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고 나서야 천재가 된다

글은 올리기 전이 아니라, 올린 후에야 보인다.

by 오로라

글을 올리는 순간, 나는 잠시 천재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게시 버튼을 누른 직후의 10분짜리 천재.


올리기 전의 나는 그저

"흠...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평범한 사람이다.

심지어 속는 것도 나 혼자다.


문제는 진짜로 올리고 난 뒤다.

게시 버튼을 누르는 찰나,

내 뇌 어딘가에서 자고 있던 신경회로가 '파바박'하고 번쩍 깨어난다.


이름하여 '올리고 후회하기 회로'.

게임으로 치면 자동 발동되는 스킬이다.

기술을 쓰기 위해 에너지를 모을 필요도 없다.


업로드 10분 후면 상황은 이렇게 흘러간다.


"아.. 문장을 조금만 더 다듬을 걸."

"아... 여기서 웃겼어야 했는데.. 나 지금 웃기네?"

"아니.. 왜! 지금에서야 개그 센스가 살아나는 건데! 아깐 뭐 했어?"


그리고 30분간은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지금 고치면 티 나서 부끄러우니까.

이상하게 이런데 서만 내 자존심이 우뚝 선다.

딴 데서는 쭈글이면서.


이 회로를 너무 자주 켜다 보니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왜 나는 올린 뒤에만 천재가 되는 걸까?'

'이게 혹시 숨겨진 나만의 재능인가?'

'아니면 뇌가 장난을 치는 건가?'


결론은 생각보다 과학적이었다.


글 올리기 완료 - 머리가 비워짐 - 빈 공간으로 새로운 아이디어 유입.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집중 모드라 아이디어가 좁아진다.

머리 안이 일종의 글쓰기 안전모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하는 모드.

그러니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전모드니까 차선변경은 최대한으로 줄이고 만다.


또 중요한 사실 하나.

글을 올리기 직전까지 객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독자의 눈이 생긴다.


'완료 버튼' 을 눌러야 안전 모드가 해제되고,

그제야 글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좋은 문장이 늦게 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나의 뇌 구조가 그렇게 생긴 것뿐이라는 얘기다.

이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흠흠.. 내 뇌가 그런 구조라면 뭐.. 이해해 줘야지.


조금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니,

이 후회 회로가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후회가 생기니까 다음 화를 더 잘 쓰고 싶고,

그래서 글을 붙들게 되고,

붙들다 보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의외로 이 회로는 꽤 쓸만한 품질관리 센서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계속 올리고 후회하고,

후회하다가 아이디어를 얻고,

그 아이디어로 다시 쓰고,

또 후회하고를 반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반복이 싫지 않다.

내 글과 내 마음이 서로 발맞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을 올리고 아쉽다고 느낀 건

내가 내 글을 꽤나 좋아한다는 증거고,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의 뿌리에서 오는 감정이다.


그래서 결론.


나는 글을 올리고 후회하는 사람.

하지만 결국은 계속 쓰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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