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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를 좇는 우리 모두 "아노라 (Anora)"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이카루스를 바라보며

by CRANKWITHME


영화 “아노라”는 아마 2024년에 본 영화 중에 가장 솔직한 자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일 것이다. 시작부터 이 영화는 이 세상에서 저급하면서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산업을 비춰준다.


“아노라”는 이곳에 속해있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교묘히 감추고 “애니”라는 이름으로 일하며 되는대로 살아간다. 그러다 러시아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반”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자신에게 푹 빠진 이반을 따라 그의 집부터 파티까지 가게 된다. 물론 그 동행에는 돈이 전제된다.


그렇다. 이 영화 속의 소통은 전부 돈에 의한 소통이며 수직의 소통이다. ‘내가 너에게 돈을 지불할 테니 너는 내 말을 따르고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수직적인 방식의 소통이 영화 내내 계속된다. 그런데 이것은 소통이다. 소통은 한쪽에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들어줘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수직의 소통이란 결국 누군가 그러한 말을 듣고 군말 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걸 글로 보고 있자니 역겹다. 본능적으로 역겹고 거부감이 들어야 맞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이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이는 아마 우리가 그만큼 돈과 사회에 익숙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반은 타고난 사람이다. 과거에 극복할 수 없던 신분제처럼 이반은 돈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신분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새로운 신분의 척도는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자본에 익숙해졌고, 비즈니스맨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모두 비즈니스맨으로서 돈을 매개로 일을 시키거나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돈을 수령한다. 이들의 소통 과정에는 돈이 항상 끼어있고 그걸 통해서 상대방을 누르거나 자신의 의도를 내려보낸다. 이렇게 보면 또 잔인한 소통 과정이지만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소통이다.


그런데 여기에 전과 다른 확연하면서 큰 이질감이 드는 순간이 오는데, 그건 바로 이반도 비즈니스맨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이다. 금탯줄 두르고 태어나서 마치 태양이자 신처럼 보이던 이반도 결국 돈이라는 힘 앞에 굴복한다. 세상 편하게 살아오고 누리기만 했던 사람도 그 삶의 원천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누구보다 “타고남”에 대한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돈을 이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고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타고나야 하는 미국 국적도 돈으로 만드는 이반은 자신의 삶의 원천이자 타고난 것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걸 타고나지 못한 아노라도 이반만큼은 아니지만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반과 있으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통제 불능에 어딘가 모자란 20대 덜떨어진 남자아이를 케어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들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이고르”만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고 그 시스템을 거스른다. 절대자처럼 보이는 이반의 부모님에게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고, 아노라와는 수평의 위치에서 소통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혹은 영화는) 그런 그에게도 이러한 것을 더 잔인한 방법으로 이해시키고자 한다.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아노라는 이고르에게 반지를 받는다. 그리고 과거와 같이 그에게 자신을 팔고자 하는데, 이것은 마치 아노라와 이고르에게 현재의 상처에서 도망치고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하며 마주하고 회복하는 것조차 돈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이고르에게도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마 이고르는 이 영화를 보는 나와 같이 씁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태양을 쫓았던 이카루스처럼 태양도 아니면서 태양인 줄 알았던 이반과 돈을 좇은 것이 아노라가 저지른 잘못인데, 과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대가가 이래야 하는 것인지, 아니 애초에 태양 좀 바라보고 좇으면 안 되는 것인지 이고르와 나에게 큰 의문을 남겼으며 그 답으로 영화는 씁쓸함을 안겨줬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것을 탓하거나 고마워해야 하는 현실을 다시 마주했다.


이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과 밀접해있고, 그 이유에는 우리가 있다. 이것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아직도 고민이다. 하지만 적어도 타고난 것에 대해서 많은 탓을 하지도, 많이 기대지도 말아야겠다는 작은 결심은 내릴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수상의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P.S. “고마워. 내 마지막 미국 여행을 재밌게 만들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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