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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도6_ 아그라(ft. 숨겨진 사랑의 도시)

아그라 데일리투어_ 타지마할, 아그라성 등 원 없이 본 유적지들

4일 차 - 아그라 데일리 투어(타지마할, 아그라성)→바라나시(야간 슬리핑버스)

오늘 아그라행 기차가 새벽인 5:15에 근처 뉴델리역(NEW DELHI RAILWAY STATION Paharganj)에 있어, 짐을 다 싸놓고 23시 전에 잤었다. 인도방랑기 숙소에서 오전에 4시 넘어 기상 후, 채비를 하고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4:30 새벽 일찍부터 막노동중이던 인도인 분들

전에 인도의 노동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인도는 현재도 계급이 다양한데, 막노동을 하는 인도인들은 주로 최하층민들이며 여기서 일감을 얻을 때도 그냥 가능한 게 아니라 관계가 있는 가문 혹은 지인들에게 받아야 가능하다는... 인구가 정말 많으며, 종교도 다양하고, 모시는 신들과 소수민족 등 엄청 다양한 것은 알겠지만 '노동의 자유쯤은 보장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문제는 인도인들의 리더가 해결해야 할 문제겠고 쉽지 않겠지만, 이게 해결돼야 인도가 사회에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나가는 여행자가 일하고 있는 인도인을 보며 무슨 참견이냐 싶을  있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새벽 4:40 경 <뉴델리기차역; 빠하르간지 입구>

평소보다 많이 한산한 게 이 정도.

숙소에서 가까웠던 뉴델리기차역, 도보 20분 이내였던 듯. 이른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승객이 별로 없었다. 기차역 입출구에서 평소 삼엄했던 경비의 물품검사는 다소 느슨했던 기억이 나며, 빠르게 검문대를 통과했고 바로 열차 탑승구 플랫폼을 찾아 내려갔다.

왼쪽엔 새벽이라 잠을 자던, 아마 생수를 판매하거나 운송하는 상인일 듯

저마다 짐을 갖고 어디론가 이동하던 사람들(여기서 느낀 게, 각 열차 칸마다 쓰인 등급이 달랐다(A.C THREE TIER; 에어컨 있는 3층 좌석)

뭄바이도 쓰여 있단 뜻은, 거기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하는 열차라는 의미일 듯.

3시간 15분만! 여기서 보내면 된다...

주변에 불을 다 꺼서 어두울 땐 잠을 자고, 밝을 땐 책이나 스마트폰으로 다음 여행지들의 정보를 보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참, 배고플 것을 대비해 부피가 작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미리 챙겨둔 간식들도 이동 중에 요긴하게 먹곤 했다. 또한 목적지역 도착 전에 미리 잠을 자두어 피로를 풀고, 알람을 2~30분 전으로 맞춰놓고 미리 일어났다. 어느새 밖에 해가 뜬 밝은 풍경을 보며, 아그라역이 보이길 기다렸다.


 그렇게, 예정 30분을 넘겨 4시간쯤 뒤 아그라역에 도착!

이때 난 알았다. 출도착 30분 정도 또한, 인도에서는 흔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9시 경의 AGRA CANTT STATION(아그라역)
아그라 [ Agra ]
요약: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서부에 있는 도시.

인구 약 89만 9천(1991). 야무나강(江) 우안에 있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이다. 델리 남동쪽 200km 지점에 있다. 동쪽에는 갠지스강 유역의 광대한 평야가 전개되고, 북쪽은 야무나강 연안을 따라 델리를 거쳐 펀자브 지방의 평야에 연속되어 있다. 무굴 제국이 수도를 델리로 옮길 때까지 1564~1658년 약 1세기 동안 수도로서 북부 인도를 지배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을 때도 주변지 구의 행정중심지로서 중시되었으며 오늘날도 지방행정부의 청사가 있다.

