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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오스트리아1_ 열정과 여행의 그 어디쯤이었던

목적지(목표)엔 못 갔지만, 비엔나(빈) 시내의 쇤부른 궁전을 보며 만족

오스트리아 [ Austria ]
요약: 유럽 대륙 중앙에 있는 내륙국으로, 1156년 바벤베르크가문의 공국으로 건국된 후 13세기 말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1867년 형성된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을 이끌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왕가와 제국이 해체되고 공화국이 되었다. 1938년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1945년 연합국의 점령을 거쳐 1955년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가지고 독립주권을 회복하였다.

위치: 유럽 중부, 슬로바니아와 이탈리아의 북쪽
수도: 빈(Vienna)/ 공용어: 독일어/ 면적(㎢): 83871 / 해안선(km): 0
시간대: CET (UTC+01) Summer: CEST (UTC+02)
종족구성
오스트리아인(80.8%), 보스니아인(1.9%), 터키인(1.8%), 독일인(2.6%), 기타(12.9%)(2018년 기준)
종교: 로마가톨릭교(56.9%), 개신교(3.3%), 이슬람교(7.9%), 동방정교(8.8%) (2018년 기준)
건국일: 1156년 9월 17일
국가원수/국무총리
알렉산더 판데어 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 대통령 (2017년 1월 당선, 임기 6년)
국제전화: +43/ 정체: 연방공화제/ 통화: 유로화(Euro)
인구(명): 8,902,600(2020년)/인구밀도(명/㎢): 106.14(2020년)
평균수명(세): 81.70(2018년)
1인당 명목 GDP($): 51,509(2018년)

중부 유럽의 내륙국으로 9개의 주(Bundesländer)로 이루어진 연방공화국이다. 정식 명칭은 '오스트리아공화국(Republik Österreich)'이다. 북쪽으로 독일과 체코, 동쪽으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남쪽으로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 접한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자국을 독일어로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라고 부르는데, 이는 '동쪽 변경 지역'을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인 'Ostarrîchi'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어 명인 'Austria'는 'Ostarrîchi'가 라틴어화 된 것이다.

1156년 9월 17일 바벤베르크가문의 공국으로 건국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산으로, 1452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하기 시작하여 1806년 프란츠 2세가 황제권을 포기하고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을 이끌었다. 프란츠 2세는 같은 해에 오스트리아제국을 선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제국과 왕가가 해체되어 연방공화국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1955년 영세중립국이 되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부국 중 하나로, 1955년 국제연합(UN), 1995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였으며, 유럽의 6개 영세중립 국가 중 하나이다. 하이든·모차르트·슈베르트·카라얀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탄생지이자 빈소년합창단과 빈필하모니관현악단, 빈 국립오페라단 등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이다.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뿐만 아니라 스키 등 겨울 스포츠와 휴양을 위한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와는 1963년부터 수교하여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트리아 [Austri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오스트리아 국기 <두피디아>
오스트리아 지도 <구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형님인 심 과장님과, 과장님 친인척분들께 감사하다고 작별의 인사를 드린 후 예약해 둔 민박집으로 향했다. 이날은, 오스트리아에 입성한 내가 책임감으로 불타서 특별한 미션을 행하려고 했던 날. 앞의 포스팅에도 적었듯이, 난 유럽여행을 올 때 모 스포츠 브랜드 회사의 대학생 홍보대사를 하고 있었고 현지 본사에 방문하겠다는 기획서로 한국 지사에서 승인을 받았었다. 날 뽑아주셨던 S 대리 형님 등께 내 이런 활동으로 도움을 드려야 했기에 반드시 이 미션을 해내고 싶었고, 그곳을 방문할 기념적인 날이었다. 그래선지 오스트리아에 들어올 땐 더 들뜬 마음도 있었다.

