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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오스트리아2_ 할슈타트의 호수에 빠지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의외성 또한 여행의 재미

[오스트리아] 빈 -> 할슈타트 -> 잘츠부르크
자차 다구간 이동으로 구글맵에서 설정한 표시. 대중교통(철도, 버스)은 출발지 - 목적지로 따로 검색해야
새벽 5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각

어제 할슈타트행을 확정하고, 5시가 좀 넘어 잠에서 깼다. 6시쯤 비엔나에서 넘어가는 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 유레일은 열차 시각이 거의 요일별로 정해져 있고, 특히 2시간 반 이상 걸리는 장거리 노선의 탑승을 놓치면 길게는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그날 일정이 꼬이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그런 노선은 꼭 늦지 않게 가서 타는 게 좋고, 열차에서 쉬면서 체력을 충분히 보충하면 된다.


열차로 할슈타트까지 4시간 정도 걸리며, 이후 잘츠부르크까진 3시간. 경로를 파악하고 준비를 마친 후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나오시면서 잘 다니라고 하셨다. 어젯밤에 일찍 자야 한다고 인사를 미리 드렸음에도 내가 나갈 때 맞춰 깨시어 인사를 해주신 것이다.


단 하루 머물렀지만 사모님 부부 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가 개인적인 일로 도움을 요청드리면서 처음에는 사모님이 '뭐 이런 학생이 다 있나?' 하셨던 눈치였다. 하지만 이후 여기서 자리잡기까지 있으셨던 사연, 민박을 운영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 특히 몇 여행자의 '숙소 예약 노쇼' 말씀도 들으면서 공감을 하고, 위로를 해드리기도 했었다. 내가 갔던 7~8월은 한국 대학생 여름방학 시즌으로 그야말로 최고 성수기였는데, 숙소를 예약했던 몇몇 사람이 취소할 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밤늦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속을 많이 태우셨던 참이었다. 예약을 한 사람이 노쇼로 오지 않으면 그 이후 예약하거나 갑자기 찾아온 사람도 방이 없다고 돌려보낸 적도 있으셨는데 그게 뭐가 되냐고 하시면서. 그러다 이런 게 예약자 분과 틀어지면서 악평도 남기곤 한다고...


몇 년 전부턴 스마트폰이 생기고 카톡으로도 연락이 빠르게 되기에 이후론 이슈가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적어도 나에겐 하루만 머무는 스쳐가는 학생인데도 본인 일처럼 일도 도와주시고, 맛있는 피자도 넉넉히 사 와서 챙겨주신 좋은 분들이었다. 숙소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런 분들께도 좋지 않은 후기가 달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고, 안타깝긴 했었다. 사모님께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라고 하니 그렇게 말해줘 참 고맙다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착한 분들은 특히 더 상처를 받는다.


모든 여행자분들과 숙박업을 하시는 분들이, 서로 맞춰주면서 기분 좋은 여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만에 사모님 부부분이 잘 계신지 페메로 안부를 여쭸다.

이 큰 배낭을 메고 할슈타트로 향하는 새벽길
여러 열차가 오고 가기에 탑승할 열차명과 시각 등을 잘 체크해야 한다
플라스틱 칸이 차 있으면 예약된 자리 / 심 과장님께 받았던 ㅅ라면




빈에서 출발한 열차에서 4시간 정도 달리니, 이런 풍경이 나왔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라는, 잘츠카머구트가 여기구나!
할슈타트 [Hallstatt]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잘츠캄머구트)에 있는 한적한 호수다. 유럽 배낭여행자들이 동경하는 호수 중 최고의 반열에 올라 있다. 소문을 듣고 우연히 들렀든, 작심을 하고 방문했든 사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수에 우연히 들른 여행자라면 하루 묵을 결심을 하게 되고, 하루 묵을 요량이었다면 떠남이 아쉬워 한 사나흘 주저앉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호수다. 배를 타고 들어서는 할슈타트의 전경은 데칼코마니를 이룬 듯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알려지기야 잘츠카머구트의 이름이 더 귀에 익숙하겠다. 빈과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잘츠카머구트는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도 나왔고, 영화의 무대가 됐던 대저택, 성당 역시 화제를 모았다. 장크트 길겐, 장크트 볼프강, 볼프강 호수 등이 대표적인 명소인데 그중에서도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로 꼽히는 곳이 할슈타트 호수다.

