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편의점 주인이 잃어버린 파우치를 찾게 되며 시작된다. 파우치를 주워준 노숙자 독고 씨를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엮여 들어간다.
실제 제품명이나 편의점 이름이 그대로 등장해 이야기의 현실감을 높여준다. 동네 골목 어디에서든 있을 법한 사연들이 이어지다 보니,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재미있었다.
오디오북도 만족스러웠다. 여러 성우가 참여한 오디오북은 목소리가 튀어 불편할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제목과 다르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성우들의 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특히 말 더듬는 독고 씨의 말투를 섬세하게 표현해 캐릭터의 삶이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퇴마록 성우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더 반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반전에서는 한 번 더 가슴을 울리는 순간이 찾아와,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머물렀다.
인상 깊었던 문장들
112p
“오늘 밤은 ‘참참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선택해 온 경만의 최적의 조합이 바로 이것이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이것이 경만의 1선발이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하루의 마감이고 빈자의 혼술상 최고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 익숙한 제품들인데, 책 속에서 종종 언급되어 참깨라면을 결국 사 먹었다.
140p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 행복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문장. 그리고 왜 친절이 필요한지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이유.
156p
“편의점에서 접객을 하며 사람들과 친해진 것 같아요.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 감정이 먼저가 아니라 행동이 먼저일 때도 있다. ‘척’이 쌓여 진짜가 되는 순간들.
225p
“고통에 흠뻑 잠긴 뇌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떨쳐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망망대해에 빠지게 된다면, 뇌는 커다란 추가되어 거대한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갈 것이다.”
>> 우울과 고통이 실제로 얼마나 큰 무게로 작용하는지, 비유로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다.
230p
“삶과 죽음의 평균대에서 늘 죽음 쪽에 매달려 있었는데 이제 점점 평균대 위로 올라와 살며시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고 있었다.”
“냉동인간의 뇌처럼 얼어 있던 그곳에 열선이 깔리는 게 느껴졌다. 기억과 현실 사이에 놓인 빙벽이 녹아내리고 있었고, 서서히 빙하 속 매머드 같은 덩어리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의 시체들, 그것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나를 덮치고 있었다. 나는 좀비들에게 뜯기면서도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려 애썼고, 그건 그것대로 견딜 만한 일이었다.”
>> 이 부분은 마치 한 사람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가장 묵직한 구간이었다.
238p
“시간이 지나 고통 속에서 기억을 잃고 겨우 세상에 눈을 뜨고 나서야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연민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소통할 사람을 찾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247p
“자신의 비극을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알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이 가진 힘이 아닐까? 나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절대 지치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대체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냐고? 그녀가 말했다.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252p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아주 단순한 진리인데도, 우리는 늘 잊고 산다.
266p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불편한 편의점은 가볍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웃음도 있고, 마음 끝이 찡해지는 순간도 있고, 읽는 내내 인간적인 온기가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