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과목, 다른 자세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듣고 있다. 어쩌다 보니 우대 자격증이라 준비하고 있는데. 사실은 두려움이 컸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한 가장 큰 계기가 한국사였다.(당시엔 국사) 지겹도록 왕 이름을 외우고, 연도에 따라 사건을 외우고 인물을 외우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과거를 알아서 뭐해. 미래로 가야지."라는 그럴싸한 개소리를 펼치며 이과로 갔다. 사실은 "이과에 가야 대학을 잘 간다."라는 친구의 말에 혹해서 간 것이지만, 그중 몇 할, 몇 푼 정도는 국사가 싫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요새 한국사를 듣다 보니, 이렇게 재밌는 과목이었나 싶다.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초대 왕들의 숙청이 가슴 아프면서도 이해가 되고, 나라의 망조를 타개하기 위한 부흥 운동의 주인공들이 마음에 걸린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입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처럼, 어느새 역사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현대 사회에서 듣던 말들이, 과거에도 존재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예전에도 있었다. 반복된다는 말은 그런 것이었다.
신라시대 골품제의 한계와 시무 10조로 유명한 최치원이 지은 추야우중이라는 시가 있다.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괴로이 (시를)읊조려 보지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는 적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에는 삼경이 다 되도록 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의 내 마음은 만리 밖에 가 있네
감히 그가 겪은 고충과 어려움을 상상할 수는 없겠지만,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며 조국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열정만으로 안 되는 한계점에 대한 한탄이 섞여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강의에서 선생님은 "이 당시에는 꿈을 가지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꿈이 불행이 되는 세상, 그렇지 않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꿈이 불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본주의는 현대사회의 또 다른 계급론이니까.
최치원과 비슷한 인물로 장보고가 있었다. 산둥반도에서 무역왕이 되어서 고국의 해상왕이 되었지만, 그 역시나 법외조직의 한계에 머물고, 끝내 왕권에 도전하다가 염장에게 칼을 맞는 최후. 그 시대에는 신분이라는 제한이, 현대에는 자본이라는 벽이 존재한다. 장보고가 맞은 칼이 현대인에게는 탈락과 폐업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벽을 넘거나, 벽을 밀거나, 벽을 부수거나... 아니면 벽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달릴 수 있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래서 오늘도 역사책을 편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있지만,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얼'의 힘을 찾고 싶어서. 얼이 비추는 거울이라고 해서 얼굴을 영혼의 거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 궁금하다. 백색을 가득 채우는 동심원의 칠흑이 그들 눈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