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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말레이시아 1_ 다양성을 배우러 떠나다

티켓이 싸서 경유로 간 동남아 여행. 온몸으로 마주한 해외여행의 서막

위의 흔들린 말레이반도의 사진처럼,
자세한 여행지의 지식과 정보도 없이 몸으로 부딪히기 시작한, 배낭해외여행의 우당탕탕 전초전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旅行)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에 쓰여있다. 한자로 뜻을 보면 旅는 나그네 여로, 나그네는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을 뜻하며 行은 다닐 행으로, '다니다, 가다'를 뜻한다. 결국 '여행'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에 내 생각을 더해보면, 여행은 가보고 싶은 미지의 세상을 떠올리고 그곳을 가기 위해 준비하며 그곳에 가서 실제 내 오감을 마주한 후 돌아와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 기존에 가진 생각의 틀을 깨 주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다녀와 마주했던 사람들과 세상은, 기존에 내가 알던 것보다 더 포괄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세상의 다양성을 더 인정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10년 전쯤에 이 여행을 다녀왔을 때나, 가장 최근인 1년 반 전쯤 아버지와 히말라야를 다녀왔을 때나, 여전히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네팔을 다녀오기 전에 비해 이제 나와 아버지는, 네팔이 겪은 대지진의 아픔과 네팔인들이 히말라야 산맥들의 산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과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19 팬데믹 직전 다녀온 네팔. 안나푸르나 ABC 정상에서 아버지, 가이드 라즈와 함께



위의 내 생각에 기반하면서, 프롤로그 2편에서 쓴 것처럼 난 '시간이 더 가기 전에 한시라도 오감을 더 깨우는 것'에 주안을 두고 틈틈이 여행을 해왔다.


한편 10여 년 전, 대학교 3학년 때 난


왜 말레이시아를 첫 해외여행지로 선택했을까?


이유들을 정리해보니, 이랬다.


첫째, 다소 안전한 치안

이건 어떤 여행지를 갈 때 아마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동남아 2위권의(인니와 함께) 경제국으로, 치안이 어느 정도 안정돼있으며 사람들이 대체로 여행객에게 친절하다는 내용을 책에서 보았었다.


둘째, 저렴했던 비행기표와 물가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의 동남아 경유지이고 당시 티켓이 다소 물가가 높은 싱가포르 등 다른 경유지보다 수 십만 원 이상 저렴했다. 여기에 국적기 이어선지 무료 스탑오버 또한 가능하여 유럽여행 전 가볍게 동남아를 전초전으로 겪기 좋을 곳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코로나로 요새는 항공사들의 사정이 어렵지만, 그즈음엔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탄생했던 에어아시아가 유럽 및 미주로 오고 가는 길목인 좋은 위치의 이점을 살려 대폭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물가도 한국의 6~70% 정도인 점도 여행지 선택에 한몫을 했다.


셋째,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나라

이 또한 이 나라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무리 모험심이 많은 나여도 첫 해외여행지로 덜컥 주변에서도 익숙지 않은 여행지를 선택하기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책과 자료들을 읽어보면서 말레이계(60%), 중국계(25%), 인도계(7%), 기타(8%) 등 인종으로 구성된 다문화 인종의 국가라, 사람 및 나라에서 대체로 타인을 존중하는 습관이 배어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후에도 말레이시아를 3번 이상 다녀왔는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이륙한 비행기에서 본 상공
배낭여행 준비물을 정리, 메모한 여행 준비물 리스트

서론이 길었지만, 아무튼 나는 덜컥 출발 3주 전쯤 런던행 비행기표를 구매한 후 틈틈이 당일 새벽까지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오로지,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

라는 일념 하나로 여행을 준비하며 들뜬 마음으로. 남대문 상가까지 뒤져가면서 당시 그 유명한 여행용 전자시계, 자물쇠, 심지어 지금은 웃음이 나오는 빨랫줄까지도(소지품들을 묶기 위한 용도 등) 구했었다. 자그마치 55L의 배낭 등을 채운 짐들로. 번거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련한 추억이다. 이렇게

여행은 첫째, 떠나기 전 커다란 설렘의 선물을 준다.


