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경제의 역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학문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경제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학은 한쪽 지식만으로는 익힐 수 없다. 문과적 사고와 이과적 분석을 동시에 요구하며 삶을 바라보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허나 문학처럼 얼마쯤의 관용이 허용되지도 않을 것이고, 수학처럼 언제나 명쾌한 답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물론 많은 영역에서 수학적 모델과 통계를 대입해 해답을 도출하지만, 급변하는 세계의 복잡성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여전히 한계가 따른다.
만약 경제학이 모든 상황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인류 최초의 거품이라 일컫는 튤립 파동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지.(나는 클래식 메이플 때 튤립 몬스터가 주는 전리품이 가격이 폭등했다가 폭삭 주저앉는 꼴을 보고 그것이 꼭 튤립 파동과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미국 대공황은 어떻고.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 얼마나 많은 가장이 실직하고 가정경제가 박살 났는지 모두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학은 이런 비극을 완벽히 막아내지 못한다. 다만 과거의 역사와 지표를 종합해 미래를 가늠할 근거를 제시할 뿐이다. 그러니 그 학문은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나침반이 되지만, 동시에 늘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에도 경제는 존재한다. 현실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단순한 형태겠으나 꾸준히 신규 아이템들이 생성되고 그것을 둘러싼 수요가 존재하는 한, 그곳은 작은 경제시장과 진배없다. ‘경매장’이라는 시스템 아래 수천, 수만의 아이템들이 전시되고, 구매자는 몇 번의 클릭으로 시세와 물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아이템은 누가 사는 것일까? 그들은 또 어디서 골드를 구할까? 이 또한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폐라는 것이 생기기 전 인류는 ‘물물교환’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상대방에게 필요해야 하고, 동시에 상대방이 가진 것도 나에게 필요해야 하는 번거로운 거래 방식이었다.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곡식과 같은 대체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얼마쯤 번거로운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에는 소지하기 간편한 ‘화폐’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화폐가 많아야 집도, 밥도, 안락한 삶도 가능할 테니 일단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동자가 되어 하루의 일정 시간 동안 노동의 가치를 제공하고 화폐를 수급하지 않겠나.
게임 속에서도 원리는 같다. 캐릭터가 성장하려면 좋은 장비가 필요하고 그것을 구하려면 골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쌀먹’, 즉 게임에서 번 골드를 현실로 환전하여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오늘도 열심히 벌었다. 이번 달 캔 걸로 유나헬(:유나이티드헬스그룹)이랑 테슬라 담았음”
“미친 인간이 쌀팔아서 주식을 사네, 뭐 이런 신박한 경우가…”
마른틈씨의 지인은 아이 아빠였다. 회사에서 6개월의 육아휴직을 받는 동안, 그는 게임 안에서는 성실한 골드 채굴자였고, 현실에서는 육아에 집중하는 열성 아빠였다. 생활비는 부부의 수입으로 충당하고, 게임에서 번 돈은 환전해 주식을 샀다. 주식의 명의는 그의 아이 이름으로 해두었다고 했다. 수면시간도 부족하도록 열심히 사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우리 애가 풍족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게 해 줄 거야”
“마른틈, 빨리빨리! 빨리 돌자”
“나 밥 좀 먹고 하자, 왜 이렇게 재촉해”
“돌고 먹어. 빨리 돌고 나온 거로 밥 시켜 먹을래”
물론 게임에서 번 돈으로 담뱃값이나 끼니를 해결하는 이도 있었다. 현실의 잣대로 보자면 그들은 ‘도태된 인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허나 마른틈씨가 지켜본 바로는 대부분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라, 그것이 어떤 형태와 의도든 간에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른틈씨는 여러 해 동안 게임 속에서 골드를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골드를 사던 시절에는 오롯이 게임 속 성장과 플레이 자체에 집중하며 몰입을 즐겼다. 이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위한 것으로 ‘보상 심리’의 관점에서 ‘내적 동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골드를 팔던 시절에는 게임 속 자원이 현실의 가치로 환산되는 구조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발견했다. 이는 반대로 ‘외적 동기’가 될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무언가의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한다. 그것이 성취감 같이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든, 실질적인 금전이든, 형태는 다를지언정 모두 가치를 가진다. 다만 그 가치는 늘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마른틈씨처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물론 게임 내 현 거래 행위는 많은 게임사에서 규제하는 행위이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와 동기가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그 삶이 도피처이자 유일한 수입원이기도 하며, 또 다른 이에겐 시간과 노력을 단축해 빠르게 성취감을 얻을 투자방식이기도 하다. 각자의 처지에서 그 가치는 늘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렇게 그곳은 단순한 가상 세계가 아닌 또 하나의 경제 생태계가 된다.
중요한 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현실 못지않게 복잡하고 치열하다는 것. 그리하여 누구든 자신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얻었다면, 그 또한 값진 경제활동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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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틈씨는 ‘거시경제’와 ‘미시경제’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늘어놓으려다가 문득 이 글의 정체성을 깨닫고 멈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