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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4_파리(2) 루브르박물관, 한인의 긍지

ft. 루브르를 더 못 본 것보다 후회된 그날의 실수 & 훗날의 사과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의 영혼에 붓을 담가 자신의 본성을 그림으로 그린다.
-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

예술은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가 경험한 감정의 전달이다.
-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문화 왕국인 프랑스, 파리를 떠올릴 때 세계에서도 가장 대표할 수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3곳의 박물관을 꼽는 표현; 루브르박물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거의 들어감) 중 하나라는 수식어 역시 단골로 따르기도 한다. 당시 내가 파리를 여행한 이 마지막 날에 루브르 박물관을 그다지 열심히 둘러보진 않았지만, 이걸 빼놓고는 파리와 프랑스를 논할 수 없을 거 같아 관련 내용들을 다시 찾아서 적는다.


그리고 그 많은 예술작품들이 있는 곳이기에 예술에 관한 명언들도 찾아봤는데, 위 두 명언이 특히 와닿아 적었다. 또한 아래 톨스토이의 명언은, 사진촬영을 즐기는 나에게 특히 많이 와닿는 말이기도 했다. 사진은 같은 장소에서도 찍는 사람마다 대체로 다른 결과물로 나오는데 그 이유는 첫째, 중요하게 생각하는 피사체가 다를 수 있으며 둘째, 그 피사체에 대한 감정이 다르고 셋째, 앞의 생각한 것들을 표현하는 기법에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무튼, 다양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시공간을 초월해 교류하면서 사상을 더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난 몇 년 전부터 특히 예술 작품들에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예술에 관심이 엄청 높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곳에 있는 작품을 10초에 한 번 본다고 쳐도 4일 정도가 걸린다 하니, 무리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여행은 즐겁게 즐겨야 가치가 있고, 그 떠난 발길이 고달프지 않은 법!

<루브르 박물관 - 나무위키>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1. 개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흔히 꼽히며 파리의 3대 미술관(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루브르 3대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 외에도 명작들이 셀 수 없이 많다. 3동으로 나뉘어있으며 38만 점 이상의 작품을 한 번씩 꼼꼼히 보려면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하지만 중요한 유물 중심으로 돈다면 반나절 혹은 길어봐야 하루 안에 대부분 관람할 수 있다. 실제로 파리에 여행 가는 사람은 반나절 정도 할애해서 다 보고 나오니 부담 없이 들어가도 된다. 정말 중요한 것들만 그려진 안내도.

2. 역사(요약 - 14세기 후반~17세 왕궁으로 사용)
크기가 이렇게 큰 것은 과거에 왕궁이었던 곳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 1202년에 국왕 필리프 오귀스트가 이곳에 성채를 축조한 데서 비롯되었고 14세기 샤를 5세의 시대부터 왕궁으로 쓰였다. 1527년 프랑수아 1세는 중세의 루브르 성 개조를 계획, 전부를 헐어버리고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궁전을 세울 것을 결정, 피에르 레스코와 장 구종이 설계를 담당, 레스코가 현재의 살 데 카리아티드(여인 기둥의 방)와 국왕의 2층 거실을 세우고 내외의 조각 장식은 장 구종이 담당했다.

이후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왕궁의 서쪽에 튈르리 궁전을 세웠고 이후 앙리 4세 시대에 걸쳐 센강 연변에 ‘물가의 장랑’이라 불리는 그랜드 갤러리(그랑드 갈르리)를 증축하여 루브르와 튈르리 두 궁전을 연결시켰다. 이후 이 회랑은 주로 궁정의 화가·조각가·공예 작가 등의 주거지 겸 공방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624년 재상 리슐리외는 건축가인 자크 르 메르시에에게 명하여 루브르 궁 확장 공사를 시행하였다. 1641년 루이 13세의 명의로 니콜라 푸생과 그 제자들이 그랜드 갤러리에 신화를 소재로 한 벽화의 연작을 시도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완성되었고, 1661년의 화재 후, 왕의 거실과 남쪽 복도를 연결하는 프티 갤러리가 재건되고 르 블랑과 그 제자들이 내부 장식을 하였으며, 그 후 이 갤러리 천장 중앙에 외젠 들라크루아가 『피톤을 퇴치하는 아폴로』를 그렸다.

