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그냥 그때 존재했을 뿐.
사실 산책을 좋아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겉으로 산책을 좋아하는 척한 적은 많았다. 주로 연애의 전초전에서. 영화나 식사는 다른 곳에 집중력을 쏟아야만 했고, 통화나 안부는 너무 뜬금없었다. 만날 수 있는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고, 만나서는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했다. 산책. 산책이 딱이었다. 몸 풀기, 해장, 스트레칭, 힐링 등을 목적으로 제안하기도 만만했고 만나서는 사실상 떠들기만 했다. 서로의 시덥잖고 시시콜콜한 것들을 주고받으며. 의도한 행동은 그렇게 관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산책은 절대 적절한 제안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그에 호응한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산책을 말하는 모습이 순수해 보였다거나, 먼저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거나, 대화하는 게 즐거웠기에 산책에 동의했다거나... 산책이라는 솔루션은 애초에 그리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산책을 제안했고, 산책을 나왔을 뿐. 산책을 좋아하는 척해서 얻은 것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