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라기엔.. 한참 전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평소에 읽던 작가의 책이 아니라서 별다른 기대감 없이 읽었는데, 뜻밖의 위로를 받게 되었다. 어렵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소한 위로를..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나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일찍부터 찾아 안착했는데,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인 것 같고..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런 마음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은 인생에 대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그 마음을, 단정 짓지 않고 조용히 옆에 두는 방식으로.
“인생이 일회용인 것도 힘든데, 그 인생은 애초에 공평치 않게, 아니 최소한의 공평의 시늉조차 없이 주어졌다.” (p.11)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진짜로 알게 된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비교하게 되는 우리에게, 이 문장은 지금 그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 (p.72)
늘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크게 이뤄내지 못한 한 해가 가끔은 내가 그동안 뭘 한 걸까.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열두 달은 생각보다 짧고, 십 년은 생각보다 길다는 이 문장이 어깨를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떠난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 그냥 떠난 사람일 뿐이다.” (p.122)
이 문장을 읽고,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 관계를 먼저 정리한 사람, 먼저 회사를 떠난 사람들. 우리는 쉽게 ‘졌네, 이겼네’ 이야기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떠난 것일 뿐.
“젊을 땐 확실한 게 없어서 힘들고, 늙어선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p.137)
그 불안은 나만 겪는 게 아니었다.
확신 없이 결정하고, 막연하게 감당하고 있는 이 시기가 괜히 덜 초라하게 느껴졌다.
“되면 한다”가 아니라 “하면 된다”였으면 좋겠다. (p.141)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가 떠올랐다. 결국 중요한 건 ‘가능성’이 아니라 ‘의지’라는 말. 쓰고 싶으면 그냥 쓰는 것. 간단한데 자주 잊는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다.” (p.151)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버텼기 때문에.
이유 없는 버팀조차 의미 있다고 말해주는 문장이었다.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책 속의 문장들
11p
엄지로 화면을 위로 튕겨 올리는 동안에는 잠시 생의 일회성이라는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지속될까? 인생이 일회용인 것도 힘든데, 그 인생은 애초에 공평치 않게, 아니 최소한의 공평의 시늉조차 없이 주어졌다.
72p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102p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 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122p
떠난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 그냥 떠난 사람일 뿐이다. 남아 있는 사람도 위너가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사람일 뿐이다.
137p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141p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때면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계속 쓰면 되고, 되고 싶지 않으면 안 쓰면 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면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 학생들은 '하고 싶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의 마음. 나는 누구에게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몰랐고, 알아도 줄 수 없었다.
143p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151p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고, 그 이유와 방법도 어쩌면 자신만 알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들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 있는지 속속들이 알 도리가 없다.
<단 한 번의 삶>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나만 뒤처진 것 같아도. 사실은 모두들 비슷하게 흔들리며 살고 있다고. 그 마음을, 담백한 문장으로 조용히 건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