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아닌 상황에 머물러 있을 때.
셧다운 제도는 없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도 게임을 마음껏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게임을 못하게 하셨다. 세 시간이라는 제한을 채우기 위해, 혹은 가끔은 세 시간을 넘기기 위해 발악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컴퓨터 제조회사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나보다 해박한 컴퓨터 지식으로 컴퓨터를 세팅해두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90년대 후반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 집에 컴퓨터를 놔두신 것부터가 남달랐던 것 같다. 덕분에 컴퓨터와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개발자를 지망하지는 않았지만 부품, 조립, 소프트웨어, 각종 오피스 프로그램들을 능숙하게 다루고 컴퓨터의 사고 회로를 남들보다 쉽게 이해할 수는 있었으니까.
거두절미하고, 어머니와의 눈치 싸움을 이어가던 중학교 시절. 생일날 아침, 어머니는 내게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보셨다. 내 소원은 간단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해도 아무런 잔소리 안 하기.'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하셨고 정말로 하루 종일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아침과 점심을 컴퓨터 책상에 갖다 주시기도 하고, 열심히 하라며 차를 갖다 주시기도 했다. 졸려하면 커피를 타 주시면서. 나는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을 지속하다가 18시간쯤 되었을 때. 너무 허리가 아프고 지루해져서 스스로 그만두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셨다. 뭐든 직성이 풀려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나는 '조금만 더 기회가 주어졌다면, 시간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아쉬움을 표현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쉬움은 진짜 아쉬움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이나 조건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세 시간의 제한이 있기에 게임에 대한 아쉬움이 있던 과거처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아쉬움이 생긴 것이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닌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닌데 기회가 부족했다는 사실만으로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말 자유로운 조건 속에서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지,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해보면 대부분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좋아하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이 슬펐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확실히 아닌 것 하나만큼은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소거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에너지를 쏟는다. 소거하기 위해 직성을 푸는 느낌이 아이러니하지만, 장작의 역할은 불꽃을 피우며 장렬히 연소하는 것이다. 삶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장작의 행복일 테니, 나는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태울 것이다. 그러면 가끔 잘 탄 것들은 숯이 되어 더 깊고 잔잔한 열을 만든다. 그렇게 삶의 온기를 유지하고 불꽃을 지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는 학창 시절만큼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씩 친구들과 만나 게임을 하는 주말이 즐겁긴 하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을 게임으로 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막상 게임을 하면 10시간이 넘도록 해버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은 게임을 안 좋아한다는 내 말을 의심한다. 그렇지만 정말로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쉬움 없이 게임에 몰두할 수 있도록, 경험시켜주시고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니의 덕분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