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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국3_ 베이징3

당시만 느꼈던 그 느낌은 여행했던 그 순간뿐

3일 차 - 천단공원 → 왕푸징 거리 → 천안문(톈안먼) 광장 → 자금성

어제가 하이라이트였지만 이날 갈 곳들도 의미가 깊었다. 특히 새롭게 가보는 장소는 그때 그 순간 가능한 한 오감을 최대한 깨우고 특히 이해하면 좋다. 그 기억으로 평생 그 여행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해되는 것들도 있지만, '당시만 느껴지는 그 느낌은 여행했던 그 순간뿐'이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베이징 호기심 천국' 일행은, 그날 오전 일찍 또 부지런히 여정을 시작했다.

당시 자전거, 오토바이, 버스 및 자차가 골고루 다닌 베이징 도로

천단공원 입구


천단(공원): [ Temple of Heaven, 天壇(원어: 天坛)]
베이징에 있는 황제의 제례 제단
요약: 중국에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

제천(祭天) 의식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한 행사로서 역대 황제에 의해 행해졌다. 이 제사를 교사(郊祀) 또는 남교(南郊)의 제사라고 하였으며, 제단은 수도의 남쪽에 설치하였다. 현존하는 천단은 베이징[北京] 외성(外城)의 남동쪽에 있으며, 약 6km의 성곽을 두르고 안에 원구(圜丘)·기년전(祈年殿)·황궁우(皇穹宇) 등의 건물이 있다. 원구는 흰 돌[白石]로 3중으로 지은 대원구(大圜丘)로서 하늘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기원전은 기년전의 북쪽에 있는 백석삼중단상(白石三重壇上)에 축조한 푸른 유리 기와로 지은 원형 3층의 아름다운 건물로서, 기곡(祈穀)의 예식을 행하였다. 천단은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가 난징[南京]에 대사전(大祀殿)을 짓고 천지(天地)를 함께 제사한 데서 비롯하며, 영락제(永樂帝)의 베이징 천도 후 베이징 남교로 옮기고, 가정제(嘉靖帝) 때 원구와 대향전(大享殿)을 축조하여 제천(祭天)의 장소가 되었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개수 확대하면서 대향전이 기년전으로 되어 현재와 같은 규모가 되었다. 기년전은 광서제(光緖帝:재위 1874∼1908) 때 소실했기 때문에 1890년에 재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단: 베이징에 있는 황제의 제례 제단 [Temple of Heaven, 天壇]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버스에서 내려 들어가는데, 역시 중국이 원조인 익숙한 한자들이 보이는 장기로 두 어르신이 대국을 하고 계셨다. 그걸 보니 문득,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장기를 두곤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아버지와 장기를 두지 않지만, 내가 어릴 적 특별한 오락이나 게임을 함께 하진 않으셨던 아버지가 장기는 좋아하셨기에 내가 종종 두 자고 말씀드리곤 했다. 내가 아버지를 슬슬 이기기 전 완전 어린이 일 때, 아버지는 일부러 져 주시곤 치킨 등을 사주시곤 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꽤 흘러 이제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돌아다니면서도 세상의 다양한 미디어와 액티비티(활동적인 것)들을 다양하게 즐기는 편이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TV 등을 보실 때 외에는 역시 정적인 아날로그 활동을 선호하시는 듯하다. 그게 더 피로가 적으셔서도 그런지. 가끔 아버지가 원하시면, 장기 두시는 건 어떠시냐고 여쭤봐야겠다.


장기 [ 將棋 ]
요약: 두 사람이 청 ·홍의 장기짝을 규칙에 따라 번갈아 두면서 겨루는 놀이

장기는 약 40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인도의 불교도들이 전쟁이나 살생을 금하는 계율 때문에 인간 본연의 파괴본능을 달래고, 수도를 하는 시간 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전쟁을 모의(模擬)한 소재로 장기를 발명하였다고 하며, 또 일설에 미얀마 사람들은 자기네의 고대국 타이링의 왕비가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을 지극히 사랑한 왕비가 전쟁만을 일삼고 늘 싸움터에만 나다니는 왕을 궁중에 머물게 하기 위해 궁리 끝에 만든 것이 바로 장기라는 것이다.

