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자기소개서

그때의 나는 어떻게 지내니?

by 파르르

오랜만에 다시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생겼다. 컴퓨터를 켜고 자소설닷컴에 접속했다. 구글 로그인이었던가... 생각하다 이메일을 적었고, 다행히 로그인이 됐다. 근 1년 만인가. 이렇게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여전한 디자인과 여기저기 들끓는 채팅방들. 예전에 설정해 놓았던 필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마케팅/광고 필터, 공고가 몇 개 없었다. 빠르게 필터를 해제했다. 공고가 몇 배는 늘었고, 내가 가려던 길의 너비를 잠깐이나마 짐작하게 됐다. 그런 길에 있었구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연습은 많이 했지만, 자기소개서는 오랜만이라 30분째.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제목부터 적는 것일까? 이 표현은 너무 은유적이지 않을까?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원하는 답안일까? 질문에 답을 하는 순간은 항상 고민이 든다. 너무 많은 말을 하게 되면, 그때부턴 대답이 아닌 강요가 되어 버리니까. 500자라는 제한이 존재하는 이유가 피부에 와 닿았다. 나는 어떤 글을 적어야 할까. 내게 허락된 500자. 일전에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항상 분량에 맞춰 쓰는 연습을 해 보세요. 기획이 잘 된 글이 중요합니다." 기획이 잘 된 글이라.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떠올렸다. 음. 이렇다 할 기획 없는... 구구절절한 글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한 시간 째, 답답한 마음에 기지개를 켰다. 왼쪽 위에, 연도 설정 버튼이 있었다. '혹시...?' 연도를 바꿔 작년과 재작년의 기록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쓴 120여 개의 자기소개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와 하나도 그대로인 게 없네.' 복붙을 하지 않았다. 소재는 비슷하지만, 매 순간 다른 표현과 구성으로 다른 소개서를 썼다. 살면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글을 쓴 적이 없다 싶은 요즘이었는데. 작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하나하나 내용을 읽어봤다. 몇 번은 우습기도, 몇 번은 부끄러운 자신감이 가득한 글이 있었다. '정말 그대로인 게 없네.' 재작년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줄은 몰랐겠지. 오랜만에 꺼내 본 자기소개서가 누구를 소개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존경했던 선배나 사랑했던 애인이 떠오르는 문장들이 많았다. 자기소개서인데, 그들을 닮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괜히 문장을 몇 개 복사해 두었다. 몇 분을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많이, 가리지 않고, 열심히 광고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서랍에 담긴 63개의 작품을 세어본 날, 드디어 광고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 광고회사 AE 지원서 中


호흡을 가다듬고 함께 갈 팀원들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매 순간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면, 팀원들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발로 뛰는 사람에서 이제는 함께 뛰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마케터가 되고자 합니다.

- 게임회사 마케팅 지원서 中


어렵기도 할 테지만, 돌탑을 쌓는 인부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일하겠습니다.

- 자동차회사 마케팅 지원서 中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비용을 지불했으나, 소중함을 얻게 된 경험, 저는 이 경험을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카드회사 기획직 지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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