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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면 안된다. 당신은 하나다. "서브스턴스"

REMEMBER YOU ARE ONE

by CRANKWITHME


홍보 문구 그대로다. 이 영화는 “Absolutely Fucking Insane”한 영화다.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선 비교할 만한 영화를 찾기가 힘들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식의 영화 전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광기 하나로 똘똘 뭉친 감독이 만든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홍보 문구 그대로 완전히 XX 미쳐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미쳐있냐면, 일단 이 영화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른 기괴한 영화와 비교를 거부하는 것처럼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기괴한 감독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아리 애스터” 감독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두 감독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감상을 영화 곳곳에 꽁꽁 숨겨 놓는다. 그리고 정상적인 영화인 척하다가 어느 순간 기괴함을 드러내면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샘솟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그나마 상식적인 선 안에서 전개되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그 예상이 맞아떨어질 때 관객들은 저마다 쾌감을 느끼고 영화 속에 푹 빠지면서 그 기괴함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러한 영화들과 시작부터 달랐다. 일단 뭘 숨기려는 생각이 없으며 영화 자체가 굉장히 단순하다. 과거 미모로 인한 영광 속에 살던 “엘리자베스”는 영화 시작부터 TV 쇼의 프로듀서에게 단순한 외모 지적을 받으며 쇼에서 내쳐질 위기에 처하고, 그러자 제 2의 몸을 사용하기로 매우 쉽게 선택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꼭 기생충이 숙주에게서 탈출하는 것처럼 기괴하게 그려졌고, 거기서 등장한 제 2의 몸인 “수”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 과정이 영화 서브스턴스의 초반부인데, 어렵거나 복잡한 부분은 전혀 없으며 그냥 내용 자체가 단순하기 그지없다.


내용 뿐만 아니라 인물이나 관객을 자극시키는 소재도 단순하다. 남을 대놓고 모욕하는 말이나 본능적인 감각을 건드리는 아름다움으로 자극 소재를 채웠는데, 굉장히 1차원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수의 아름다움도 다른 새로운 기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굉장히 고전적인 미국의 아름다움이다. 그런 외면으로 인해 영화는 단순하게 전개되는데, 인물 또한 단순해서 남들은 치지 않을만한 사고를 치거나 일을 꼭 크게 만든다. 그로 인한 수와 엘리자베스의 갈등도 단순하며 여기에 다른 영화에는 꼭 등장하는 고뇌나 후회의 순간은 단 한순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바로 엘리자베스와 수라는 캐릭터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과거 아름다움으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많은 선택을 받아왔다. 그 시간은 대략 1~20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1차원적인 아름다움만 원하는 할리우드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타고난 것을 맘껏 누렸고, 그러다 타고난 것이 사라지는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채워 넣질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인 방송으로 의심되는 TV쇼나 진행해야 했고, 그것조차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수는 다시 되찾은 아름다움을 사치스럽게 소비했다. 7일만 조심하면 될 것을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고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이 캐릭터의 한계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두 캐릭터와 영화 자체에 정이 가지 않았다. 분명 아름다움을 무기로 스타가 된 사람은 많지만 이후에 다른 걸 무기 삼아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사람들도 많기에 엘리자베스가 그저 한심해보였고, 그게 수에게 이어지는 것을 볼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렇게 영화는 후반부로 들어갔다. 거기서부터 이 영화의 진가가 나왔다. 그 전에는 너무 자극적이고 단순해서 영화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그 자극과 단순함을 폭발시켜버리는 감독의 연출을 보면서 감탄해 마지않았다. 정말 그간 봐왔던 어떤 영화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고, 그게 이 영화와 감독의 정체성임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감독은 무언가를 숨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차피 예상할 수 없기에 숨길 필요가 없던 것이다. 솔직히 이걸 말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궁금하면 영화를 직접 보는 것이 제일 확실할 뿐. 이런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는 것을 보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수입했을까” 싶다가 이런 행동 하나가 우리나라 영화계를 더 넓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것도 말해 뭐하겠는가. 궁금한 사람은 영화를 보는게 제일 빠르다.


P.S. “당신은 하나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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