1664년 루이 14세의 재상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루브르 궁을 프랑스 왕의 주요 궁전으로 할 것을 결의, 설계를 위촉하고 기초석도 놓았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왕의 관심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치우쳤으므로 루브르 궁 계획은 일단 마무리되고 1674년에 페로의 안을 채용하여 일단락 지어졌다. 이후 루브르는 프랑스 왕실이 후원하는 예술가들의 주거지로서 파리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되면서 루브르는 국민 의회의 결정으로 궁전에서 미술관으로 개장,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국을 선포,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후 루브르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약탈품과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려는 혹은 나폴레옹이 협박해서 유럽 각지의 왕실에서 기부받은 예술품들로 더욱 화려하게 채워졌다. 또한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루브르에는 수축과 새로운 장식이 가해졌으며 루브르와 튈르리 사이에 카루젤 개선문이 세워졌다. 이후 제1제정이 붕괴되고 부르봉 왕가의 루이 18세가 프랑스 왕위를 되찾았고, 루이 18세는 베르사유로 돌아가지 않고 대신 루브르에 있게 되었고, 이후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를 몰아낸 오를레앙 왕가 또한 루브르에 기거하면서 퇼르리 북쪽에 회랑을 증축해 루브르와 연결시키려고 했으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붕괴되면서 무산되다가 1852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한 제2제정이 들어서면서 파리 개조 계획의 일환으로 루브르 궁 완성을 계획하였으나, 1853년 처음 설계자인 위스콘티가 사망했으므로 루푀르에게 명하여 위스콘티안에 다시 살을 붙여 1857년에 완성하였다.

신관은 이탈리아 풍의 힘찬 조소성, 웅대한 돔 형인 망사르 지붕의 파빌리온 군의 장관으로 제2제정 양식의 대표작이 되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1863년에 시공되어 1868년에야 센 강변에 남쪽 갤러리가 개축되었다. 1871년 파리 코뮌 시기 화재 피해를 입었으며 1884년 재개장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3. 구조
주 전시관은 크게 1) 쉴리 관 2) 드농 관 3) 리슐리외 관으로 나뉜다.

안쪽 중앙에는 루브르의 상징이 되어버린 4) 유리 피라미드가 있다. 루브르가 있던 옛날부터 있던 구조물은 아니며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써 공모하여 만들어진 것. 건축가 이오밍 페이(I.M.Pei)와 그의 피라미드 안이 선정되자 여론이 다들 유리 피라미드가 루브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러자 주최 측에서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이에 건축가는 "피라미드는 영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피라미드가 있는 루브르는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홍보를 했고, 결국 채택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사실상 시작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1989년에 완성되었으며 지금은 아주 성공적인 구 건축과 신 건축의 조화로 인정받고 있다.

에펠탑이나 퐁피두 센터처럼 파리에서 건물이 새로 지어지면 처음엔 욕을 엄청 먹다가 결국 파리의 상징물이 되는 전통을 따른 거나 마찬가지.

잘 알려진 대작, 명작들은 주로 드농 관과 쉴리 관에 있으므로 짧게 관람하려는 사람들은 참고하도록 하자.

4. 소장품
루브르는 고대 중근동이나 이집트부터 대략 1850년대까지, 즉 쉽게 말해 꽤나 클래식한 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1) 고대 중근동이나 2) 이집트 3) 메소포타미아 유물 4)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 등에 관심이 있다면 필히 방문해 봐야 할 곳. 또한 근대 미술계의 대작들, 쉽게 말해 교과서에서 보던 모나리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도 바로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 내에서 제일 사람이 붐비는 스폿은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의 3군데.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작품 자체도 명작이지만 루브르의 주 관람 경로의 갈림길 상에 위치한데다 계단 홀 중간이라는 위치가 한몫한다.

모나리자의 경우 그 명성에 비해 그림 크기가 심히 작고, 사람은 엄청나게 몰려있고, 다른 작품과 달리 안전봉에 의해 접근이 3미터 정도 제한되는데다, 직원이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보고 지나가라고 닦달하는 통에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 외에 다비드의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가나의 혼인잔치 등과 같은 입이 떡 벌어지는 사이즈의 대작들도 관람객들이 많이 몰려 있다.

5) 고대 회화도 꽤 명작이 많다. 드농 관 지하 1층의 '이집트의 유럽 여인' 일명 유로페엔(I'Europeenne)도 안내 브로슈어에서 빠져본 적이 없는 명작이다. 서기 2세기경의 작품. 회화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함무라비 법전의 원본, 사이즈에서 관광객을 압도하는 라마수 조각상, 그리고 이집트의 서기 좌상 등 유명한 고대 금석문이나 조각들도 루브르 소장품 목록에 올라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 비석들은 셀수도 없을 만큼 많으며, 미이라를 넣은 석관들도 볼 거리. 샹폴리옹이 이집트에서 직접 가져 왔다는 스핑크스 진품도 만나볼 수 있다. 로피탈의 정리를 발견한 로피탈의 대리석상도 소장하고 있다.

