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메타버스까지

by 고무줄

전자책과 종이책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종이책이 주는 질감과 한 장 한 장 넘기며 자간의 의미를 해독해 나가는 재미는 전자책이 주는 간편함과 신속함에 대비되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얘기한 바와 같이 새롭게 쌓이는 신간과 그 위에 겹겹이 쌓이는 먼지를 보고 있자면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은 또 다른 소유물이자 숙제라고 생각이 된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국민학교 출신의 유년시절이 21세기 최첨단의 다양한 전자 문명을 접하는 시점까지 오게 되며 많은 시간의 발자취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트에 삐뚤삐뚤 적어가는 연필로 쓰는 필기구와 글자체를 예쁘게 쓰고 노트 정리를 하는 것이 모범적인 학생의 대명사에서 현재는 손글씨가 귀해지고,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져 남 보여주기 민망한 손글씨가 자연스러운 시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주말에 허영만의 한강이라는 어릴 때 읽은 만화가 문득 전자책의 검색 목록에서 확인이 되어서 읽은 기억이 있으나, 질곡의 한국사를 그린 정도라고 생각이 되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나갔다.

최근에 아무리 백반 기행과 유튜브 주식방송의 게스트로 빈번하게 접하는 작가이나, 나에게는 아련한 유년시절에서 침침한 만화방 불빛 아래에서 읽던 무당거미의 작가로서 더욱 그립고 친숙하게 여겨지고 있다.

몽상가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림을 그리는 빈농의 자식으로 그려지는 시작에서 2세대의 세월과 사랑, 그리고 현대사. 앉은자리에서 곱씹으며 읽고 나서,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보고 있노라니,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삶의 궤적이 그려지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6.25, 4.19, 5.16, 12.12, 5.18, 6.29....

작가의 말과 같이 근현대사는 달력의 날짜와 같이 지나가고, 어떤 이는 동의하고 어떤 이는 부정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이제 부모님 세대는 늙고 약해지는 기력에 대한 푸념과 회환을 경륜과 추억이라는 대체물로 희석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 자녀세대들은 존재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세대로 끊임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탐닉해 가고 있다.

SNS 공간이나 가상현실적인 게임 캐릭터가 로그인한 사람을 대체하는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며, 부지불식간에 나 또한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가상현실인지 구분이 어려운 세상을 당연히 여기며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허영만 작가의 한강의 시절에 비교하면 물질은 풍요로와졌고,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으며, 불편함의 각종 현상들이 빠르게 소멸 대체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메타버스 세게를 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예전 유년시절에 느껴왔던 희망과 밝은 미소, 따뜻한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고 희미해져 간다고 느끼는 이유는 나 혼자만의 감상일까?


김상균 교수는 지속적으로 미래의 물결과 변화에 흐름에 대비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일상으로 들어온 메타버스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우리 손안에 고성능 컴퓨터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이 나의 감정을 대변하고, 디지털 세계에서 여행을 하며, 일반인도 가상현실세계에서 부케를 만들어 가는 것이 근현대사를 거쳐온 우리들의 모습니다.

저자도 얘기하는 바와 같이 디지털 세계가 빠르게 현실로 접목이 되고 있으며, 가상인간 및 AI 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디지털 환경에서 이러한 메타버스의 세계가 반드시 낙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접근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