독특했던 한인 민박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캐릭터라는 <헬로키티>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곳
헬로키티, 1975 [ Hello Kitty, 1975 ]
자산 가치 1조 5천억 엔(약 20조 원). 연간 시장 규모 3,500억 원에 달하는 캐릭터. 일본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중 가장 비싼 캐릭터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원작을 가지지 못한 캐릭터 중 가장 성공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헬로키티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은 헬로키티의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해 추후 제작된 작품들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헬로키티는 산리오에서 개발한 헬로키티와 그 친구들 전체를 묶어 하나의 캐릭터 군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하얀색 고양이는 키티 화이트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키티라는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하얀 고양이를 부를 때 쓴 이름을 가지고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이 없으며 오른쪽 귀에 리본이나 작은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

헬로키티는 1974년 일본의 캐릭터 디자인 회사 산리오에서 개발, 1975년 첫 상품을 출시한 캐릭터로 일본 사람들이 열광하는 미국 캐릭터 스누피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일본인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이 배경이 되었지만, 스누피가 개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택했다는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평범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시절, 헬로키티 캐릭터 상품 모으기가 취미였다는 빌 게이츠가 2000년대 초반, 우리 돈 6조 원을 제시하며 키티의 디지털 판권 전체를 사기 원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산리오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역설적으로 키티의 가치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겠다. 도쿄 외곽에는 헬로키티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 산리오 퓨로랜드가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헬로키티, 1975 [Hello Kitty, 1975] - 가장 비싼 캐릭터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 캐릭터, 김혁, 월간 <디자인>)
숙소에 도착 후 빵과 커피로 숨을 돌렸다

외국의 많은 숙소는 보통 체크인 시간이 오후 2시 이후이다. 이유는 전 이용자 퇴실 후 정리 및 청소를 하고 나서 손님을 맞아야 하기 때문. 외국의 호스텔, 호텔 같은 경우는 이 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일찍 열 때는 프로모션 형식으로 하면서 손님을 맞이한다. 다만, 한인 민박은 비는 방이 있으면 너무 늦은 밤이 아니면 손님을 맞이해주기도 하는데 이 민박 사모님께서 오전 이른 시간에 갔는데도 그렇게 해주신 것.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짐을 일찍 놓고 좀 쉴 수 있었다.

각 여행자의 사연이 담긴, 민박 방문 후기

민박 콘셉트가 독특한만큼, 내부 상점을 한동안 둘러보았다. 당시 흔한 남자 대학생으로서 헬로키티는 그냥 귀여운 캐릭터로만 느꼈었는데 10여 년이 지나 지금 보니, 여전히 귀엽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밝고, 한결같이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귀여운 소녀 같은 고양이.  '아, 여자 친구가 사달라고 하면 사줄 수 있을 거 같다!' 생각이 들었다. 만화 캐릭터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뽀로로>, '뽀통령'을 보라. 육아로 지친 육아맘, 아빠들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어쩌면 아이가 뽀로로를 안 볼 때의 비용까지 절약해주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 실로 어마 무시한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비싼 캐릭터'라는 뜻도 이젠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이따 나갈 외출 준비까지 마친 후 오전엔 잠을 더 잤다. 브랜드 본사에 방문하려면, 대사관에 근무하시는 사장님이 오후에 오신 후 의견을 나눠보라는 사모님의 말씀에 그렇게 한 것.


향이 그윽한 차를 대접해주신, 오스트리아 영사관 직원이셨던 민박 사장님

그렇게 사장님이 12시쯤 오셔서 만나 우린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은 오스트리아 영사관 직원이라고 하셨고, 그렇게 비엔나(빈)로 오셔서 아예 정착했다고 하셨다. 젊으실 때 지인 따라오셨다가 직장도 잡고, 이렇게 x티하우스 매장도 차려서 열심히 살아오셨다고. 특히 이 매장으로 유럽에 몇 차례 방송도 나오셨다고 했다. 좋은 콘셉트로 창업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사연도 말씀을 드렸다.


"저는 H사 한국 지사 대학생 홍보대사입니다. 마침 올해 유럽여행을 오려던 차에 H사 본사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았고, 그에 맞춰 탐방을 기획해 이렇게 오스트리아에 왔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업무 중간에 점심을 드시러 오셨던 와중에도, 인터넷 검색과 여러 곳에 일일이 전화를 걸으셔서 확인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H사의 본사, 그 위치는 여기였다.

숙소에서 5시간이 걸린다는 H사 본사

당시 상황. 민박에서 위의 목적지까지 가려면 5시간은 넘게 잡아야 했다. 한편 난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도 가고 싶었고, 이후 이태리 베니스(베네치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도 하면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H사 본사 목적지는 역에서 내려 한참 더 들어가야 했고 지금은 바캉스 기간이라 직원도 거의 없다고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빠르게 출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잘츠부르크를 거쳐 할슈타트를 보고 목적지로 갈 것인가. 또 그 목적지 인근에는 숙박지도 거의 없는, 관광이 불편한 곳이라고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지!!'