물론 말의 형태가 달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장기의 발상지는 역시 중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장기짝(말) 자체가 초(楚) ·한(漢)으로 되었고,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의 각축전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약 2,000년 전에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편, 코끼리의 뜻글자인 ‘象’이 인도에 있었다고 하여 현대 장기도 인도가 발상지라는 설이 있으나, 중국의 남월지방(南越地方)에는 인도 못지않게 코끼리가 많았다고 한 것을 보면 장기의 발상지는 역시 중국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또한 ‘象’은 실상(實相)이라는 ‘相’의 전음(轉音)이라고 하니 더욱 뒷받침이 되는 내력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기 [將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왕푸징 음식 골목

이 사진을 누나, 엄마께 보내드리면 좋아하실 거 같다
모자이크 안하고 보는 재미가 있을 듯
왕푸징 역 [wángfǔ jǐng , 王府井 站]
요약: 베이징 속의 샹젤리제 거리

베이징의 명동 거리라고 불리는 왕부정대가는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이다. 왕푸징 역에서 나오면 동양 최대의 쇼핑몰인 동방신천지와 왕부정서점이 쇼핑의 시작을 알린다. 여기서부터가 보행자 거리다. 약 1km에 걸쳐 양옆에 대형백화점들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맥도날드 앞에는 왕부정 소흘가가 있고, 왕부정대가는 프랑스의 샹젤리제와 자매결연을 한 곳으로 여름만 되면 샹젤리제처럼 노천석을 마련하고 때론 맥주 파티도 개최하여 유럽과 같은 분위기를 선보인다.

거리에는 내연승의 신발, 성석복의 모자, 서부상의 실크, 왕마자의 가위, 대월헌의 붓과 먹, 급고각의 골동품옥기, 원장 후의 찻잎, 도향촌 · 계향촌의 베이징 전통 과자, 전취덕의 베이징 오리고기, 구불리 만두, 육필거의 장아찌와 천복호의 장조림 및 전통 과자와 말린 과일 등을 파는 전통 상점이 자리하고 있다. 먹거리와 볼거리, 휴식 공간이 풍성한 왕부정대가는 가히 베이징 최고의 쇼핑 거리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왕푸징 역 [wángfǔ jǐng, 王府井 站] - 베이징 속의 샹젤리제를 걷다 (중국 베이징 여행)


천단공원을 둘러본 후, 가까운 왕푸징 거리로 왔다. 위에는 길거리 음식점들로 풍경을 조금 둘러봤는데 지금 봐도 명동 거리와 비슷하게 노점상이 많았다. 별의별 음식들을 요리해 파는 중국은, 위의 사진만 봐도 기상천외했다. 여행했으니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현지에서 비위가 엄청 세고 배고프신 분이 아니면, 웬만해선 노점에선 아무 음식이나 드시지 않길 권한다. 탈 나면 정말 고생한다. 가이드님도 이 음식들을 꼭 권장하시진 않았다. 배가 고파 따로 식사를 할 거면, 위생적으로 보이는 식당에서 드시라고 권장하셨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여기도 현지인들이 살면서 요리해 파는 곳이지만, 한국 길거리 음식들의 위생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고 했다. 마침 내가 요새 드는 한식의 열풍은, 한류의 열풍에 한식의 위생 및 맛이 잘 조화됐기 때문에 그런 점으로 수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위생처리 기술 때문에.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도 이때의 장면이 냄새와 함께 기억나는 것도 신기하다.


 한 편 지금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있는 근처의 다른 구역은, 위의 샹젤리제 거리라는 설명처럼 위 사진의 노점 풍경과는 또 많이 다를 것이다. 많이 비싸기도 하겠고. 이런 두 곳을 다 볼 수 있다는 곳이 왕푸징(왕부정) 거리.


다음엔, 근처 천안문(텐안먼) 광장으로.

이런 사진을 찍어둬서 지금 보니 정말 좋다. 시집간 누나, 모녀 사진이라 더욱(잘 찍어뒀다고 숟가락 얹기)

천안문 광장[ Tiananmen Square, 天安门广场 ]

가는 방법
지하철 1호선 톈안먼둥(天安门东)역 또는 톈안먼시(天安门西)역에서 하차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과 그 앞으로 펼쳐진 광장은 금수교(金水桥)라 불리는 다섯 개의 흰 대리석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천안문 광장은 베이징 중앙부에 위치한 동서 500m, 남북 880m, 총면적 44만m2의 세계 최대 광장이다. 광장 북쪽에 서 있는 높이 33.4m의 천안문은 원래 1417년에 명 영락제에 의해 건설되었던 승천문(承天门)이 그 전신으로, 청대에 불탄 것을 1651년에 재건해 천안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문 앞의 광장도 명청 시기에는 천보랑(千步廊)이라 칭했으며 황제 전용 통로가 있었던 곳이다. 1651년의 재건 이후 1958년 확장 공사를 거쳐 현재의 규모가 되었으며, 100만 명의 인원도 거뜬히 수용할 정도라서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행사 등의 장소로 빈번히 활용된다. 1919년의 5 · 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문화대혁명, 두 차례의 천안문 사태 등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진 중국 근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이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한 천안문의 누각 위에서 드넓은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어 뒤로 펼쳐진 광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도 많다.

