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숨은 MVP에게 박수를

by 마른틈

인류의 역사란 곧 협력의 장이었다. 위험천만한 원시의 환경에서 홀로 살아남기에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존재였다.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 앞에 그 살갗은 하염없이 연약하였으며 무시무시한 독은 치명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들에겐 없을 지능을 가졌고, 덕분에 효율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뭉쳤다. 삼삼오오 모여 역할을 나눈 것이다. 몇은 불을 지피고, 몇은 무기를 들고, 몇은 기꺼이 미끼가 되어 들짐승을 모는 식으로. 혼자였다면 단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그곳에서 그들은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고 전리품을 나누며 끝내 살아남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그렇게 인류 생존 역사에 각인되어 내려왔다.

그 법칙은 현대에서도 적용된다. 비록 이전처럼 들짐승을 사냥하며 살아남는 시대는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사냥터’ 속에서 살아간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매일 출근하고 무기를 대신하여 지식과 기술을 키워나간다.


개인이 홀로 살아남기엔 세상은 여전히 무정한 것이니 회사라는 조직이 모여 성과를 내고, 국민이 협력하여 국가가 부흥한다. 비록 자유 경쟁 시대가 도래한 이후 치열한 경쟁 속 그들은 일부 상처 입겠으나, 진정한 생존은 결국 모두가 협동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직업군에 따라 부여된 역할이 있으니 탱커는 튼튼한 방어력을 기반으로 앞에서 파티원을 지켜낸다. 그러면 그의 보호를 받으며 딜러들은 보스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고, 서포터는 꾸준히 파티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그중 어느 역할도 중요하지 않을 수는 없다. 대미지를 줄 수 없는 상태에서 몸빵만 하든, 지켜주는 이 없이 싸우다 스치는 공격에 무력하게 쓰러지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서포터 모십니다. 서폿 지원금 5,000 골드”라던가, “서포터 보상 독식 지원”같은 이야기는 불합리의 극치인 것이다. 물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일시적으로 특정 직업군의 가치가 도드라질 수는 있겠지만, 협력이란 그 가치를 단순히 숫자로 매길 수 없는 상호의존의 가치이지 않겠나.




“야 서폿 힐 똑바로 안 굴리냐?”

“제가 님만 보는 것도 아니고, 님도 물약 좀 드세요”

“도구 주제에 혀가 기네?”

“아 못 해 먹겠네! 혼자 하세요!”


게임에는 보통 MVP 시스템이 있다. 레이드나 파티 사냥이 끝난 뒤, 누가 얼마나 그 파티에 기여했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장치다. 가장 직관적인 항목은 보스에게 입힌 피해량이겠지만, 그 외에도 파티원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킨 양, 공격을 대신 받아낸 탱킹의 기여도, 디버프의 효과적인 통제, 적재적소에 투입된 지원 아이템의 활용 등이 평가 기준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금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협력이란 역할을 나누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히 여기며 그 가치에 부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 밤을 새워 자료를 정리하고, PPT를 다듬고, 발표까지 도맡은 조원들 사이에서 혼자만 이름이 누락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현실에는 게임처럼 수치로 기여도를 나타낼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필요할 때 선뜻 나서는 자세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여를 알아보고 온전히 인정해 주는 사람 역시 숨은 주역이라 부르기에 마땅하다. 타인의 가치와 노고를 온당히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팀 내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

협력은 누가 더 앞서느냐의 경쟁이 아닌, 서로에 대한 온건한 인정과 존중, 그리고 책임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니, 그때서야 비로소 MVP 팀이 되는 것이다.



[SYSTEM: 힐러 ‘★마른틈★’이(가) MP를 0까지 소진하며 파티원을 회복시켰습니다.]

[SYSTEM: 탱커 ‘♣노래하는쌤♣’이(가) 화염 드래곤의 *광역기를 대신 맞았습니다.]

[SYSTEM: 딜러 ‘♥해이♥’이(가) 적에게 결정타를 가했습니다.]


[SYSTEM: 당신의 파티가 화염 드래곤을 처치했습니다. 보상 분배를 시작합니다.]

[SYSTEM: 당신의 파티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광역기: 한 번에 여러 대상을 공격하는 기술 또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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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른틈씨는 서폿지원금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개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