인터넷 전화기를 들어, 한국에서 홍보대사들의 업무를 총괄하는 대리님 휴대폰으로 전화해서 그 본사에 내가 가도 되는지 여부를 여쭤보았다. 대리님은 확인 후 저녁 전까지 답을 주시겠다고 했고, 그렇게 난 6시까지 시내를 둘러보고 와서 상황을 보고 움직이기로 했다. 그때는 3시가 지났을 때. 후다닥 둘러보고 돌아와야 했다.


그 사이 회사가 이전한 듯. 지금이라면 이렇게 가능했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유럽 대륙 전체에서도 예술, 그중 특히 음악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이 도시 소개를 빼먹었다.

비엔나(빈). 비엔나 역사지구 [ Historic Centre of Vienna(Wien) ]
요약: 오스트리아의 수도. 유럽의 음악을 이끌었던 도시로 켈트족과 로마인 시대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로크 성과 정원을 포함한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다.

빈은 16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유럽의 문화와 정치 중심지이자 유럽 음악의 본고장으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빈 시내에는 지금도 수백 년의 영화를 보여주는 웅장한 건축물과 기념물, 정원과 공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부터 19세기까지 다양한 건축물들이 밀집된 빈의 역사 중심지는 비교적 최근인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빈 역사 중심지의 명소는 유명한 환상도로(環狀徒路, Ring strasse) 주변에 몰려 있다. 빈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이 도로는 1857년에 건설된 것으로 길이는 4km에 불과하지만 폭이 50~60m나 되는 넓은 도로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빈의 상징물이 되다시피 한 성 슈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이다. 8백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슈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사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성당의 남쪽 탑은 높이가 137m나 되며, 특히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답다.

13세기부터 600여 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주한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은 그 자체가 거대한 복합 단지다. 내부에는 스위스 왕궁, 신왕궁을 포함한 여러 개의 궁전과 교회, 박물관, 정원 등이 있다. 정면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신왕궁은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며, 스위스 왕궁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모은 화려한 보물들이 전시된 보물창고가 이곳에 있다. 말을 잘 훈련시키기로 유명한 스페인 기마 학교도 왕궁 안의 명소다. 화려한 건물과 함께 말들이 펼치는 공연도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곳이다. 또한 군사박물관, 고전악기박물관, 민속박물관, 리피차너 박물관, 은기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유럽 3대 오페라 극장 중에 하나로 꼽히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회화 7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사 박물관, 모차르트가 잠시 살았던 피가로하우스(Figaro House), 11세기 건설됐고 빈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페터 교회(Peter Church) 등도 모두 환상도로 안에 있는 명소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빈 도심의 무분별한 개발로 역사 중심지가 본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유네스코는 2004년 빈 역사 중심지를 파괴 위험에 처한 ‘위기유산(Danger Heritage)’으로 지정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엔나 역사지구 [Historic Centre of Vienna] (두산백과)

비엔나를 소개한 여러 백과 자료가 있으나 예술과 음악에 대해 요약한 이 소개서가 이 도시의 매력을 잘 나타내는 듯하다. 내가 최근에 가장 가깝게 교류를 많이 하는 친구인 재경이는, 이곳에 두 번이나 갔었다고 했다. 전에는 '두 번씩이나?'하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이해가 잘 되었다. 그만큼 재경인 예술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고, 충분히 매력을 느낄 소재이기 때문에. 이 친구에게 이 나라의 매력을 더 들어봐야겠다.

근처 역으로 가는 길
친절한 직원이 건네주는 빵을 하나 사들고
바로 인근 쇤부른 궁역으로 갔다.
쇤부른 궁으로 향하는 길에 본 W.A 모차르트 / A. 엘리자베스(Sisi) 포스터

우측 사진은 시시(Sisi)라고 불리는 아멜리 엘리자베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비.

모차르트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에 따로 정리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Wolfgang Amadeus Mozart ]
요약: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성악·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그의 공적은 빈 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데 있고 전고전파의 여러 양식을 흡수,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했다.

출생-사망: 1756.1.27 ~ 1791.12.5
활동분야: 고전파 음악
주요 수상: 황금박차(拍車)훈장
주요 작품: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돈 조반니》(1787) 《마적》(1791)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여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하여 아들이 6세 되던 해부터 여행을 계획하여 1762년 7월 바이에른 선거 후의 궁정이 있는 뮌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하는 등 많은 일화가 있다.