대리석 세공 ·면직물 ·융단 ·제화 등의 제조업도 활발하다. 두 강 연변의 교통로와 데칸고원에서 북상하는 교통로의 접속점에 있어, 도로 ·철도 ·하천 교통의 요지로서 농산물과 일용잡화의 집산이 활발하다. 군사상 ·교육상으로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중심을 이루며, 시내와 근교에는 무굴 제국시대 최고 전성기의 건축 ·미술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붉은색 사암으로 성벽을 쌓은 광대한 아그라성(城)과 이슬람건축의 대표작인 타지마할이 널리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그라 [Agr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역 밖으로 나가보았다. 나가서 바로 사진을 찍지 않은 이유가, 황인종의 중국인 일본인 아니면 한국인! 같이 보이는 나에게 인도 오토릭샤꾼들이 내게 온갖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보통 둘 이상 투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혼자였고, 그런 나에게 이번에도 그들은 "어서 와, 아그라는 처음이지~?" 하는 것처럼 "니하오~" "곤니찌와~" "안녕하세요~"로(늘 거의 세 번째에 한국어가 나왔다) 나를 반겼다. 최소 네다섯 명 이상이 나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이렇게 계속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난 예상한 바여서, 그들에게 무응답으로 일관한 채 일단 천천히 조금 한적한 곳으로 나오면서 걸어갔다. 그렇게 5분 걸었나? 세 명 정도가 남았고, 각 릭샤꾼인 그들에게 난 "How much for daily tour?"라고 물었다. 셋 다 얼마를 제시했고 가격 차이가 크진 않았는데, 한 어르신이 뭔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어르신은 내가 한국인임을 노련함으로 눈치채셨는지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난 그 자료들을 말없이 읽었고, 그렇게 이 어르신께 내가 원하는 오늘 투어 사항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OK 했으며 가격도 서로 맞출 수 있었다.


 <아그라 데일리투어 요구사항>

1. 합의한 총금액 중 20%(정도)를 선불로, 나머지는 투어 종료 시 일괄로 드릴 예정

2. 타지마할 관람 필수, 그 외의 것들은 선택 관광으로

3. 22:30까지 목적지(바라나시행 버스를 탈 호텔 앞)로 가주실 것

4. 식당들을 제안해주셔도,  선택을 강요하시지 말 것

5. 기념품샵 방문 강요하시지 말 것


이런 식으로, 세계 어디를 가든 상대와 소통이 된다면 어느 정도 내가 요구하는 대로 투어도 진행할 수가 있다. 이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을 트레킹 했을 때도, 가이드에게 이렇게 DIY식 1박 2일로 구상하여 제시한 후 협상, 타결하여 잘 다녀왔었다. 지금도 난 그와 종종 연락하고 있다.


 아마 이 정도의 내용으로 기억하며, 이 어르신은 이 약속을 제대로 다 이행해주셨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투어를 가격대로 해줄 수 있는지, 약속한 가격으로 투어를 이행하고 지킬 수 있는 사람 같은지를 가늠하면 되는 듯. 후자의 내용은, 돈을 선불로 다 줬더니 좀 뒤에 돈만 들고 도망갔다는 사례 등이 있기에 못 미더운 사람 같으면 투어를 안 맞기는 게 낫다는 뜻이다. 별 사례가 다 있어서,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어르신의 비장의 무기, 수첩 <한국인들의 정이 담긴 좋은 후기들>

사실, 이 어르신은 이미 첫인상과 매너가 좋으셔서 처음부터 맘이 갔던 분이기도 했다. 이래서 첫인상과 매너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아슬람(Aslam) 어르신과 데일리투어 시작!

길거리 가판대 / 시민들 / 식품 재료들을 자전거로 운송

흡사 한국에선 1960~70년대 모습일까? 아이폰, PC 등 전자 및 IT 제품류 기기들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1시간 후 도착한 인도음식 식당

양고기 커리(Mutton Curry); 보기엔 미역국 같아 보일 수 있으나 적당히 매콤하니 맛있다

커리 1인분에 당시 4천 원이 채 안 됐으며, 양과 맛이 생각보다 훌륭해 포식을 했다.

