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

독서실을 가다가 봄꽃을 보았다.

봄이 온 지 며칠 째.

by 파르르

겨울에서 봄이 되는 순간이 아직도 어색하다. 따뜻한 햇살에 속아 얇게 입고 외출했다가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오늘은 운동을 해야지.' 마음먹고 나간 공원에서 감기를 핑계로 돌아왔다. 집에 누워 약을 먹고 몸살을 핑계로 이불을 덮었다. "조금만 쉴게요." 하루 종일 쉬어 놓고 조금만 쉰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이직을 준비하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호기롭게 집 앞 독서실에 한 달권을 끊어놓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읽을 마음으로 가볍게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 사람, 가만히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전 10시 반, 독서실이 오픈하자마자 온 것인데도 몇몇은 이미 열중하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독서실에 계속 나가니, 계속 보이는 얼굴들이 있다. 교육 관련 서적을 들고 다니는 내 또래의 여성분과 공인중개사 책자를 들고 다니는 지긋해 보이는 남성분. 언제 가도 그들은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며칠 약을 먹으니 감기가 내려앉아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꽃샘추위', 꽃이 피는 것을 샘내는 추위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초봄에 방심한 사람들에게 여지없이 감기를 선물한다. 샘나는 것은 꽃인데, 다치는 것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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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건물 앞 화단에 노란빛이 눈에 띄었다. 민들레였다. 먼저 잠이 깨 남들보다 조금 먼저 꽃을 피운 녀석이었다. 추위가 아무리 샘을 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빠르게 피어서 추위를 엿 먹이는 느낌이었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꽃을 안 피우나."


교육 서적을 쌓아두던 그녀의 책들이 눈에 걸렸다. 지난주에는 3권이었던 것들이 5권이 되었다.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는 그에게도 몇 권의 책이 더 쌓여있었다. 그렇게 지난 계절을 지내왔을 것이다. 아무리 추워도 묵묵히 자신의 책과 지식을 쌓아가면서 독서실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잠깐 긴장이 풀려 몸이 살짝 떨렸다.


계절이 무색한 나날들이 있다. 하지만, 꽃샘추위가 찾아와도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기억하려 한다. 날이 춥고 몸이 아프고 시간이 바빠도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도망치고 싶은 날, 민들레가 피어있는 독서실을 나는 다시 떠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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