작곡가로서 그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준 것은 서유럽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한 여행(1763∼1766)이었다.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알게 된 J.쇼베르트(1720?∼1767),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J.S.바흐의 막내아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파리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런던에서는 최초의 교향곡(제1번 Eb장조) 등을 작곡했는데, 이 교향곡은 8세 때의 작품이었다.

두 번째로 빈을 다녀온 뒤, 1769~1773년에는 3번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는데 그동안 교황에게서 황금박차(拍車)훈장을 받고,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의 입회시험(入會試驗)에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마르티니로부터 음악이론·작곡을 배운 일과 이탈리아의 기악·성악에 직접 접한 일 등은 그 후의 교향곡·오페라·교회음악 창작에 풍부한 자극이 되었다. 그는 이때 10대 소년으로 오페라의 작곡 의뢰를 받고 밀라노에서 작곡한 오페라를 상연(1770)하였는데, 제2회(1771)와 제3회(1772∼1773)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곳에서 오페라를 작곡 상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후 1777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차차 그 직무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여 1777년 가을부터 1779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다른 궁정에 취직하기 위하여 만하임·파리를 여행하였다.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음악면에서는 만하임악파와 접촉하는 등 수확이 컸고 이때 《파리교향곡》(1778) 외에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또한 만하임에서의 아로이지아 베버와의 사랑, 파리에서의 어머니의 죽음 등 인생의 경험도 많이 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궁정음악가로서의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1780년 말 뮌헨 궁정으로부터 의뢰받은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의 상연을 위하여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대주교 히에로니무스와의 불화가 표면화하여,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빈에서 살기로 결심, 그의 인생의 후반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빈에서는 처음 작곡·연주(피아노)·교육활동을 하였으며, 오페라 《후궁(後宮)으로부터의 도주》(1782)와 《하프나교향곡》(1782), 피아노협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1782년 8월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그가 빈에 머무는 동안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과는 1785년경에 직접 알게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빈 시대의 후반에 접어들자 모차르트의 작품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그 반면 빈의 청중들의 기호로부터는 차차 멀어져, 생활은 어려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빌린 빚도 많아졌다.

178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러한 상황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돈 조반니》(1787) 등의 오페라는 이 시기의 걸작들이다. 후자가 초연(初演)된 해 4월 베토벤이 찾아왔고 5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글룩의 뒤를 이어 궁정 실내 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것은 이름뿐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에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 이른바 3대 교향곡 《제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 주피터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 뒤에도 모차르트는 몇 차례 여행을 하였다. 1789년의 베를린 여행에서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알현하여 작곡 의뢰를 받았다.

이듬해 초에는 오페라 부파 《코시 판 투테》를 완성하고, 가을에는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대관식협주곡》 등을 포함한 연주회를 열었으나 빚은 늘어날 뿐이었고 1791년 8월 의뢰받은 오페라 《티투스 제(帝)의 인자(仁慈)》의 상연을 위하여 프라하로 여행하였으나 이때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9월에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魔笛)》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 두고 12월 5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매장되었으나 유해가 묻힌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다.

36세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였으나, 어려서부터 창작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성악·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그의 공적은 하이든과 함께 빈 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데 있으며, 그를 앞섰던 이른바 전고전파(前古典派)의 여러 양식을 한 몸에 흡수, 하이든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두산백과)


