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승부욕을 불태우는 글, 그리고 써야만 하는 글.
쓰고 싶은 글은 참 쉽게 써진다. 그 동기가 어디서 기인했든간에 문장이 쭉쭉 뽑힌다. 주로 내 감정과 생각을 담을 때 그렇다.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꽤 서툰 인간이지만, 일단 어떤 감정을 품게 되면 속에서 낱낱이 분해하고 해부하며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곱씹는다. 그래서 기복이 좀 있다. 행복할 때는 날아오를 듯 들뜨다가, 우울할 때는 끝도 모르고 무저갱에 처박힌다. 그럼에도 행복의 역치는 낮고 불행의 역치가 높은 나는 대체로 꽤 괜찮은 기분으로 살아간다. 단 하나의 트리거만 건드려지지 않는다면 그렇다.
나의 감정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자기효능감을 쥐여준다. 나는 분명 말실수도 잦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 나와 타인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하고 글로 풀어쓰는 과정은 당시의 감정을 솔직히 마주할 용기를 준다. 물론 내가 얼마나 쪽팔리게 굴었는지 곱씹는 순간마다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지만, 그럴수록 글은 더 솔직한 날것의 감정으로 써진다. 글은 진정성으로 쓰는 것이라 믿는 나는 언제나 호빵맨이 자기 머리 일부를 뜯어내 기꺼이 나눠주는 마음으로 쓴다.
승부욕을 불태우는 글은 우습게도 상대가 나다. 세상에는 나보다 개쩌는 필력의 소유자들이 많고, 글을 읽다 보면 “미친,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해내지?” 싶을 만큼 기막힌 소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언제나 나와의 싸움인 것이다. 내가 정해둔 기준선. ㅡ나는 여기까지 할 수 있어, 이쯤이 내 역량이야ㅡ 라고 정해둔 선을 넘어보고 싶을 때 쓰는 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점수도 기록되지 않지만 나는 나와 치열하게 싸운다.
그때의 나는 실험정신이 가득한 과학자가 된다. 이것도, 저것도 섞어보면 어떨까. 오 저 소스도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섞인 것들은 종래에 정체성을 잃고, 갑자기 폭발한다. 그 모습은 마치 만화 속 괴짜 과학자가 실험에 실패해 까맣게 그을린 채 재투성이 트림을 내뱉는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면 나는 그 글을 휴지통에 처박고, “휴지통 비우기”까지 눌러버린다. 그 어떤 미련도 남지 않도록. 허나 사실 나는 미련투성이 인간인지라, 비워진 휴지통을 늘 애석하게 바라보며 ‘아까 그 문장’을 찾아 헤맨다. 피 같은 내 새끼를 소중히 하지 않은 업보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완전한 딜리트를 누른다. 이해되진 않겠지만 그것이 내가 쓴 헛소리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그 헛소리를 다시 찾아내는 과정 또한 분명 나의 몫이다.
보통 이런 글을 쓸 때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조금 더 흔하지 않은 문장을 쓸 수 있을 텐데. 이 단어는 아까 썼잖아, 중복은 가독성을 떨어트려. 이 문단은 갑자기 논지를 벗어나지 않나? 읽는 사람이 내가 의도한 시각적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까?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힘을 좀 빼보자. 그렇지만 이 문장만큼은 그들이 읽으면서 꼭 찌르르했으면 좋겠는걸…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수면을 방해하면 몇 번을 뒤척이다 결국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나,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향한다. 그렇다고 잠을 포기한 만큼 신들린 듯 쭉쭉 써 내려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섯 시간 중 세 시간 정도는 휴지통에 원고를 넣었다ㅡ뺐다 하며 씨름하다가, 풍성한 머리숱도 쥐어뜯고 있을걸. 그러다 간신히 한편을 마무리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뿐이다.
아침 해를 보고서야 무거운 몸을 뉘면 피폐물이 별건가 싶다. 이게 바로 피폐지. 껄껄. 이미 지난 밤에 타이밍을 놓친 밤손님도 방문을 자제하시니 고무적이다.
가끔 잊히지 않는 명장면을 마주할 때면 그 마음이 사무치게 서럽고 애잔하다. 찬란하도록 시리게 쏟아지는 감정을 온전히 담아 나도 그것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상상도 재능도 부족할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애절하고 처절해서 읽고 나면 진이 다 빠지도록 감정이 쏟아지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꼴에 순수문학이나 추구하는 나는, 역설적으로 소설 정도는 상업적으로 써야 한다는 마인드라 아마 웹소설이나 쓸 것 같다. 검은 머리에 빨간 눈동자의 괴물 북부 대공님이 무해한 자작 영애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나 쓰려나. 푸하하.
나는 웹소설 읽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덜하지만 셀 수도 없이 많이 읽었다. 허나 단언컨대 그렇게 많은 웹소설 중 문학적 가치를 가진다고 여긴 것은 딱 두 작품뿐이었다. 나는 가끔, 종종, 늘. 승부욕을 불태우지만, 그 끝에는 언젠가 그런 소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써야만 하는 글은 기한이 정해져 있는 글. 흥미에 기반하지 않은 글이다. 그러니까 과제가 그렇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우습지만 글을 잘 쓴다는 건 꽤 편리하다. 여기서 잘 쓴다는 기준은 엄청난 문학적 감수성이라던가, 개쩌는 필력과는 결을 달리한다. 주제를 받고 그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즉 과제, 기획서, 보고서 같은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글을 적당히 쓸 줄 알면 이런 것들을 받아드는 데 부담이 없다. 괜히 현대사회의 기본 소양이 글쓰기라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정해진 기한 속 꽉꽉 들이찬 스케쥴을 보며 “잠은 죽어서 자…”같은 헛소리를 습관처럼 내뱉는 요즘이지만, 적어도 승부욕을 일으키는 글처럼 머리를 쥐어뜯지는 않아도 되는 것이다.
허나 AI 의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요즘,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지르진 않았는지 그들도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쏟아지는 감정을 조금 무정한 단어로 덤덤하게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과제할 때 글을 적당히 못 쓰는 척 연기한다. 매끄러운 문장을 부러 뒤틀고, 자주 쓰는 단어 대신 조금 평범한 단어를 골라내며. 그래서 그게 조금 고역이다. 오… 내가 썼지만 졸라 재수 없어…
그렇다면 이 글은 무슨 글인지도 알려줘야겠지. 이 글은 ‘쓰고 싶은 글’이다. 정확히는 제출 마감일이 돼서야 겨우 그 주제를 확인하고 키보드를 터트려서 두 개의 과제를 쳐내고 빡쳐서 쓰는 글이다. 말했지만 글로써 감정을 풀어낼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행위다. 그래서 이만큼 쓰는 동안 화가 좀 가라앉았다. 여기까지 읽기 전까지 여러분들은 내가 평소처럼 진지 감성충이나 하러 온 줄 알았겠지? 내가 괜히 아무 말에 띄웠겠나. 하하.
아ㅡ 오늘은 발뻗고 제때 자야겠다.
+ 교수님ㅁㄴ납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