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게임만 같으면 좋을 텐데

by 마른틈

솔이는 요즘 어떤 게임에 푹 빠져있다.


그 게임은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캐릭터가 배가 고파한다. 그대로 방치하면 기력이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반드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주변에는 우거진 숲이 있어 직접 나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자연의 열매를 먹다 보면 살도 빠지고 근육도 붙는다. 반대로 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찐다. 살을 빼고 싶을 때는 온천욕을 즐기며 휴식을 취한다.

입고 싶은 옷은 직접 만들어 입을 수 있다. 도안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고, 마감을 한 뒤 예쁘게 염색해 나만의 옷을 완성한다. 재화가 필요하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입시나 면접처럼 스트레스받는 경쟁 과정은 생략된 채 일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는 고개를 돌리면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되는 것이다. 펠리컨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황혼이 물드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누비기도 하고, 탄탄한 근육의 말 위에 올라타 울창한 숲길을 달리며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뜨거운 사막에서는 타오르는 태양과 눈싸움을 하고, 분수대 아래에서 청춘의 한 장면처럼 수줍게 전해지는 빛나고 간질거리는 마음을 엿듣기도 한다.

해가 느릇하게 저무는 저녁이 찾아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광장에는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삼삼오오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따뜻한 불빛을 나누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함께 나눈다. 누군가는 기타를 꺼내고, 또 다른 이는 북을 두드리며 합주를 시작한다. 음식과 음악이 펼쳐진 캠프파이어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는 정답고 온정해서, 어느새 우리는 깊고 진솔한 마음을 주고받는다.


그곳의 주민들은 솔이를 마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처럼 대하며, 별것 아닌 부탁 하나를 들어주었을 뿐인데도 마치 세상을 구한 영웅처럼 경배한다. 버튼 몇 번의 친절조차 크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는 솔이에게 특별한 존재감을 쥐여준다.

만약 솔이가 발을 헛디뎌 실수하더라도, 그녀의 캐릭터는 다시 일어난다. 쓰러져도 언제든 다시 부활하여 실패한 지점부터 도전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까? 아마 그대로 고꾸라져버렸겠지. 다시 일어날 힘조차 남지 않아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을 거야. 하지만 이곳은 몇 번이고 쓰러지고 넘어져도 괜찮다. 아무리 실패하고 쓰러져도 다시 되돌릴 수 있으니,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문득 고개를 돌려 모니터 바깥의 현실을 바라보자면 그 차이가 주는 참담함에 마음이 절로 무거워졌다. 사업에 실패한 뒤 아버지는 알코올에 의지했고,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는 곧 어머니에게 향했다. 원래 아팠던 어머니는 끝내 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방향을 잃은 아비의 분노는 때때로 홀로 남겨진 어린 솔이에게 쏟아졌으나, 그녀는 쥐 죽은 듯 방에 숨어 컴퓨터게임에 몰두함으로써 몸을 지킬 수 있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비는 그렇게 숨어 있는 솔이의 존재를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우중충하게 자라난 솔이는 자신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학교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마주해야 했으며, 그들과 어울리는 일에 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게임 속 세계는 달랐다. 그곳의 얼굴 모를 친구들은 언제나 솔이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었고, 그녀를 필요한 존재로 대했다. 그래서 솔이는 오늘도 그곳에서만큼은,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지며 진정 빛나는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솔이는 종종 생각했다. 삶이 게임만 같으면 참 좋을 텐데.


아픈 엄마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강력한 보스를 격파해, 세상 귀하다는 만병통치약을 구해 먹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가난한 것이 문제라면, 가진 건 근성뿐이니 밤을 새워 몬스터를 사냥하고 전리품을 팔아 돈을 벌어왔을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늘 어렵지만, 등을 맞대고 목숨을 걸어 서로를 지킨다면 비록 소통은 서툴더라도 그 진심만큼 금세 전해졌을 것이다.

사실은 이 삶이 조금은 버겁다고 느껴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게임처럼 처음부터 부활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솔이는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싶어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에 할애했다. 그곳은 그녀를 떠난 엄마도, 술에 의존하는 아빠도 없었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녀에게 게임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회피형 대처’라고 부른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불안을 잠시 잊게 해주는 세계로 도망치는 것으로, 방어기제의 방식 중 하나이다. 허나 그곳은 당장의 고통을 덜어줄는 있어도 근본적인 답이 되어줄 수 없다. 달콤하던 그 세계 뒤편,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게임 속에서 얻은 위안은 그 짐을 대신 들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고개를 돌려 마주한 현실의 간극이 참담할수록 마음은 더욱 현실에게서 멀어지고 만다.


그러나 솔이에게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몇 번을 쓰러져도 얼마든지 부활하여 다시 도전할 수 있던 그곳에 매료되었던 것은, 결국 현실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싶었던 열망이 반영된 마음일 것이다. 다만 그 곁에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도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니, 그런 솔이의 마음을 보듬어 줄 주변의 작은 온정과, 동시에 스스로 그곳에서 걸어 나오려는 용기 또한 필요한 것이다.

‘중독’이라는 것은 주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피하려는 인간적인 몸부림에서 나오는 행태다. 누군가는 술에, 누군가는 일에, 또 누군가는 게임에 자신을 숨긴다. 그 대상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중요한 건 그 숨은 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 것인가, 그리하여 그곳에 숨어 다시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게임이 고단한 현실에 잠시 숨을 돌릴 피난처일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살아내야 하는 건 현실이다. 삶은 게임처럼 로그아웃할 수 없으니, 계속되는 우리의 삶에 얼마쯤 고된 마음을 다독이며 맞서는 것도 결국 각자의 몫인 것이다. 중요한 건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려는 마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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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명 : 현실로의 귀환

▶ 목표 : 게임 속 피난처에서 벗어나 현실로 복귀하라.

▶ 난이도 : ★★★★★

▶ 위험 요소 : 외로움, 두려움, 무력감, 좌절

▶ 보상 : 작은 평화, 일어설 용기, 진짜 나를 만나는 경험

▶ 실패 시 : 영원히 로그아웃할 수 없는 세계에서 길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