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로 입장합니다.
모니터 왼쪽 아래, 익숙한 버튼 위에 멈춘 손이 자못 떨려왔다.
‘LOGOUT’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여전히 실수투성이인 내가, 가시나 잔뜩 세우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종래에는 또다시 숨어들지 않을까. 나는 또 그렇게 겁쟁이가 되어 혼자가 되고 말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튼을 눌렀다. 단조로운 테마음이 울리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화면 속에서 캐릭터들이 머물던 광장의 불빛도, 시끌벅적하던 채팅창도 점점 멀어져 갔다. 남은 것은 무색하리만치 사무적인 폴더 몇 개가 덩그러니 뜬 모니터, 그 옆에 늘어진 컵라면과 식은 머그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나만 비껴가는 듯한 아침을 비추는 태양. 현실은 늘 무심한 법이라, 그 간극 속에서 나는 언제나 조금씩 상처받아왔다.
게임 속에서 나는 수백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영영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과제와 보스도 등을 맞댈 동료만 있다면 몇 번이고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한번 쓰러지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되돌아갈 안전한 리스폰 지점 따윈 없을 것만 같아 늘 두려웠다. 그래서 얼마쯤 안전해 보이는 그곳에 숨어 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렇게 숨어버린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회피할수록 나는 점점 작아져, 언젠가 보이지 않는 점이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현실 세계에 로그인하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신지 않았던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밖으로 나선다. 청명한 하늘은 태평하니,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방향을 무작정 따라 걷는다. 문득 말을 걸듯 살랑살랑 떨어져 내린 낙엽을 주워 들자, 마주한 카페의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음료 드릴까요?”
마음의 준비도 없이 대면해 버린 친절에는 면역이 없는 터라, 한참을 얼어붙은 채 눈알만 도로록 굴리다 갸웃대는 점원의 고갯짓에 그만 “… 달달한 바닐라라떼 주세요…”라고 말해버리고 만 것이다.
의도치 않게 손에 들려버린 라떼를 마시며 카페 의자에 몸을 기대니, 달콤한 향이 잔뜩 굳어있던 마음을 허물어뜨린다. 비록 현실의 인벤토리는 넉넉하지 않지만, 오늘 필요한 건 이 한 모금의 용기면 충분하겠지. 불어오는 바람은 얼마쯤 상쾌하고, 처음 마주한 그 얼굴은 친절했으니.
나의 수많은 밤들은 부끄럽게도 회피와 외면으로 덕지덕지 기워진 나날이었으나, 그 시간 속에 배운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불안을 남 탓으로 돌려 합리화하면 관계에는 혼란만 더해진다는 것.
누군가의 선의에는 존중과 감사가 따라야 한다는 것.
거짓 앞에 진실된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타인의 성과를 인정하는 태도에서부터 협력이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나는 세상에 나아가기로 했다. 아마도 몇 번이고 부딪히고 넘어지겠지. 하지만 괜찮다. 심리학에서는 힘든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했다.
현실의 회복은 게임의 부활처럼 번쩍이는 이펙트도, 화려한 연출도 없고 아주 느리겠지만, 충분한 휴식과 제때 챙겨 먹는 끼니,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정성스레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새 아슬아슬하던 체력 바는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는 도망치기 위해 켜던 게임을 잠시 쉬어가기 위해, 혹은 즐거운 취미로서 켤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모니터 속이 아닌 현실 속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테이크아웃 잔의 라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 마음도 달콤하게 물드는 게 느껴졌다. 의자를 밀고 일어나 걷자, 목적 없이 무작정 남들을 따르던 아까와는 다르게 그 발걸음이 경쾌하다.
머릿속으로 ‘오랜만의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직접 밥 해 먹기’, ‘방 정리하기’ 등의 작은 퀘스트들을 정리해 본다.
어쩐지,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최종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명 : 현실로의 귀환
"아주 멋지고 용기 있는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 보상 :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아낸 기록
▶ 다음 단계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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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닌데 100번째 글이네요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