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기하학
요즘은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상상력이 좋은 탓인지 무언가를 생각하면 항상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는데. 행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가?' 흠칫했다.
초여름쯤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파란색의 습기와 샛노란 열기를 더해 적당히 보랏빛이 도는 거리를 떠올렸다. 눈가가 달콤해졌다. 솜사탕이 콧등을 건들고 지나간 것 마냥 간지러웠고, 재채기가 났다.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머니에서 안약을 꺼내 눈에 넣었다. 매년 봄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나의 봄은 시큰하고 간지러운 맛이 난다. 매일 코를 훌쩍거리고 눈은 퉁퉁 부어서, 입가가 따갑다. 올해와 작년은 마스크 덕분에 입가를 긁을 일은 없었다.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 마스크처럼.
뭉뚱그려 그려진 행복의 이미지. 나는 구체적인 상상이 필요했다. 찌르는 듯한 공포의 감각이나, 인두처럼 나를 지지는 분노 같은 이미지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슬픔은 착즙기 같다. 나를 좁은 구멍으로 밀어 넣고 온 힘을 다해 눌러낸다. 아무리 습기가 없는 사람이어도 그렇게 짜내면 눈물이 터지고 만다. 평생 울 일은 잘 없는데도 그렇게 많이 눈물이 난다. 그렇게 한바탕을 울고 나면 몸무게가 절로 빠진다. 사람의 몸이 물로 되어 있는 것이 아쉬웠다. 이렇게 흘려버릴 체액이라면 차라리 중동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니 가깝게 친구네 농장에라도 보내버리고 싶은 것이다.
여하튼 불행은 구체적이었다. 묘사하기 좋고, 강렬하게 기억났다. 주로 느껴지는 감정은 고통,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쓰리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로 깊게 찌르는 느낌. 명치에 신경이 집중되고 약간의 선단이 느껴진다. 차갑고 얇은 종이로 손가락 사이가 베이는 감각. 그리고 피어나는 뜨거운 출혈의 파도. 불행은 이런 식이다.
내게 불행을 그려보라 한다면 날카롭고, 뾰족한 모양일 것이다. 반면 행복을 그리라 한다면 몽글하고 둥실할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대충 뭉뚱그려 놓은 모양. 누군가는 구름 같다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솜사탕 같다 말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놓고 보니 큰 상관이 없겠다. 행복은 그런 것 같다.
행복은 넓고, 크고, 포근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너무 큰 지구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행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도 크고 웅장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구 위에 서있기 때문에 지구를 보지 못한 것처럼. 행복을 보려면, 몇 만 키로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불행은 좁고, 작고, 뾰족할 것이다. 필히 차지하는 부피가 작을 것이다. 점으로 수렴해서 하나로 세워진 불안한 샤프심 모양. 찔러서 아플 수 있는 녀석들은 대개 작고 소심한 녀석들이다. 조금만 놔두면 소실점에서 사라져 버릴 녀석들.
일상에도 원근감이 필요한 듯하다. 달에서야 겨우 볼 수 있던 창백한 푸른 점 같은 내 행복, 소실점으로 수렴하며 사라져 버릴 자그마한 불행. 얇고 뾰족한 녀석은 그런 식이 아니면 존재감을 내뿜을 수 없었겠다. 그게 행복이 더 많고, 크고, 웅장한 이유가 되겠다.
찾아보면 행복이 더 많다. 불행이 조금 더 뾰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