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시겠습니까?

게임과 우울의 관계에 대하여

by 마른틈

춘배씨는 온라인게임 마스터다. 정확히는 ‘온라인게임에서 여자친구 사귀기’ 마스터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조금은 의도했나…? 하여튼 그는 피지컬이 좋아 게임을 곧잘 하는 데다, 성격이 친절해 주변 사람들에게 늘 상냥하게 대한다. 그것이 게임을 알려주는 일이든,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든 마찬가지다. 게다가 어느 라디오의 “잘 자요~”를 연상시키는 감미로운 미성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보이스톡에서 함께 대화를 나눴던 여성 길드원들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춘배씨 또한 오는 여자 막지 않는 마성의 남자였으니,


“춘배 오빠, 퀘스트 같이 해요”

“응, 그러자”


그렇게 그는 자연스레 온라인게임에서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감정으로 시작했던 그의 연애는 늘 비슷한 결말을 맞곤 했는데, 춘배씨는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연인들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밝고 활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귀기만 하면 갑자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어딘가 아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남자친구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방식이었을까? 아니면 그전까지 숨기고 있던 병력을 가까운 사이가 되자 솔직히 털어놓은 것일까?


어쨌든 춘배씨 역시 사랑하는 그녀들의 아픈 마음을 최대한 감싸주려 애썼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반려견의 죽음에 슬퍼하던 그녀는 여섯 달이 넘도록 그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새벽마다 술에 취해 걸려 오는 전화에는 상스러운 욕설과 눈물바람이 마구 섞여 있던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기복이 심한 그녀들은 늘 춘배씨와 둘만의 일을 ‘고민 상담’이라는 핑계로 주변에 가볍게도 흘렸다. 그중에서도 뜨거웠던 둘만의 밤 이야기가 게임 속 지인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는 일만큼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테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던 공통적인 그녀들의 특성에 춘배씨는 문득 자신이 슬픔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품게 되었다.


춘배씨는 타인의 아픔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그 감정의 파도를 오롯이 감당하다 보니 종래에는 자신이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공감 피로’라고 한다. 주로 콜센터직원처럼 사람을 응대하는 직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정서적, 신체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감정 쓰레기통’인 것이다.

그래서 춘배씨는 결심했다. 휴애(愛) 기를 갖기로. 게임과 연애 모두 끊고 일상생활에 집중하기로. 마침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에 입사 통보를 받은 참이었다.

춘배씨의 이야기는 단지 개인적 연애담으로만 볼 수 없다. 유독 온라인 게임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우울감과 정서적 상처들. 그가 겪은 고단함은 게임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온라인 게임 속에는 우울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들은 현실에서 겪는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를 게임 속 관계에서 풀어내려 하는데, 게임은 언제든 접속할 수 있고 실제로 마주하지 않고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그렇다. 현실에서는 차마 꺼내기 어려운 말도 그곳에서는 비교적 쉽게 말할 수 있으니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 자신을 더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온라인 탈억제 효과’다.


그러나 이 솔직함이 언제나 득이 되지는 않는다. 마음의 빗장을 열어 솔직해질수록 관계는 현실보다 빠르게 가까워지겠지만 그만큼 감정 소모도 크다. 갈등이 생겼을 때의 진폭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고, 상대를 온전히 알기도 전에 관계는 흔들리기 쉽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소통을 끊는 쪽이 훨씬 손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나 가상이라 해서 관계의 무게가 결코 가벼울 수는 없다. 때로는 현실보다 더 내밀한 감정이 오가기에 그 상처와 단절은 더 아프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조금은 외롭고 우울했던 이들은 반복적인 관계의 단절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로 인해 현실의 관계에서 다시 멀어져 가상 세계로 도피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세계가 단절의 끝이 아닌 관계의 *리스폰 지점이라 생각해 봄은 어떨까. 새롭게 내린 소통의 뿌리가 갈라진 마음의 틈을 조금씩 메워 간다면, 언젠가는 그 위에 용기의 새싹이 마침내 피어날지 모른다. 반복되며 침잠하던 그 마음조차, 결국은 단단하고 비옥한 땅을 이뤄낼 거름이 되어줄 테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음의 토양 위에 피어난 꽃 한 송이는 그곳이 단절에 그치지 않고 회복과 복구의 공간이었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 감정 리스폰을 준비 중입니다...

▶ 잃어버린 마음 복원 시도 중

▶ 회복된 감정 조각: 3/10


[SYSTEM MESSAGE]

당신은 잠시 멈췄을 뿐입니다.


▷ 부활하시겠습니까?

[YES] [나중에]



*리스폰: 게임에서 캐릭터가 사망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 다시 부활하는 것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