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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인가? "엘리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어왔고,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by CRANKWITHME


“우리는 혼자인가?” 이 질문은 영화 “엘리오”가 수 회에 걸쳐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혼자”일 수 없다. “우리”라는 단어에는 이미 자기 자신을 포함한 두 명 이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혼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것을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물어본다. “우리는 혼자인가?” 영어로도 “Are we alone?”인데 이를 봐도 우리는 혼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이런 성립이 안 되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걸까? 이 또 다른 물음에 대해 엘리오는 “우리는 결국 하나이다.”라는 메시지로 응답한다.


영화 “엘리오”에서 엘리오라는 단어는 외계인을 뜻하는 “에일리언”에서 따왔던 것 같다. 그런데 “에일리언”은 외계인뿐만 아니라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주인공 엘리오는 불의의 사고로 엄마가 아닌 고모와 함께 생활을 하는데, 이 속에서 엘리오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고모와 함께 “우리”가 되길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고모는 그런 엘리오를 언제나 바라보고 있었고, 엘리오가 사용하는 언어를 익혔다. 그렇게 엘리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모라는 가족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작게만 보면 디즈니와 픽사에서 항상 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여기에 언어가 결합되면서 영화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같은 말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사상을 공유할 수 있다. 그렇게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정말 다양한 조건들이 더 필요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언어의 특성을 그렇게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에서의 “우리”는 지구와 그에 속하는 국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엘리오와 고모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갔을 때 위기에 처하자 그와는 관련 없던 수많은 국가들이 엘리오가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앞서 계속 되물은 그 질문과 이러한 장면을 통해 결국엔 이 영화는 우리(=가족, 국가, 지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가 되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고, 다른 집단을 만날 수 있으며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서 과연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 혼자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다시금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하나인가? 아니면 어떤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가?”


P.S. “우리는 혼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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