아무튼 그렇게 열정으로 준비하여 도착한 인천 국제공항. 하지만 여기서 수속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짐 무게가 허용량을 초과한다는 표시에 부랴부랴 우체국으로 달려가 필요 없는 잔여 짐을 모아 집으로 부치고 온 뒤에야 수속을 마쳤다. 처음 해외로 출국하던 날,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도 간혹 계실 거라 생각한다. 더구나 on boarding 시간까지 시간이 여유롭지 않으면 정신이 없는데, 이때 이 항공사 직원이신 형은 차분히 나를 잘 도와주셨다.


비즈니스 석을 얻다 - 자기 PR의 필요성


당시 난 열정이 넘치는 대학생이었다. 앞의 프롤로그 2편에서 적은 대로 여러 대외활동도 폭넓게 할 때 <대학생 자기 경영 커뮤니티>라는 그룹에서 부운영자로 활동하면서 명함도 만들어두었었다. 직원 형께 이 명함을 드리며 인사하면서, 아직은 여행지로 인기가 많지 않던 말레이시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말씀드렸었다. 명함엔 내 블로그 주소와 그간 활동하고 인턴 했던 내용 등이 적혔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형도, 그 나라의 치안과 대체로 사람들이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친절하다는 점을 언급해주셨다. 여기에, 여행 책도 없고 당시 스마트폰도 없어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기에 쿠알라룸푸르의 대략적인 여행지들과 숙소 정보도 요약해주시는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그렇게 수속을 허겁지겁 마친 후 보딩패스를 받았는데 출국장까지 빨리 가야 한다고 안내를 받아선지 마음이 급했다. 받은 티켓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는 빠르게 출국장까지 뛰어갔었다. 이후 출국장에 도착해 내 좌석이 비즈니스 석인 것을 알고 다시 놀라며, 직원분들께 한 번 더 감사하다는 말과 이 내용을 꼭 블로그에 적어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여행을 돌아온 후 바로 약속을 지켰었고, 난 평생 기분 좋은 추억으로 이렇게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첫 배낭해외여행을 비즈니스석으로 시작하다니!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것으로 간단히 비즈니스석의 특징을 적어보면 첫째, 자리가 넓어 편안하다. 둘째, 공간 내에 사람이 적어 소음 또한 적다. 셋째, 간식 등 먹을 게 더 자주 더 좋은 퀄리티로 나온다. 이 점은 비행기, 출 도착지에 따라 다소 차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비용이 더 비싼 좌석이기에 대체로 맞는 말일 것이다. 넷째, 마일리지 적립률이 이코노미석보다 높다는 것 등이다.


여행은 둘째, 여행을 떠난 후부턴 이미 온 세상이 내게 배움이고 만난 사람들은 인연이다.

수속 때, 대부분 말레이시아인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우연히 한 한국분과 잠깐 인사를 나눴었다. 부산에서 오셨다는 곧 그분은 내 옆자리에 탑승하게 되었고,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신다는 형이라는 걸 알았다.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5시간여의 비행 동안 형은 지루하지 않게 말동무도 해주시면서, 내 여행 계획을 들으시더니 말레이시아 여행책도 흔쾌히 주시면서 여행을 응원해주셨다. 이 책으로 난 부족했던 말레이시아 여행 준비를 더 보강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환경이 지금처럼 잘 안돼 있는 그곳에서의 정보를 그때 실시간으로 얻기란, 책 등의 자료나 현지인 도움 없이는 정말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정말 때맞춰 유용하게 득템 했던 것이다! 형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헤어질 때, 역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형의 워킹홀리데이 생활 또한 응원해 드렸다. 갑자기 이 분의 소식이 궁금하다.





 설렜던, 급했던, 들떴던 이런저런 마음이 뒤섞이고 정리도 되지 않은 채 그렇게 저녁 무렵 도착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KLIA). 부족한 게 너무나 많지만 이미 나의 배낭여행은 시작한 상태였고, ing로 진행 중이었다. 첫날, 둘째 날 잘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상태로 이국으로 떠나왔지만 앞서 뵌 분들의 도움을 더해 이제 숙소를 찾아가면 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러면서도 떠나온 것을 잘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이제 하루 째이지만, 벌써 많은 상황과 사람을 마주하면서 배웠고 그걸 또 1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추억해 적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나대로 이 글을 정리하며 추억과 인연을 되새기지만,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또 다른 생각으로 영감을 얻어가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버스가 전에 했던 말.

"단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딱 맞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조건이라는 것은 늘 완벽하게 들어맞는 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10여 년 전, 이런저런 조건을 생각해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으면 절대 그때 느낀 오감과 현재까지 이어온 소중한 나의 인연들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여행을 떠나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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