5. 관람 비용과 방법 등
1) 기본비용 및 팁
2018년 기준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는 1인당 15유로, 오디오 가이드는 따로 5유로이다. 매주 화요일과 공휴일 등은 휴관하므로 허탕 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관람 시간은 월, 목, 토, 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 금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 45분까지이다. 10월에서 3월까지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이 무료 입장의 날이다. 다만 이날에 가면 눈 앞에 펼쳐진 헬게이트를 보게 될 것이다. 피라미드 출입구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남서쪽 포르트 데 리옹(Porte des lions; 사자들의 문) 출입구를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유럽 연합 국가 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입장료를 내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계통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무료이다. 파리 뮤지엄패스가 있다면 줄을 안서고 바로 입장할 수 있고, 며칠 동안 4~5군데 미술관, 박물관만 들러도 본전을 뽑을 수 있으니 프랑스로 여행가는 사람은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2) 예약
2021년 기준으로 관람 시 반드시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루브르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시간대를 지정해 예약할 수 있으며, 이는 파리 뮤지엄패스를 소지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예약 완료 후 QR코드를 입장 시 제시하면 된다.

3) 기타
대한항공이 힘을 쓴 덕분에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에 한국어가 지원된다. 주요 작품들을 빼놓지 않고 설명해 놓아서 혼자 유유자적 관람하더라도 거의 불편함이 없다. 너무 넓어서 가이드 대동하고 하루 보는 것보단 오디오 가이드 빌려서 며칠간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어지간하면 돈 아까워하지 말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2019년 현재 오디오 가이드 기기는 닌텐도 3DS이다.

한국어로 인쇄된 가이드 팸플릿도 준비되어 있어 관람에 매우 도움이 된다. 꼭 봐야 할 대표 유물을 전시실 번호와 함께 안내해주고 있다. 루브르에 가게 된다면 지하 입구에서 한국어 팸플릿부터 챙기도록 하자.

루브르는 모나리자 같은 몇몇 작품을 빼놓고는 전시물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해놓고 있고, 또 어떤 곳은 전시물 사이 사이의 공간이 좁으니 주의.

2012년 12월 랑스(Lens)에 분관을 오픈했다. 일본의 건축가 듀오 SANAA가 설계. 2017년 11월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해외분관을 열었다.
<루브르 - 나무위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작품 감상 <네이버 지식백과(미술백과)>

위 링크를 눌러보면 잘 정리된 작품들과 작품명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에 갈 계획이 있다면, 위의 대략적인 내용을 훑고 감상하고 가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상으로 더 자세하게 보길 원하면,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 가능.


[랜선투어 - 작품설명] 루브르 미술관 랜선투어 - 1부(1:21:36) <유튜버 - 파리지기랜선투어>

[랜선투어 - 작품 설명] 루브르 미술관 랜선투어 - 2부(1:50:04) <유튜버 - 파리지기랜선투어>


참 편리한 세상이다!


cf. 문화재 약탈이라는 말도 맞는 말. 한국 작품들도 있는데, 우리 작품들을 한국에서 소장하고 세계 관광객들을 유치해 관람하게 하는 게 베스트겠지만 한 편으론, 거꾸로 세계 최고의 관광지라 할 수 있는 이 파리의 박물관에 세계인들에게 한국을 더 알리는 용도로 쓰는 것도 좋을 듯. 그래서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고 조양호 회장 등이 한국 문화재들의 관람을 더 지원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촬영한 루브르 박물관 오른쪽.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능

그날은 드디어 파리, 프랑스, 그것도 유럽 여행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 출국이기에 가고 싶은 몽생미셸과 파리 시내의 몇 곳을 편하게 다녔고,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었는데 여행 막바지라 그런지 무리해서 뭘 하고 싶은 것들이 없었다. 당시 나에겐 첫째로 친구를 만나러 파리에 오는 게 가장 중요했고, 다음으론 근처에서 멋진 곳을 가보는 거였는데 그게 몽생미셸과 에펠 탑이었다.


지금 내가 프랑스로 다시 간다면, 파리로 들어가 유명 예술 관광지들을 다 둘러본 후 차를 렌트해 아를(Arles; 고대 로마시대에 번영했던, 고흐가 사랑한 도시) 도 가보고, 좀 더 내려가 해상 도시 마르세유(Marseille)를 거쳐, 영화제와 휴양지로 유명한 칸(Cannes; 깐느)과 니스(Nice)로 가서 휴양을 한 후 렌터카를 반납하지 않을지.


아무튼 마지막 그날 아침, 오전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 빠르게 여러 작품들을 본 후 오후엔 아껴두었던 돈으로 가족 및 지인들의 선물을 사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렇게 책과 친구의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뒤져가며 파리에서 사야 하는 꿀템, 잇템들을 찾아냈다.



루브르박물관 근처에 있던 쇼핑몰

당시에 책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이 가게에서 면세도 된다고 한 것으로 기억. '여기서 어머니와 누나 선물을 해결하면 되겠지!'