광장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 남쪽에는 마오주석 기념당, 동쪽에는 중국혁명박물관과 중국역사박물관, 서쪽에는 인민대회당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하루 두 차례 국기 게양식과 강하식이 치러진다. 매일 동틀 무렵과 해질녘에는 이 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광장 주변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식 참가자는 지방에서 올라온 중국인 여행자들로 이들에게는 이 식에 참가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과업이라고 한다. 햇살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 펄럭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오성홍기를 바라보노라면 가슴속 깊이 뭉클한 애국심이 느껴진다는 중국인들. 무척 진지하고 엄숙하게 의식을 치르는 중국인의 모습이 외국인 여행자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안문 광장 [Tiananmen Square, 天安门广场]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천안문 광장부터 자금성까지 엄청 넓은 부지에 도보 코스로 다 연결돼 있었다. 우린 여행 특성상 빠르게 이동하면서, 추억을 남겼다.

자금성 인생샷 추천 촬영지
자금성 [ 紫禁城; Forbidden City ]

중국> 베이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987년
저자: 아드리안 길버트

명조와 청조의 궁전 단지로 1407년부터 있어 왔다.
명조와 청조의 황제 궁전인 자금성의 건축은 1407년에 시작되었으며,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고생한 끝에 14년이 걸려 완공되었다. 황제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설계된 자금성은, 천제(天帝)의 거처와 동등한 지상의 등가물이라 여겨졌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황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단지는–각 변에 주 성문이 나 있다–깊이 6m의 해자와 높이 10m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총넓이가 약 72헥타르에 이르는 자금성 안에는 약 800채의 건물과 8,880개의 방이 있는데, 방의 개수가 좀 더 그럴싸한 숫자인 9999개라고 나와 있는 자료들도 있다. 이 건물들 중에 다섯 채의 커다란 전당과 열일곱 채의 궁전이 있었다. 자금성은 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남쪽 구역, 즉 '전조'(前朝)는 황제가 매일의 정무를 보는 곳이었고, 황제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곳은 북쪽 구역, 즉 '내정'(內廷)이었다. 건물의 소재로는 목재가 지배적으로 쓰였다. 자금성 안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모여 있으며, 지붕은 전통적인 왕의 색깔인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1644년 명나라 뒤를 이어 들어선 청나라의 열 명의 황제들은 자금성을 정부 소재지로 삼았다. 1912년, 신해혁명에 뒤이어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퇴위했고, 자금성은 결국 박물관이 되었으며 많은 보배와 진기한 물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유물들의 일부는 국공내전(國共內戰) 동안 대만으로 옮겨졌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완화되면서 자금성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가 찾는 주요 명소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금성 [Forbidden City]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이 위로 올라오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고, 내려다보는 전경이 볼만했다. 아래서만 성 몇 개만 보면 자금성이 한국의 궁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올라가서 이렇게 뒤의 궁들을 보니 저렇게 주변을 둘러쌓은 궁들의 수와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랐던 게 떠오른다.


 아, 지금 다시 학습하면서 내용을 죽 적어내려 왔는데 생각해 보니 엄마가 종종 말씀해 주신 내용들이었다. 국내외의 역사, 특히 그중 중국은 어마 무시하고 기괴한 나라라고 하시면서 난 당시 관심도 없는 내용들을 TV, 책 등으로 종종 읊어주시곤 했는데, 지금 오버랩되어 매칭이 되니 이 또한 지난 여행을 추억하며 기록하는 재미와 보람이 아닐지!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거 하나 없나?

자금성의 한 출구 풍경. 당시 우측의 인력거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도 있지 않을는지

저녁 식사로 간 샤부샤부 한식당! 일행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이때도 포식을 했다. 나, 가족, 다른 일행분들도 모두. 한식당은 중국에서도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참 한국서 중국 여행을 알아볼 때, 이렇게 현지에서 특히 단체여행할 때 식사를 잘하시는 것을 중요시하는 분들은 미리 잘 체크해서 예약해야 한다. 한식당을 여행 중에 몇 번 가는지. 앞에 적은 대로 음식이 입맛이 맞지 않아 여행을 잘 즐기지 못하는 분들도 일행 중에 종종 봤기 때문. 끼니에 식사로 충분히 먹어두지 못하면 여행 중 체력 소모가 더욱 크고, 기분도 좋지 않을 수 있게 돼 여행을 망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후 호텔로 귀가해 당시 빠져있던 스쿼시까지 했던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리스펙. 그런 게 열정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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