Chili Chicken Curry with Cheese(칠리 치킨 치즈 커리) 였나? 맛있어서 하나 더 시킴 / 후식으로 먹은 사탕

식당에 와서 숨을 돌리면서, 어르신과 난 대화를 이어갔다. 아까 제대로 못 본 한국인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적어준 후기들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어르신을 선택한 게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르신은 대부분 아그라에 하루 혹은 나절만 둘러보고 갈 여행자들에게 사기 치는 대신, 장기적으로 생각해 책임 있게 그들을 대하면서 저런 후기들을 쌓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신뢰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모객을 할 수 있는 이 징표를 꾸준히 그간의 여행자들에게 받아온 것. 이 내용이 아니면 내가 이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걸 잘 아시고, 또 여기 식당에 와서도 그런 내용들을 궁금해하는 내게 친절하게 다 설명해 주셨다. 그러면서 이분께 더욱 정과 신뢰가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까지 투어이고 밖은 더워서, 여유 있게 에어컨이 있는 식당에서 2시간쯤 있었다. 아그라 투어에서 어느 순으로 관람할지 고민도 하면서 1시간 정도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어르신도), 우린 드디어 아그라 요새(Agra Fort)로 출발했다.

아그라성벽은 상당히 크고 길었다

성 정문엔 사람이 붐벼선지, 어르신은 동선상 커다란 아그라 요새(성) 내부의 덜 붐빈 곳곳의 유적지들로 시간상 효율적으로 날 데려다주셨다. 유적지들을 다 보여주실 요량으로. 아슬람은 나보고 유적지를 충분히 여유 있게 둘러보고 나오라며, 본인은 입구 쪽에서 천천히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지금 올리는 사진들은 동선의 순서대로 올린 것.


아그라 요새 [ Agra Fort ]
요약: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타지마할 북서쪽 자무나 강변에 위치한 무굴제국의 성채로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그라성 테라스에서는 강 건너편으로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이라고도 불리는 아그라 성은 밖에서 보면 천상 견고하고 딱딱한 요새다. 성을 빙 둘러 해자가 있고 높이가 20m, 길이가 2.5km나 되는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견고한 성벽 안에 감춰진 내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정원의 테라스와 분수대는 자무나(Jamuna) 강 건너편의 타지마할이 그렇듯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타지마할의 북서쪽 자무나 강변에 위치한 아그라 성은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후대의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되었다. 특히 건축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보였던 샤 자한(Shah Jahan) 시대에 궁성으로 개조되면서 화려한 건축물들이 대거 추가되고,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가 외부 성채를 건설하고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했다.

내부의 자한기르(Jahangir) 궁전은 악바르 대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지은 것이다. 아그라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건설되었으며,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일품이다. 한편 흰 대리석으로 지은 카스(Khas) 궁전은 단아한 느낌을 준다.

샤 자한 황제가 만든 디완이암(Diwan-i-Am)과 디완이카스(Diwani Khas)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디완이암은 1631년~1940년에 건설한 강연장으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백색 치장벽토로 장식을 했으며 내외부가 무척 호화롭다. 디완이카스는 귀빈들을 맞는 왕의 접견실로 1635년에 건설되었으며, 자한기르 왕이 만든 검은색 왕좌가 놓여 있다.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는 8각형의 커다란 탑으로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테라스에 서면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애도하며 만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샤 자한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아그라 성 안에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샤 자한이 만든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다. 대리석으로 만든 사원으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불리는데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외에도 궁녀들을 위한 사원인 나기나 모스지드(Nagina Masjid), 황제의 개인 예배실로 규모가 작은 미나 모스지드(Mina Masjid)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그라 요새 [Agra For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요새 겉으로만도 상당히 넓었는데, 그 안의 유적지들도 지금 생각해 보니 많았고 무덤 및 궁 안에 사람들도 있었음을 유추해 보면 정말 많은 수의 인구가 여기서 거주하면서 왕과 또 다른 궁의 건축 등을 위해 살았겠구나 싶었다.

