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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숨 쉬는 것.
살아야 하니 아주 열정적으로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자는 동안에도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먹는 것.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아주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매일 무엇을 먹어야 할지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해 먹기 위해 장을 보러 가는 수고까지 하고 있으며, 재료 손질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해 뭐 하겠는가? 그 무엇보다도 열정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이 생명과 직결된 것을 보니, 나는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대단히 강한 사람인 것 같다. 흠흠.. (다른 사람들도 다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민망하다.)
그렇다면 이런 거 말고 내세울 만한 열정이 없는 거야?
아니 그렇지 않다. 내가 성심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엄청나게 많다. 예를 들면, 게으름 피우기라든지, 멍 때리기라든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야 하는 것들을 모두 뒤로 미룬 채 침대 위에서 한껏 게으름을 부린 적이 있었다. 식사나 화장실에 가야 할 때를 제외하고 침대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열정적인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했었다. 웬만한 열정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것이다.
멍 때리기? 사실 나는 멍 때리기를 완벽하게 수행한 적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멍 때리기의 정의라면 말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건 무엇일까?부터 시작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멍 때리기인 것인가? 나는 지금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건 실패인 건가? 무념무상 그게 가능한 것인가? 아니 근데 벽지의 동그란 무늬는 왜 저런 거야? 계속 보다 보니 징그럽네? 혹시 나 환 공포증 있는 거 아니야? 까지 별 생각을 다 하다가 다시 또 멍 때리기란 무엇인가?로 생각이 돌아온다. 아주 열정적으로 멍 때리기의 정의를 찾는다고 볼 수 있다. 음... 그렇다면 나에게 멍 때리기는 그 본질을 찾기 위한 열정적인 생각의 여행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거 말고 좀 더 생산적인 건 없어?
글쎄. 생산적이라는 것이 돈과 연관된 것이라면 없는 것 같다. 돈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현재 내가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은 그것과는 연관된 것이 없으니 말이다. 예전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 괜찮은 건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어느 날 공기청정기를 보며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7년 전, 공기청정기 한 대를 샀다. 난 숨 쉬는데 열정적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공기청정기만 돌리니 공기가 건조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습기도 구매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두 대를 같이 돌렸는데, 갑자기 공기청정기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우리 집 공기가 이토록 더러웠었나? 싶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러고는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는데, 가습기의 수증기를 먼지로 인식하여 공기청정기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와! “ 웃음이 터졌다. 공기청정기의 삽질을 보고 말이다. 하지만 청정기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게 물 알갱이라는 것을. 그래도 제 딴에는 먼지를 제거하겠다고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것을 보며 ‘엄청나게 열정적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열정은 생산적이지 않아도 효율적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름의 합리화.)
때로는 열정적이게 되고 싶지 않은 것에도 내 힘을 다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소설에 대한 피드백에 관한 것이다. 독자들이 시간을 들여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맙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비판과 비난을 들을 때가 있는데, 물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여지없이 내 멘탈은 박살 나버리고,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상처를 받는 것에 정열을 불태운다. 그냥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도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이럴 때 삽질하는 공기청정기를 떠올린다. 즉, ‘효율적이지 않은 곳에 내 열정을 불태워도 괜찮다.’라고. 하지만 효과가 있을 리가..
그래서 나는 열정의 주체를 바꾸기로 했다. 나에게서 내 글에 열정을 가져주는 사람들에게로 말이다.
그들이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나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알려주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글을 써주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괜찮아졌어?? 좀 의연해질 수 있었어?
아! 그렇게 물어본다면 글쎄.. 괜찮아질 리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있다. 시간이라는 약이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나에겐 꽤 잘 맞는다라는 것. 그래도 다행이지 않는가? 잘 듣는 약이 있다는 게 말이다.
시간아!!! 네가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