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배달 문자가 온 순간, 로맨스는 흔들렸다.

작가지망생의 마감놀이 기록

by 오로라

나는 작가지망생이다. 편집자도 없고, 진짜 마감일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마감놀이’를 한다.


‘오늘 밤 12시 전까지 반드시 이 장면을 끝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 혼자 시험 치르듯 스스로 압박을 주지 않으면 글이 안 나올 때가 있다.

때론 벌칙도 건다. 초콜릿 끊기, 드라마 하루 참기, 반찬추가하기 등. 식탁에 계란말이가 올라오면, 가족은 몰라도 나는 '마감 실패자'임을 안다.


어째 보면 이건 혼자 하는 연극이고, 나만의 게임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놀이 덕분에 문장이 술술 풀린다.


그날도 그랬다. 노트북 앞에 앉아 남주와 여주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쓰고 있었다. 말다툼 끝에 두 주인공의 손이 불시에 맞닿는다.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아오르는 순간,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땡.”치킨이었다.

‘음식이 배달되었습니다’라는 알림과 함께 문 앞에 놓인 하얀 봉투 사진이 도착했다.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남주가 아니라 내 심장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밀쳐두고 현관으로 달렸다. 치킨 봉투를 안자마자 기름냄새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따뜻한 봉투가 가슴에 닿자 이상하게도 원고는 뒷전이 되고, 침샘이 먼저 마감을 맞이했다.

치킨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돌아오는데, 노트북 속 남주는 여주의 손만 붙잡은 채 여전히 말문을 열지도 못하고 있었다.


주인공 대신 치킨이 스토리를 장악한 순간이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맞붙었다.

“지금 먹어야 바삭해. 치킨부터!”

“아니야, 글부터! 네가 정한 마감까지 다섯 시간 남았잖아.”


내 안에서 ‘닭다리파’와 ‘원고파’가 치열하게 싸웠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치킨은 지금이 골든타임이고, 글은 내 의지였다.


결국 나는 중재에 나섰다. 딱 하나만 먹고 다시 쓰자.

(참고로 이런 합의는 언제나 위험하다. '딱 하나만'은 인류 역사상 지켜진 적이 없으니.)


상자를 열자, 양념은 붉게 빛났고 후라이드는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닭다리를 들어 한입 베어 물자 바삭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뜨거운 육즙은 혀를 덮쳤다.

두 눈이 절로 감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닭다리 하나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시 키보드로 돌아와 원고를 쓰려는데, 순간 나는 치킨 광고의 카피라이터가 된 줄 알았다.


"오늘 밤, 당신의 심장을 튀겨드리겠습니다."


나는 기겁하며 문장을 지웠다.

하지만 입술에 스친 기름 냄새가 자꾸 나를 농락했다.

남주의 '뜨거운 마음'은 '뜨거운 튀김'으로,

여주의 '떨리는 손끝'은 '떨리는 닭껍질'로 변해있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엄마, 치킨 왔어?”

“응, 얼른 와서 먹어.”


아이는 태연하게 닭다리를 들고 갔다. 사실 아이는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는 걸 모른다. 늘 “일기 쓴다”라고 둘러댔으니, 지금도 내가 열심히 일기 쓰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양념 묻은 손가락을 펴 보이며 웃는 모습을 보니, 내 거짓말도 어느새 일상의 한 풍경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잠시 후, 퇴근한 남편도 등장했다.

“오, 치킨 벌써 왔네?”

손을 씻고 돌아온 남편은 늘 그렇듯 닭가슴살을 들었다.

"닭다리는 당연히 없네. 역시.."

'아삭, 바사삭, 와하하' 소리만 울렸다.

치킨 협주곡이었다.


나는 침만 꼴깍 삼키며 원고에 다시 몰입했다.

놀랍게도 내가 정한 마감보다 무려 네 시간이나 앞당겨 장면을 마무리했다. 편집자도 없는데 혼자 뿌듯한 순간이었다.


저장을 누르자마자 나는 번개처럼 거실로 달려갔다.

아이와 남편은 자리를 내어주며 반겼다. 나는 닭날개를 붙잡고 크게 베어 물었다.

치킨은 조금 식어 있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식탁 위에는 두 가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방금 저장된 원고 파일과, 먹다 남은 치킨 상자.


글쓰기도 치킨과 같다.

뜨거울 때 바삭하게 써야 제맛이고, 타이밍을 놓치면 눅눅해진다.

눅눅해진 치킨을 먹을 때의 아쉬움처럼, 놓쳐버린 마감은 글맛을 반감시킨다. 그래서 계속해서 마감놀이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치킨은 내 배를 채웠고, 글은 마음을 채웠다.

진짜 마감은 없었지만, 나만의 마감놀이는 충분히 짜릿했다. 그리고 그날의 글맛은 치킨처럼 바삭했다.



이전 01화도우미씨의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