일명 '아기 타지마할(Baby Taj Mahal)'이라는, <이티마드 우드 다올라> 무덤


Tomb of I'timād-ud-Daulah
이(I'timād-ud-Daulah Maqbara 의) 무덤은 아그라 시에 있는 무굴 무덤 입니다. 종종 "보석 상자"로 묘사되며 때로는 " 바차 타지 " 또는 " 아기 타지 "라고도 불리는 이 무덤은 종종 타지마할의 초안으로 간주됩니다.

본관과 함께 이 구조는 수많은 별채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22년에서 1628년 사이에 지어진 무덤은 기념비적인 무굴 건축의 첫 번째 단계(델리의 후마윤의 무덤과 시칸드라의 악바르의 무덤에서와 같이 주로 대리석 장식이 있는 붉은 사암으로 건축됨) 사이에서 흰색을 기반으로 한 두 번째 단계로의 전환을 나타냅니다. 타지마할에서 가장 우아하게 구현된 대리석과 돌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영묘는 Jahangir의 아내인 Nur Jahan이 I'timād-ud-Daulah(국가의 기둥) 라는 칭호를 받은 원래 페르시아 아미르인 인 그녀의 아버지 Mirzā Ghiyās Beg 를 위해 위촉되었습니다. Mirzā Ghiyās Beg는 또한 Mumtāz Mahāl(원래 이름은 Arjumand Banu Begum, Asaf Khan의 딸), Taj Mahal 건설을 담당 한 황제 Shah Jahan 의 아내였습니다.
[위키피디아 - Tomb of I'timād-ud-Daulah]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이렇게 넓은 진지에서 외곽에 있는 강으로도 적의 침입 방지를 위해 경계를 섰을 것도 느껴졌다.

다시 성 내부로 들어오면 이렇게 예쁜 궁전인, 무덤이 있다.

MEHTAB BAGH(Moonlight Garden)이라는, 달빛 정원

사진들을 찍겠다는 내 요구에, 아슬람 어르신은 이런 스폿으로도 날 안내해 주셨다.

아그라 지도

아그라성 정문 - 이런 성벽이 높이 20m 길이 2.5km로 돼 있다는 것

관광객들을 위한 정수된 음수 시설도 있었지만, 역시 생수를 챙겨가는 것을 추천

지나가면서 본 이런 건물에서도 조형미, 균형미가 느껴졌다.

어떤 유적지는 내부에서도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도 있었다. 이곳은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좀 있는 곳인가 싶었다.


타지 마할 묘 정원
샤 자한이 건설한 타지 마할 묘 건물은 후마윤 묘 건물 형식에서 발전된 것이다. 본 건물은 높은 기단 상부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 전면에 넓은 사분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면적 6.9헥타르의 정원은 지상의 낙원을 연상하도록 계획하였으며 아름다운 화초와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중앙에 장대하게 흐르고 있는 주수로(主水路)와 횡방향의 부수로(副水路)가 교차되는 곳에는 약간 높은 백대리석의 4각형 단을 형성하였으며 중심에 4각형의 연지(蓮池)를 만들었다. 남북 주축선(主軸線)이 되는 주수로에는 중심선에 따라 분수가 줄지어 배치되어 있으며, 주수로 좌우 넓은 보행로에는 삼나무(cypress)를 줄지어 심어서 투시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무굴 정원 양식은 페르시아의 정통적인 사분정원을 기본으로 하여 수로(水路)와 분수 등을 조합하여 발전하였으며 아치와 필라스터, 대리석의 투조(透彫) 스크린, 아라베스크로 장식된 원정(園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굴 문화는 이슬람 및 힌두 문화의 융합과 새로운 창의성들이 가미되어 발전되었으며 이것이 세련되어서 절정을 이룬 결과물이 타지 마할 묘 건물과 정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우랑제브 때에는 수구적(守舊的)인 이슬람 정책의 강화로 말미암아 문화발전이 저해되고 말았으며 건축은 물론이며 정원 양식도 역시 함께 쇠퇴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지 마할 묘 정원 (인도의 건축, 2002. 12. 25., 윤장섭)


위 건물, 그리고 아래 타지마할 등 인도 무덤 건축들과 조화로운 이 정원은 '무굴 정원 양식'의 영향이 있어서 비슷한 것.

