C: ㅋㅋㅋㅋㅋㅋㅋㅋ


[메신저 2]

A: 마른틈이 나한테 던전 가재 ㅠㅠ

C: 또? 바쁘다 해~

B: 걘 시간이 남아도나보다 ㅋㅋㅋㅋ

A: *서포터 하는 법 알려준다고…. 내가 이러려고 서폿한게 아닌데….

C: 맞지맞지, 솔직히 개 꿀 빨려고 서폿했지 ㅋㅋ



마른틈 씨는 당황스러웠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니즈가 달랐을 뿐이라 이해했다. 다만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길드 안에서 파벌을 만들고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비방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였다.

그들의 칼끝은 마른틈씨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무개씨, 개인적인 사정으로 바빠서 부탁을 거절했던 홍길동씨, 이유도 없이 미운털이 박힌 김철수씨 까지. 자유롭고 아늑한 그들만의 공간에서는 결국 누구나 한 번쯤 도마 위에 올랐다.


그들은 사실,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과 결핍들을 차마 인정할 수 없어서 원인을 상대에게 돌려 그 마음의 불안을 해소하려 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것을 ‘투사’라고 부른다. 그들과 협동하여 레이드를 격파하려던 마른틈씨의 열정은 자신들의 게으름과 무기력을 직면하게 하는 불편한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게으른 게 아닌, 쟤가 나대는 것’으로 여겨 본인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자기방어이자 투사의 형태가 되겠다.


또한 사람은 집단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을 얻는 존재이기에, 본능적으로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구분하려 하지 않겠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정체성 이론’이라 한다. 단순한 유희 같았을 그들의 뒷담화는 사실 ‘우리’를 공고히 하고, 같은 편이라는 안도감을 주고받는 수단이었다. 동시에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는 ‘우리는 저들과 달라, 저들보다 나아’라는 알량한 우월감을 확인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었다. 친하다고 믿었던 몇몇을 불러들여 본인들의 약점을 서슴없이 드러내 버렸으니 그 순진한 가면이 벗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모든 일을 알게 된 마른틈씨는 고민 없이 그 증거들을 모아 길드장에게 고발했다. “하는 것도 없이 무능한 길마ㅋㅋ”라며 조롱당했던 길드장은 곧장 철퇴를 내렸고, 그들의 무용한 소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들이 무너진 것이 단순히 기록 때문이었을까? 마른틈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이든 온라인이든, 말이 가지는 무게는 감히 재어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책임하게 흘려보낸 말들은 무게를 모르고 달아나 어느 날 갑자기 해일처럼 덮친다. 기록은 그 무게를 지탱할 뿐, 중요한 건 신뢰다. 결국 관계를 무너트리는 건 기록이 아니라 신뢰를 저버린 가볍고 무심한 그 ‘말’인 것이다.




[업적 달성: 입은 가볍되, 로그는 무겁다]

※ 조건 달성

✓ 귓속말 87회

✓ 파벌 내 뒷담화 7일 연속

✓ “그 사람 좀 별로” 10회 이상 사용


보상

- 신뢰도 -100

- 파티원 3명 이탈

- 칭호: [말보다 빠른 손가락]


*서포터: 게임에서 팀원들의 체력 회복, 보호, 보조 능력 강화를 맡는 지원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