할슈타트의 지우지 못할 단상들은 이렇다. 열차에서 내려 배를 타고 들어서면 흰 마도로스 모자를 쓴 선장이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호숫가 너머 산등성이에는 동화 속에서 봤을 듯한 마을이 매달려 있다. 해 질 녘 호수 위는 물새들이 가로지르며 언뜻 눈을 뜬 새벽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아침에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피어나는 길목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지나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짧은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머무는 며칠. 아련한 호수마을의 주인공이 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긴 설명들은 어쩌면 감동을 정리하지 못한 사족일지도 모른다. 들어서는 순간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호수마을. 할슈타트에 대한 ‘찡’한 충격과 사연은 그렇게 압축된다. 할슈타트는 연인들이 추억을 만들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호숫가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그 호수마을이 1997년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고, 마을의 역사가 BC 1만 2000년 전으로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가며 유럽의 초기철기문화가 이곳에서 발견됐다는 내용도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다. 그런 기록적인 수식어가 없더라도 호수마을은 가슴에 오래 내려앉아 여행자들의 추억 속 안식처가 된다.

깊은 호수마을은 예전에는 소금광산이었다. 할슈타트의 ‘hal'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이라는 뜻을 지녔다.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귀한 소금 산지였던 덕에 풍요로운 과거를 지녔던 마을은 소금산업의 중심지가 옮겨가면서 관광지로 모습을 바꿔 갔다.

소금광산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뒤로 돌아서 케이블카를 타고 다흐슈타인 산에 오르면 광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한적하고 외진 호수마을에서 오래된 광산을 만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면 낮은 눈으로 봤던 호수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촘촘히 둘러싸인 산자락 안에 호수는 아담하게 웅크려 있다.

호수마을은 고즈넉한 분위기다. 마을 한가운데 중앙 광장이 있고 광장을 둘러싸고 꽃으로 창을 단장한 세모 지붕 집들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예전 소금광산에서 나왔던 암염 조각을 팔기도 한다. 소금을 캐던 녹슨 장비며, 마을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는 아기자기한 박물관도 작은 구경거리다. 소금 광부들의 삶과 함께한 중세 교회나, 1,200여 개의 해골을 전시한 전시관 등도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골목을 따라 거닐면 투박한 쪽문, 담장을 채색한 작은 장식 하나에도 눈길이 간다. 자전거 탄 풍경이 어울리는 할슈타트의 아침 골목 어디에서나 호수 향이 묻어난다.

여행자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골목을 서성이며 ‘zimmer(방)'라고 쓰여 있는 마음에 드는 민박집이나 펜션을 정한다. 흰 빨래가 나풀거리는 뒷골목 소박한 민박집 문을 두드리고 하룻밤 청하면 된다. 창을 열면 상쾌한 호수의 향기가 폐까지 밀려들고 마을 골목은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한 여행자들의 잡담들이 맴돈다. 아침이면 주인아줌마가 내놓은 빵과 채소가 담긴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된다. 호수마을은 유럽의 웅장한 도시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으로 여행자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최근 중국 광둥성에서는 할슈타트를 그대로 모방한 호수마을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외딴 호수마을의 풍광을 중국에서 만난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아름다움을 근거리에서 재현하고 싶은 그들의 열망은 사뭇 이해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할슈타트 - 오스트리아 (세계의 명소, 서영진_11.07.05)


주민은 800여명인데 하루 관광객이 최대 1만 명에 이르는 마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제작진이 ‘아렌델’을 구상하는 데 영감을 준 마을이라는, 바로 할슈타트!


얼마나 아름다우면 중국에서 그대로 모방한 마을을 만든다고 했겠나. 실제로 그 이후, 이렇게 마을을 조성해냈다. 정말 중국은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엄청나다! 그야말로 ㄷㄷ이다. 두 번의 ㄷㄷ...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에 있다는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복제 마을


다시, 오리지널 할슈타트 마을로 돌아와 입구에서 들어갔던 그 순간부터 사진과 함께 떠올린다.

흐린 날씨에 보여주는 바람직한 운치.jpg
바라만봐도 힐링할 수 있었던, 할슈타트

주변에서 여행지를 추천해줄 땐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정말 멋진 곳은 대부분 다 추천해준다. 배경이 압도적으로 예뻐서 날씨가 별로인 날까지 커버할 수 있는 경우다. 나에게 할슈타트는 다녀온 사람의 8~90%가 추천해줬었고, 이런 여행지는 대체로 가서 후회할 확률도 낮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역시 본인의 주관을 잘 따라야 하는 것.