쇤부른 궁 입구
쇤브룬 궁 [Palace and Gardens of Schönbrunn]
쇤브룬 궁(독일어: Schloss Schönbrunn)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로코코 형식 여름 별궁으로 1,441개의 방이 마련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방문객이 가장 많은 유적지 중 하나이며, 문화적으로도 가장 뜻깊은 곳 중 하나이다. 쇤브룬 궁전의 정원은 한 시절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품격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50만 평에 이르는 그 대지와 궁궐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으며 쇤브룬 공원 안에 있는 빈 동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진 쇤브룬 궁은 1892년부터 빈 13구역 히칭에 위치해 있다. 이 궁전의 이름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하다가 샘터를 발견했을 때 'Welch’ schöner Brunn'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샘인가!)라고 외쳤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638년부터 1648년까지 이곳에는 먼저 페르디난트 2세의 두 번째 부인인 엘레노라 곤자가의 거처로서 궁전이 지어졌으나 이 첫 궁전은 1683년 오스만 튀르크의 제2차 빈 공방전으로 인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1687년 레오폴드 1세는 빈 성문에서 떨어진 그곳에 그의 후계자 요제프 1세를 위한 새 궁전을 짓고자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어라흐에게 의뢰했다. 1743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가 되어서야 니콜라우스 폰 파카시와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헨베르크에 의해 확장되어 오늘날의 궁전과 공원의 모습이 되었다. 쇤브룬 궁전은 18세기 중엽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 황실의 여름 별장으로 쓰일 동안에 이 궁전은 수백 명의 궁중인들이 살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절 쇤브룬 궁전은 k. k. (kaiserlich-königlich) Lustschloss Schönbrunn (황실-왕실 쇤브룬 별궁/별장)라고 불리기도 했다. 쇤브룬 궁전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가장 중요하고 많이 방문하는 유적지 중 하나이다. 이 궁전과 160 핵타르 면적의 공원은 199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원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인 쇤브룬 동물원 (16 핵타르)이 있다. 궁전과 공원 모두 빈의 주요 관광 명소이다.

[위키백과]

한 시절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품격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절대 왕권을 상징하는 궁이라고 누구나 교과서에서 읽었을 곳이다. 당시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나도 이런 거대한 장소를 입구에서부터 마주하니, 실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궁 주변의 정원들과
공원이 잘 조화된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아니 저 궁 내부의 1,441개의 방이 있다니, 실화인가요?

아까 사모님이 숙소에 너무 늦게만 안 들어오면 된다고 하셔서 여긴 이 정도만 보고 숙소 근처 건축물들을 보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 드넓은 곳을, 겉으로만 눈요기했다는 게 지금은 아쉽고 당시의 내 발은 지금보다도 축지법을 쓴 것처럼 더 빨랐다. 들어갔을 때 나왔을 때 사진을 보니 정확히 1시간 정도만 둘러보고 나왔다는 게, 실화인가?


아무튼 다시 가면 내부를 더 보고 싶은 곳 중 하나. 쇤부른 궁이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
비엔나 시 중심의 건축물은 다 멋스러웠다

이 건물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을 텐데, 당시엔 그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시내 관광을 더 하진 않고 일단 숙소로 들어갔다. 가보니, 그 사이 한국 지사 대리님께 연락을 받으신 사모님 부부께서 아까 H사 본사에 연락한 대로 직원이 다 바캉스를 간 게 맞아서 굳이 방문할 필요까진 없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리님이 열정은 인정해줄 테니 내게 유럽 잘 돌고 돌아오라고 전해주시라고 하셨다고. 아, 그 말씀을 들으니 그간 준비했던 것과 피로가 싹 가셨다. 사실, 유럽여행을 준비할 때 나름대로 머리의 모자부터 발의 신발까지 마케팅을 생각해 모두 챙겨갔었다. 그렇게 준비한 나름의 열정을 인정받은 듯해 조금 뿌듯했다. 아직도 여행이 많이 남았었지만...

사장님이 사 오신 피자 - 이 거대한 피자가 한 판에 4유로씩

당시 7시 반이 지난 시각. 커다란 피자 4판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하신 사장님이 사 오신 거고, 내가 들어올 때까지 많이 드시지 않고 기다리셨다고 했다. 이 민박 사장님, 사모님 역시 정이 많으신 좋은 분이셨다. 이 피자를 이웃분들과 민박 손님들을 위해 준비를 해주신 거, 또 아까 내 개인 일을 신경 써서 해결해주시려 하신 점 등...


결과적으로 여긴 하루 정도 짧게 머무른 곳이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후 사모님과는 통화로 안부도 종종 여쭸었다.

민박 다른 여행자분들이 챙겨 온 맥주, 사모님이 챙겨주신 간식들로 우린 계속 여행 이야기를 이어갔다. 피자를 먹기 시작한 지 거의 4시간이 지나도록...


이곳에서도 역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적인 교류, 여행 정보 등을 공유하면서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또 여기서 할슈타트를 다녀온 사람들이 참 좋았다고 한 것에 난 급히 할슈타트행을 확정하고 유레일 시간표를 보니,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했다. 그렇게 난 먼저 여행자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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