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우리 집 식탁은 다목적 책상으로 변한다. 아이는 국어 받아쓰기를 하고, 나는 그 옆에서 원고를 쓴다. 연필, 지우개, 공책, 노트북이 줄지어 놓여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각자 다르다. 아이는 ‘공원, 나무, 바람’ 같은 단어를 또박또박 적고 있고, 나는 그 공원 벤치에 앉은 남주와 여주를 이어 쓰고 있다. 같은 책상 위에 숙제와 글쓰기가 충돌하는 시간이다.
아이의 연필 끝이 바쁘게 움직이던 순간, 불쑥 질문이 날아왔다.
“엄마, ‘바람’이 ‘람’이야, ‘남’이야?”
나는 습관처럼 대답하다가 그만 입을 잘못 놀렸다.
“응? ‘람’ 이지. ‘남’은 남주 할 때..... “
아이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가늘어졌다. 국어 받아쓰기를 하다 말고, 나를 빤히 노려본다.
“엄마, 숙제는 숙제만 봐.”
정곡을 찔렸다. 나는 그저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받아쓰기와 심쿵 장면이 같은 책상 위에서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는 ‘바람’을 외우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은 남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장면에 가 있었다니.
아이의 숙제가 끝나고 방 안이 고요해지자, 노트북만 남았다. 나는 다시 고백 장면을 이어 쓰려했지만 키보드 위에서 손이 멈췄다. 자꾸만 떠오른 건 아이의 말이었다. 숙제는 숙제만 봐.
그 말을 곱씹으니 글쓰기도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지금 당장 마주한 문장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 아이의 국어 숙제가 아이를 조금 더 성장하게 만든다면, 내 로맨스 숙제는 나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준다.
물론 두 숙제는 자주 충돌한다. 제육볶음을 하기 위해 냄비를 불에 올려놓은 채로 대화 장면에 빠져 있다가 고기를 태운 적도 있고, 아이의 받아쓰기 공책에 빨간 줄을 긋다 말고 내 원고에 오타를 발견해 줄 하나 더 긋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와 작가의 모드가 섞여서 깜빡깜빡 전환된다.
하지만 충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이의 받아쓰기를 보면서 ‘단어 하나를 외운다는 게 이렇게 진지한 일이구나’ 깨달을 때가 있고, 원고를 쓰다 아이에게 들킨 순간에는 ‘내가 지금 얼마나 로맨스에 몰입해 있는지’ 새삼 확인하기도 한다. 숙제가 숙제를 비추는 셈이다.
책상 위에서 부딪히던 국어 공책과 원고 파일은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는 받아쓰기를 끝내고 잠이 들었고, 나는 다시 남주와 여주의 고백 장면을 써 내려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아이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숙제는 숙제만 봐.
글쓰기 역시 매일 주어진 숙제 같았다. 내 마음을 다잡고, 오늘은 꼭 이 장면을 완성하자, 하고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숙제를 미루지 않고 끝내야 내 안에 작은 성장이 남는다. 아이가 받아쓰기를 하며 새로운 단어를 익히듯, 나도 원고를 쓰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
숙제를 한다는 건 결국 내가 조금 더 자라기 위해 글자를 하나씩 써 내려가는 일이라는 걸, 아이 덕분에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시작으로, 엄마로서, 또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의 일상을 차근차근 기록해 보려 한다. 아이의 숙제와 나만의 숙제가 매일 조금씩 나를 키워주듯, 이 작은 기록들이 누군가의 하루에도 작은 웃음과 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