사방이 다 예뻐서 어딜 둘러보고 촬영해야 할지 모르겠던 그때. 난 신나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고 셀피를 찍곤 했다. 그러다, 저 오리들의 무리를 보았다.

이 앞의 오리들을 찍으려다 그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귀여운 오리들의 무리와 저 뒤의 멋진 성을 잘 담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 나무판자 끝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다가 그만,


"풍덩!"


하고 빠져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 그 짧은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사진기를 최대한 먼 곳으로 살짝 던져놓고 침착하게 물에 떠밀리지 않게 물살을 거슬러 널빤지를 잡고 땅으로 올라왔다. 실로 안드로메다가 왔다 갔다 했던 순간이었다. 훗날 어머니께 들었는데, 꿈에서 내가 물을 조심해야 하는 것을 보셨다고 했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도 생길 수가 있는 법.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위험했다.


이제 어쩌리. 이 와중에 다행인 건, 이 사태 이후에도 멀쩡히 잘 찍히는 카메라만 들고 있었다는 것이고 옷가지들만 젖었다는 사실.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씻고 옷부터 말려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의 한 호텔이 보였다.

4성급의 Heritage Hotel Hallstatt

이 호텔 입구로 바로 들어갔다. 지배인께 인사를 드린 후, 졸지에 생쥐꼴이 된 내 상황에 대해 짧게 설명하니 다친 곳은 없냐면서 참 안타까워해주셨다. 내가 몇 시간만 쉬면서 그동안 세탁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그러더니 대뜸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난 한국에서 왔고 유럽여행을 하는 중인데, 동시에 H사 프로젝트도 수행 차 오스트리아에 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야기를 듣던 지배인과 직원들은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그러더니, 빈방에 가서 쉬라고 했고 세탁은 그냥 해주겠다고 했다.


'실화인가?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있어도 비용은 내면 되는 거니까...'


지배인과 직원분들께 고맙다고 했고, 얼떨떨해하는 나를 데리고 한 여직원분은 빈 룸으로 안내했다. 수줍어하는 나에게 그 직원은 세탁물을 돌리게 해 주고, 잘 쉬고 나오라고 했다.

4성급 호텔답게 훌륭했던 내부 시설
뽀송뽀송하고 쾌청하게 건조까지 잘 된 세탁물

세탁물을 돌려놓고 샤워를 하고, 드라이기로 젖은 물품들을 마저 다 말리고 나서 잠깐 낮잠까지 잤다. 그렇게 2시간을 참 귀하게 쓴 후에 다시 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나가서 돈을 내려고 하니, 지배인은


"No, Never mind. Thx!"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안 받으려고 하셨고, 오히려 마실 것까지 챙겨주는 친절함을 보여주셨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이런 게 여유를 가진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그리고 그곳에서 일했던 그분의 베풂이었을까? 너무나 고마웠다. 지금이라면 무조건 금액을 지불할 텐데, 그때는 아끼면서 다녀야 하는 대학생이었다.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한편으로 또 생각해보니 그때 난 그분들에게 날 마케팅했던 것도 같다.


또한 아까 물에 빠졌을 때만 해도 짜증이 났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후회도 있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임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했기에 잘 리프레시할 수 있었다.


호수를 보니 어느새 다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어디를 봐도 예뻐서, 우산을 쓰면서 촬영만 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마트에 가서 과자랑 음료로 끼니만 후딱 때우고
광산을 볼 수 있는 다흐슈타인(Dechstein) 산으로 올라가게 해주는 케이블카

당시에 올라가 소금광산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소금광산이 있어 전에는 소금산업으로 마을 주민들이 먹고살았지만, 지금은 관광산업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은 이 마을이 축복받은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니, 이렇게 예쁜 경찰서를 봤나요

할슈타트에는 배가 역에서 마을로 하루에 몇 번만 오고 간다. 6시 전에 역으로 나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 예쁜 마을과 "풍덩"했던 에피소드를 마음으로 담아둔 채, 배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다시 유레일에 올라탄 후 열차는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이전 17화 [유럽] 오스트리아1_ 열정과 여행의 그 어디쯤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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