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존재부터가 경쟁으로 시작된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되기 위한 그 과정부터가 이미 치열한 경쟁이었다. 잊지 말자, 우리는 2억 대 1의 경쟁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하여간에 그렇게 태어난 인간은 죽을 때까지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유아기에는 누가 먼저 걷고 말을 떼느냐를 두고 부모의 마음을 애태우는 경쟁이 시작된다. 지적 능력이 깨어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12년간의 입시경쟁에 뛰어들 것이며, 그렇게 차지한 대학에서도 성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 경쟁을 치르고, 직장에 들어간 뒤에도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업무성과와 인사평가에 속절없이 휘둘리며 더 빠른 승진과 안정된 미래를 꿈꾸며 싸운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일조차 경쟁의 연속이다. 더 나은 조건, 더 매력적인 외모를 갖춘 상대를 만나기 위한 다툼은 일생일대의 경쟁이다.
배우자를 만나 더 크고 넓은 집을 마련하고, 그 안락한 공간에서 우리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또래 아이들과 수차례 경쟁하며 자라날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그 경쟁에서 유리하도록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서고, 그렇게 자란 자녀가 배우자를 만나 손주를 안겨주기까지 그 생은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핏속에는 경쟁의 DNA가 각인된 셈이다. 그것을 우리는 ‘승부욕’이라고 부른다.
게임도 예외일 수는 없다.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게임사는 콘텐츠 대부분을 *라이트유저를 위해 가볍게 설계할 것이다. 허나 *헤비유저들을 위한 콘텐츠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사의 진짜 수익을 내는 ‘고객’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 고객들은 자신의 분신 같은 캐릭터를 *종결 스펙으로 키워낸다. 그들의 니즈는 단 하나, ‘내 장비가 얼마나 돈 값하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무대다. 즉, 경쟁이 되겠다. 실력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순위표. 그리고 그중에서도 1등에게 부여되는 ‘명예’. 그것이 그들의 성취감이자 목표다.
마른틈씨는 어느 게임의 길드장이었다. 자고로 길드란 길드원의 필요로 정기적으로 파티 사냥이 꾸려져야 하는 것이니, 그 던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곳은 클리어 시간이 기록되어 파티 별로 순위가 매겨지고 1등을 거머쥔 파티에게는 명예로운 칭호가 주어졌다. 그 순위는 달마다 갱신되었으며, 지급되는 칭호에는 종결 급 효과의 버프가 부여됐다. 오직 압도적인 성과를 낸 파티원들에게만 지급되는 그 칭호는, 닉네임 뒤에 후광이 비치는 듯한 간지를 풍겨냈다.
마른틈씨는 길드원들과 협동해 1등을 거머쥐었다. 물론 초 단위, 아니 소수점 단위로 뒤집히는 경쟁에서 1등을 기록하려면 단순히 장비만 좋아선 안 되었다. 얼마쯤의 운과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요령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른틈씨는 서버 내에서 그 방법을 아는 소수의 인사였다.
“음, 들어가자마자 전부 은신 써주고 A씨만 정령 꺼내놔요. 보스가 정령 인식하면 광폭 버프 받아서 바로 해제시키고, 1그룹 속박. 그동안 내가 버프 관리하고, 싸인 주면 1그룹 은신. 2그룹 동시 봉인 스킬 발동. 타이밍 잘 맞추고, 한 번에 가야 해. 알죠?”
그리하여 얻게 된 칭호는 곧 길드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들은 타이틀을 방어하기 위해 매달 순위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콘텐츠는 헤비 유저들의 명예 욕구를 정확히 자극한 것이니 본데없이 뛰어든 자들은 다만 요령이 없어, 값비싼 장비에도 마른틈씨의 파티에 참패하는 이유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경쟁의 세계는 언제나 냉정한 법. 마른틈씨와 그 파티원들은 한 번 맛본 유일무이한 칭호가 주는 고양감에 보안을 철저히 하였으니, 그들은 끝내 이룰 수 없는 성취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날마다 마른틈씨와 그 파티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그저 반복적인 보스의 패턴과 반응속도, 딜레이 계산을 종합한 약간의 요령으로 쌓아 올린 기록은 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을 테다. 그것은 곧 ‘*GM 친목 설’과 ‘운영진 개입’같은 음모론으로 변질되었으며, 길드를 이끌던 마른틈씨는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과 욕설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종래에는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길드원들마저 무차별적인 귓속말 테러에 시달렸다. 그 정도가 도를 지나쳐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순간, 그녀는 그간 고생했던 길드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길드를 해체했다.
우습게도 사람들은 익명성인 보장된 공간에서 오히려 더 진실해진다. 마주하고는 차마 꺼내지 못할 말도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탈 개인화’라고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뱉는 말은 하염없이 가볍고, 그것을 키보드로 쳐내는 손가락 역시 경박하다.
마른틈씨에게 쏟아진 비방과 루머, 악의적인 성희롱들 또한 그 익명성의 그림자 속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이 분노했던 건 사실 어떤 ‘비밀스러운 편법’이 아니라, 끝내 따라잡을 수 없었던 누군가의 실력이었다. 그것이 못내 억울하였으나, 차마 인정할 수 없던 그들은 그 감정을 ‘증오’라는 방식으로 해소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분노의 방향이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면, 그 칼끝은 마른틈씨가 아닌 시스템을 향했어야 했다. 허나 그 분노가 그녀에게 향하는 순간 결국 단순한 분풀이로 전락해버렸고, 종래에는 타인의 성취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데에만 몰두하여 스스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마른틈씨가 떠난 뒤 그들은 기어이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비워졌기에 얻은 것이지 이겨서 빼앗은 자리가 아니지 않겠나. 그녀의 기록은 결국 깨지지 않았고, 그들이 이룬 1등은 결국 우물 안 개구리의 환희였을 뿐이다.
[쪽지]
●●●: 님 *클탐이 어떻게 저렇게 나와요? 핵 써요?
■■■: 혹시 운영자 딸임?
▲▲▲: ㅋㅋㅋㅋ 함 했어요? 1등 하려고?
★★★: 나하고도 비법 좀 나누면서 술 한잔할까?
*라이트유저: 게임에 가볍게 참여하는 유저. 일일 접속 시간이나 플레이 강도가 낮음
*헤비유저: 게임에 깊이 몰입하고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유저. 보통 경쟁 콘텐츠나 고 난이도 콘텐츠에 주력
*종결: 더 이상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는 최고 수준의 스펙 또는 장비 상태를 의미
*GM: Game Master의 줄임말. 게임 내에서 운영 및 관리를 담당하는 관리자 또는 운영자.
*클탐: 클리어 타임’의 줄임말. 던전이나 콘텐츠를 클리어하는 데 걸린 시간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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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기록은 모두 실제로 들어본 말의 순한 맛 버전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