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생각이 없는 거고, 표면적으로 반응한 거잖아.
솔직함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즉각적인 리액션이라던가, 감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것을 솔직함으로 비추는 미디어가 많은 듯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반발심에 실제와는 다른 감정이 차올라서 행하는 실수이거나 감각에 대한 서투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솔직하다는 것은 진실이거나, 진심이거나 일 테다. 그러면 더욱 지금의 솔직함의 사용과는 멀어지게 된다. 어쩌면 앞서 말한 사례들은 솔직함이라기보단, '생각 없음' 이거나 '대충'이 될 것이다. 친구의 장난에 기분이 상해 화를 내버리고 나서는 사실은 그 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수치심이라던가. 날이 덥다고 짜증을 냈지만 사실은 그날 내내 마음속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있었을 때가 있었다. 솔직함은 진실에 다가서는 행위이고, 진실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무언가 이기에 쉽게 되지 않는 듯하다.
솔직해서 좋다는 말을 듣고 나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정말 솔직한 마음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눈치를 안 보고 상황 판단은 안 하려 해도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내가 정말 솔직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 방 안에 누워서 생각을 정리하다가도 울리는 소셜 네트워크와 메신저 알림을 생각한다. 지금의 답장이 늦어지는 행위는? 내가 방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아는 가족과 친구들의 생각은? 아무리 고려하지 않으려 해도. 조금은 고려되는 것이다. 애초에 타인과 나를 분리하려고 하는 자체가 기만이고 허상인 것 같다.
그렇지만 눈치를 보는 행위도 합리적이지 않다. 애초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는 없으니까. 유재석에게도 안티가 있고, 100만 유튜버의 영상에도 싫어요가 찍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스스로의 적을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말했다. 통용되는 것, 혹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그냥 좀 많은 다수가 동의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치를 봐서 알맞은 행동을 해도 결국 누군가에겐 미움을 받는다면, 오히려 그냥 솔직하게 하고 미움받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고심해서 준비한 선물이 상대방에게 버려졌을 때의 마음 같은 것이다. 내가 주고 싶은 걸 주면 버려지더라도 나름대로 괜찮다. 애초에 그 사람에게 맞춘 건 아니니까.
어렵지만 솔직함을 추구하다 보면 내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길 수 있다. 사람을 거름망에 거르는 일이 마음 아프겠지만, 이리저리 맞추며 상대가 정한 틀에 온몸을 구겨 넣는 행위가 더 힘들다. 조금씩 그렇게 거르다 보면, 정말 소중하고 잘해야 할 사람들만 남길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걸러진 사람들을 멀리 보낼 필요는 없다. 관계라는 게 꼭 잘 맞는 사람들하고만 지내는 것은 아니며, 의지가 있다면 서로가 조금씩 틀을 맞춰가는 재미도 있다. 다행히 사람이 제안하는 틀은 유동적이다. 잘 맞는 사람은 그대로 감사하고, 잘 맞지 않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솔직함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선물을 주는 행위 자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받은 상대방이 기뻐하면 감사할 일이지만, 그건 의무가 아니고 상대가 버리더라도 굳이 내 눈앞에서 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처음엔 무언가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주는 것'이었으니까. 내 마음대로 줘 놓고서 돌려받지 못한다고 원망하기엔, 나는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다. 겉으로는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돌려받고 싶었다면 솔직하지 못한 게 내 죄일 테니까. 그리고 나도 잘 돌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냥 주는 데서 생각을 멈춘다. 난 선물 줘서 행복해!
아무리 생각해도 솔직함은 닿기 어렵고, 쉽게 말하기 어렵고, 알아차리기 힘든 것 같다. 그럼에도 솔직함을 추구한다면 적어도 나를 속이지는 않아도 되니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 듯하다. 감수한다고 해서 꼭 버텨낼 일은 아닌 게, 그냥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뿐이니까. 내가 선물을 줘도 상대는 선물을 버릴 수 있고, 내가 솔직하게 표현하면 상대는 떠나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 내가 솔직하지 않아도 상대는 떠나갈 수 있으니까. 그럴 바에는 솔직하게 떠나보내는 게 미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솔직함에 대한 상대의 리액션을 감히 상상하고 규정하지 않는 것. 솔직함이 가져야 할 유일한 전제조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자꾸만 따져보고, 의심해보고, 변호해보고, 그 끝에 "모르겠다."라는 말이 나오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적어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