드디어 본 타지마할! (타지마할도 그렇지만 가운데 정원의 대비 또한 각을 잰 것처럼 정교했다)

타지마할을 볼 땐, 늦어도 노을이 지기 전인 밝을 때 5시 정도에 갔다.

이 건축물 하나를 보려고, 전 세계 관광객들이 늘 여기를 찾는다

1시간 반 정도 나름 주변에서 둘러볼 수 있었으며,

이후 해가 질 때쯤, 깜깜해지기 전에 문을 닫고 입장한 관객들도 내보내는 시간까지 계속 이 훌륭한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었다.


타지마할 [Tāj Mahal]
요약: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건축한 것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Agra) 남쪽, 자무나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592~1666)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튀르키예,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 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자무나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지마할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이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물은 숨겨진 사랑의 깊은 의미가 있다.  <네이버 여행+ 정윤지 인턴기자>

인근에 있던 다른 유적지

같이 찍자는 인도 여성분들에 요청에 못 이겨 찍은 인싸(같은) 컷 ㅋㅋ

이때까지 4시간이 좀 넘게 둘러보았다. 혼자 건물들만 빠르게 보니 이렇게 가능했지만, 둘 이상 와서 유적지들을 보다 자세히 본다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었을 터.

이제, 유적지들이 다 닫은 시간까지 관람하는데 안내해 주신 아슬람 어르신의 드라이버 입무는 거의 다 끝났다. 바라나시행 버스 픽업 장소까지 가는데 여유 있게 3시간 정도가 남아서, 난 못 이긴 척 기념품 장소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날 하루, 편하게 내가 원하는 일정대로 잘 안내해 주셨기에 이분과 협약을 하고 계신 기념품 가게라도 가서 살 게 있으면 사드리려고.

여기서 난 자개 소형 거울함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제 공예품이 발달한, 아그라의 특산품들.

왼쪽은 달달한 맛, 오른쪽은 매콤한 커리에 치즈를 넣은 맛(강추)

역시 커리를 난에 싸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버스 탑승 후, 바라나시까진 11시간이 걸리는 장시간 운행이라 충분히 먹어두어야 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꿀잠을 자기 위해!


22:30 전에 여유 있게 버스 픽업 장소로 아그라에서의 마지막 드라이브까지 책임감 있게 잘 해주신 아슬람(Aslam) 어르신. 위에 사진에 적은 대로 난 오늘 고생해 주신 이분께 도움을 드릴 게 뭔지 생각하다가, 아까 저녁을 먹으면서 후기를 그의 수첩에 적어드렸다. 그게 아슬람 어르신은 물론, 아그라로 갔던 여행자분들에게 좋은 도움이 되셨기를 바란다.


 12시간 정도나 같이 보낸 어르신께 감사했다는 포옹과 함께 인사를 드리며, 약속한 총액에 팁을 10% 정도 얹어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르신은 내가 즐거웠으면 그거로 좋다며, 그 특유의 인도식 발음으로 "If you were happy, I was happy too!"(이쁘 유 워르 해삐, 아 워즈 해삐 뚜!!) 라고 하셨다. 당시 67세라고 하신 아슬람. 지금도 건강하시길 바란다.

23시에 온다는 버스는 0시쯤이 돼서야 도착했다

탑승한 버스(Sleeper bus) 내부, 겉으로도 컸으며 내부도 상당히 넓었다(180cm도 다릴 꽤 뻗을 수 있는 길이)

여기서 한국인 수용씨를 반갑게 만나 인사한 후, 우린 같은 좌석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바라나시로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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