3층 내부의 모습

명품들을 파는 매장이라 그런지 1층 입구에 경비가 있었고 내부엔 1, 2층엔 외국인 매장으로 기억한다. 3층으로도 올라가 보니 끝에 사진에 보이다시피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는데, 상담해 주는 분 보니 한국인인 듯했다. 역시, 예상이 맞았었다. 가까이 가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니, 그 한국인 대표님은 당시에 나 같은 대학생 아들이 있다고 하셨고 다른 외국인 직원들도 고용해 3층 점포를 거의 다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우린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에 반갑고, 금세 친해지면서 내가 여행 온 이야기 그리고 대표님이 이곳으로 이민을 오셔서 이 루브르박물관 바로 옆에 숍을 운영하신다는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와우, 서프라이즈 코리안!'


그리곤 어머니와 누나 화장품 선물로 조언을 구하니, 당시에 유명한 E.L.를 추천해 주셨는데 더 할인해 주셨고,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향수까지 세 제품을 선물로 주셨다. 귀국 후 어머니와 누난 상당히 만족해했었다.


그런데 그 향수의 행방은, 어디로 갔을까? 나도 알고 싶다...


아무튼 그 대표님께 연신 감사하며 건강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나왔는데 지금도 기억이 난다. 잘 계시는지 안부를 여쭈고 싶다.


곧 저녁이 가까워졌다. 친구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기에, 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가서 만난 후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당시 친구가 스승에게 제빵술을 배우며 일했던 가게

친구와, 친구의 제빵술 메이트인 유사쿠는 퇴근하면서 내게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도 난, 친구가 일하는 가게니 당시에 뭐라도 사 먹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 가게로 들어갔다.

친구의 스승인 파스칼 피노 셰프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저 디저트들이 정말 하나하나 다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유학한 사람들은, 이 디저트들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도...

그리곤, 젤라토를 구매해 시원한 디저트 맛을 즐겼다

빵이 좋아 일본으로 유학 가서 제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제빵술의 본고장인 프랑스까지 가서 잠도 얼마 못 자가면서 빵에 미친 이 친구. 결국, 빵생빵사가 되었다(빵상 청년 아님. 발음 주의)!


PLACE MONGE(한국인들에겐 당시 몽쥬약국으로, 립밤 등 화장품 구매 장소로도 유명했던 정류장)

당시 Pharmacie(약학, 약국 등의 뜻)로 쓰여있는 곳은 이렇게 의약품이라기보다는 뷰티용으로 여성들이 화장품을 많이 샀는데, 특히 이 역 근처에 많았던 거로 기억. 한국인도 꽤 많이 관광을 오기에, 저렇게 제품에도 한글로 설명돼 있고 한국인 직원까지 두었었다. 여기서 난 주름 개선 화장품을 사서 어머니께 드렸는데, 누나가 그 제품을 뺏어서 썼다는 후문이...

친구들과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그들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했었다.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돌아보니,며 칠이나 재워주었고 또 친구의 친구는 불편할 수도 있는 모르는 여행자가 왔는데 친절히 대해주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며 더욱 고마웠던 것.

맨 왼쪽은 아마 푸아그라(거위 간)를 바른 빵, 그리고 샐러드들
스테이크 및 생선구이 등

당시 음식은, 푸아그라를 바른 빵의 독특한 맛 정도는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그렇지만 친구와 곧 헤어지고, 유럽과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라는 아쉬움에 더해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에 흐릿해져갔다. 음식을 다 먹고 계산을 하러 나왔을 때, 더 맛있는 걸 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올 무렵 나는 친구에게 크게 잘못을 하고 말았다. 아뿔싸. 당시에 내 카드가 문제가 생겨 결제가 되다 말았던 거로 기억한다.  내 유로 현금은 바닥나있었고, 계좌 입금만 가능했는데 그 당시에 친구에게 송금할 수도 없어서 친구가 대신 내 줬었던 것이다.


당시 친구와 유사쿠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난 바로 친구에게 계좌를 물어보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송금해 줬어야 했는데, 친구가 한국에 오면 직접 주겠다고 한 것이 몇 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친구는 이때 이후 내가 보기 싫었을 것이다. 유사쿠에게 창피하기도 했겠고...

그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때의 잘못을 인정하고 친구에게 그 빚을 2년 전쯤 갚았을 땐 너무 후련했고 사과를 받아준 친구가 고마웠다.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게 있고 그 관계가 오래가고 싶다면, 더 늦지 않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늦어버리면 사과를 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 여행을 회상하면서 이젠 추억할 수도 있고 이제는 맛있는 친구의 빵과 젤라토를 먹으려면 서울 주위에서 30분 정도만 가면 된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그 때 낸 나의 용기에 그나마 고맙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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