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

푹신한 벤치가 되고 싶다

조금은 넓고 가끔은 온열 기능도 되는

by 파르르

오전 햇살에 눈을 뜨는 일이 낯설다. 한동안 못 느꼈던 한낮의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볍게 샤워를 마쳤다. 심호흡을 하고 신발을 신었다. 잠시 멍을 때렸더니 몇 분이나 지나 있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바닥이 너무 푹신한 탓이야.' 갈라진 마룻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도시에 벤치가 없어요." 유현준 교수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부터 벤치를 자주 찾는다. 다행이다. 아직 일산에는 벤치가 많다. 할머니 한 분이 가만히 앉아 있다. 지나가는 인파들을 바라보는 눈의 초점이 불확실하다.


공원에는 벤치가 더 많았다. 몇 걸음마다 좌우로 벤치가 두 개씩은 있었다. 어머니를 마중 나와 기다리던 곳. 오래전 만난 애인에게 고백한 곳이 떠올랐다. 아무 곳에나 앉아서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까 할머니의 초점이 이와 비슷할까 생각했다.


언젠가 대표가 내게 전해준 말이 떠올랐다. "관계는 벤치와 같은 거래. 누구나 왔다가 갈 수 있지만,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하더라." 고개를 돌려 벤치를 쳐다봤다. 어색하게 팔걸이에 손을 얹었다. 역시 차가웠다.


그래도 벤치가 있어 다행이었다. 딱딱한 나무에 철제 손잡이여도, 잠깐 앉아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시에서도 멈출 수 있었다. 서울은 아니지만, 위성 도시는 아직 괜찮았다.


서울에서는 항상 서 있었다. 출근길에는 늘 서 있었고, 신경은 곤두서서 말투에는 항상 날이 서 있었다. 앉을 곳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벤치 하나만 있었더라면, 벤치 하나만.' 짧게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주택에 살게 된다면, 집 앞에 꼭 벤치를 둘 것이다. 폭신한 벤치를. 조금은 넓고 가끔은 온열 기능도 되는 그런 벤치를 두고 싶다. 지나가다가 앉아도 되고 원한다면 자고 가도 되는 벤치를 두고 싶다. 도시에 필요한 건 벤치가 아니라 멈춰도 괜찮다는 안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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