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감정에 약한 사람이 쓴 로맨스 취향 이야기
처음이라는 건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겁이 많아서, 웬만하면 새로운 길을 잘 가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10분 단축!"이라고 열심히 외쳐도 나는 늘 어제 달렸던 길로 간다.
내 인생의 장르가 스릴러가 아니라 잔잔한 일상물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니까.
스무 살 중반쯤, 강사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친척 어르신은 "돈을 벌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굳이 인생을 크게 뒤집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차근차근, 무리하지 않는 페이스가 더 잘 맞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큰 한 방'보다 매일의 온도를 지키는 삶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이.
그렇다고 도전이라는 걸 평생 피해온 건 아니다.
남편 회사에서 번역 일을 제안받았을 때 겁이 났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냈다.
그 일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았다.
도전의 크기나 타이밍은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감정만큼은 너무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도.
이 성향은 소설 취향에도 고스란히 따라온다.
로맨스 소설을 고르려 하면 늘
마트 라면 코너에게 길을 잃는 기분이 든다.
으르렁대다가 사랑에 빠지는 혐관형,
한 사람만 바라보는 일편단심형,
처음부터 상대를 계획적으로 유혹하는 계략형.
모두가 좋지만, 정작 내가 찾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순한 맛.
나의 첫 로맨스 소설은 아주 순했다.
사랑은 잔잔하게 스며들었고,
갈등은 있었지만 속이 쓰릴 정도는 아니었다.
더 나아가 고구마 퍼먹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읽고 나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
그게 너무 좋아서 비슷한 맛을 찾아 헤맸지만
문제는 이런 맛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라면 진열대에서 순한 맛 라면 한 줄을 찾는 것처럼,
'순한 로맨스'도 늘 아랫칸 어딘가에 숨어 있다.
반면 가장 눈에 띄는 건
'핵불닭', '마라'처럼 이름만 봐도 매운맛이다.
순한 맛은 늘 낮은 칸이나 구석에서
"저.. 여기 있어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기다린다.
나는 주저 없이 순한 맛 라면으로 달려간다.
매운맛은 필요 이상으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라면도, 소설도 마찬가지다.
숨 넘어가는 갈등과 폭풍우 같은 사건이 재미지만,
나는 인물들의 작은 마음결이 더 좋다.
'두근' 한 번이 너무 커
심장이 놀라지 않을 정도의 서사면 충분하다.
첫 경험이라는 건 늘 기준이 된다.
나의 첫 로맨스가 순한 맛이었기에
내 취향도 크게 보면 지금까지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질문이 생겼다.
'나 같은 독자가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세상엔 맵기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속이 약해서 순한 맛만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라면도, 인간도, 감정도 체질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순한 로맨스 찾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럼 내가 쓰면 되겠다.
순한 맛을 담당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물론, 내가 쓰는 로맨스 소설이 아주 밍밍하다는 뜻은 아니다.
순한 맛 라면도 가끔은 청양고추 한 조각을 넣으면 맛이 달라지듯
내 이야기에도 위기와 약간의 매운 선택은 들어간다.
다만 기본 국물은 늘 순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노트북을 연다.
마트 라면 코너에서 순한 맛 고르던 그 눈으로
장면을 고르고, 이야기를 쓴다.
라면에도, 인생에도, 그리고 로맨스에도
순한 맛은 꼭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