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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Jan 01. 2021

서투른 어른

어서와 서른은 처음이지.

음악을 깔아놓고 일기를 읽어보면 어떨지 추천해본다. 나는 이걸 반복재생하며 글을 썼다.

아, 또 잠들었다. 자리에 앉아서 유튜브 선곡자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켜놓고 책을 편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앉아있다 보니 너무 허리가 아팠고, 침대에 누워있고 싶었을 뿐이다. '하루키, 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스타가 될 수 있나요?' 책을 고른 이유가 단순했던 것처럼 나란 사람의 의지도 단순했다. 책을 읽으려다가 잠이 와버렸고, 매슬로우가 만들어 낸 1차 욕구 앞에서 안경도 벗지 못한 채로 잠들었다. 백날 강연을 다니고, 누군가의 동기부여를 하면 무얼 하나. 나 또한 싸고 먹고 자는 동물일 뿐. 이런 생각조차 허세로 느껴질 만큼 행동이 멋없다.


요샌 글을 쓴다고 하니, 조금만 표현이 유려해지면 "오 역시, 글을 써서 그런가?"라는 피드백을 받는다. 썩을 놈들아 나는 원래부터 표현은 유려했어. 그렇게 바라보는 내 모습을 충족시키기 위해 글에도 괜히 은유를 섞어본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 모두가 아는 것 가지고 있는 척 쓴다던가, '네가 떠나간 뒷자리는 아직 환기가 덜 돼서 잔향이 남아있어.' 같이 역겨운 문장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멍석을 깔아주면 더 억지가 되어서 볼품없이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을. 멍석 앞에서도 초연한 것이 프로라고 하던데. 아직 아마추어인 게 다행이자 슬픔이었다.


이번 연휴는 분명히 책을 5권 읽을 계획이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직업으로의 소설가, 정체성, 디디의 우산, 혼자가 혼자에게. 누가 본다면 문학에 조예가 깊은 줄 알겠다. 'ㅇㅇ문학상'같은 문학상을 준비 중인 예비 작가의 독서 목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요즘 나의 서가에는 문학이 가득하다. 정확히는 문학과 문학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중에서도 인문학을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향하는 것들이 담기는 내 책장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추구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표방하게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가장 많이 읽지만, 지금까진 읽지 않아서 이제야 읽는 것이다. 은유와 같은 문학적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들을 목전에 꺼내 놓는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도 괜히 은유를 붙여서, '나 잘하고 있지?' 스스로를 위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다가 주제가 새는 일도 잦다. 분명 5권을 읽을 계획을 말한 것은, 그 계획이 철저히 부서지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연휴 중 이틀이 지났는데. 나는 고작 1/5권을 읽었고, 10편짜리 짧은 에세이집을 쓰고자 했으나. 고작 일기 같은 에세이 2편을 썼을 뿐이다.(그중 하나가 이 글이다. 으으.) 달성률 10%쯤은 되려나.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다 보니, VC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는데. 주로 실행력을 좋은 기업의 조건으로 본다고 한다. "미친 실행력, 10%라는 대단한 성과를 보이셨습니다. 전액 환수하겠습니다! 나가세요!" 나에게 투자한 심사역이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친구들은 나의 실행력과 뚝심에 대해 칭찬한다. 어떻게 매일 그렇게 글을 쓰는지. 달리기는 또 언제 하는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럼 나는 솔직하게 생각한다. '그걸 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잖아!' 그래, 나는 진짜 그것들만을 한다. 내 삶에서 일, 글, 달리기, 공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딱히 놀지도 않고,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유튜브를 보며 낄낄대는 일상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부지런한 것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들에 감흥이 없다. 그러니 저것들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책을 읽다 잠에 들었지만, 결국 연휴 내로 5권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것밖에 안 하니까.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누군가가 감정에 취해 사색에 잠길 때. 나는 그것을 즐기지 못하니까. 아마 10편짜리 에세이도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유도 같다. 당신들이 나를 멋진 어른이라고 불러주는 그 요소들이 사실은, 그것밖에 못해서 남아버린 잔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말해본다.


특별하지 않다. 유튜브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을 나누면서 글과 달리기를 할 수 있다면 대단했겠지만 나는 앞선 것들 모두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벌벌 떨고만 있는, 갑작스러운 쪽지 시험에 당황해서 울먹이는 서투른 어른. 서른은 사실 서투른 어른의 줄임말이다.

하루키, 나도 당신처럼 빛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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