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다른 나의 꾸준함
꾸준함을 칭찬받을 때면,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꾸준한 건가 싶긴 하다. 사전에서 정의를 찾아보니 꾸준함은 한결같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꾸준한 게 맞다. 그렇지만 성실한 것은 아니다. 한결같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힘을 뺀 채로 지내니까. 한결같음은 대단한 가치가 아닐 수도 있다. 하루하루의 박자를 똑같이 맞추는 것. 나는 하루의 노력을 함부로 증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량하지도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싶다. 화룡점정이란 단어와 정 반대의 성향일 것이다. 하루의 완벽함을 맛봐서 완벽하지 않은 내일을 부족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보수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을 계획한다. 물론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도 남들보다는 적다. 꽉 채워서 할 수 있는 양과 질이 아니고, 정말 하루가 몰아칠 것처럼 바쁘더라도 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하루에 한 줄 쓰기, 하루에 5m 걷기 같은 느낌이다. 정신이 아무리 없어도 1분이면 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량이 아니라, 정성일 테다. 안타깝게도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영역 같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 잘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 나는 숙제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꾸준한 영역은 어쩌면 숙제의 영역이다. 그리고 숙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창한 꿈을 꾸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는 거창한 꿈을 꾸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다. 그냥 글을 어떻게든 쓰는 사람, 악플이 조금 달리고 무시당하더라도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정도이다.
아마도 내 꾸준함을 칭찬하는 사람들 중 몇 명은 그 분야에 있어 나보다 욕심이 큰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도전하고 힘을 쓰고 죽을 듯 매달리는 것일 테고. 그렇지 않으면서도 꾸준하게 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부러울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들만큼 욕심이 크지 않다. 집착하지 않으니 꾸준히 할 수 있다. 뜨겁게 매달리는 사랑이 있다면, 아마 이건 잔잔한 사랑 아닐까. 연인보단 부부에 가까운 사랑이다. 연애보다 결혼이 긴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나도 성공하거나 잘 되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건 지금은 아니다. 나는 내 수준을 잘 알 수 있는 직감이 발달했다. 주제넘게 다가오는 행운들을 잘 가려낼 수 있다. 잠깐의 끌어올림에 기뻐서 그것을 내 평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멋들어지려 하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사리사욕이 끼어서 멋진 척을 해버리곤 하지만, 전체적으론 낮게 생각한다. 이게 겸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랑을 좋아하고, 행운을 즐길 줄 안다. 그렇지만 그것이 행운이고 나의 역량과는 무관(하거나 작은 양의 상관관계)함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뜨겁게 희열을 느끼지 않아도, 신이 나서 발작을 할 정도가 아니어도 나는 지속할 수 있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꼭 웃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내면에선 뜨거운 폭발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고, 잔잔하더라도 문제없다. 나에게 행복과 즐거움은 다르다. 감각을 쪼개고 분석하고 되짚어보면서 내게 있어 행복은 감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행복은 상태이며, 그 행복은 슬플 때나 화날 때에도 존재할 수 있다. 꾸준함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며 내가 얻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언제나 꾸준히 행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젠가 결혼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젊은 연애의 표상이라면, 결혼은 조금 잔잔하고 덜 화려해 보일 수 있다고. 그렇지만 그것이 부족한 사랑은 아니라는 것, 겉보기에 가장 예쁜 꽃이 좋은 꽃은 아니니까. 나의 꾸준함은 뜨겁지 않지만 잔잔한 사랑이다. 순간의 최선을 선물하지는 못하지만, 최고로 좋은 꽃을 가진 감사함으로 지속하는 마음이다.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