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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May 17. 2021

피할 수 있는 건 피해야 하는데요

공황과 우울 사이에서 -1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병원에 상담을 다녀왔다. 지금의 상태는 괜찮지만 언제 다시 찾아올 지 모르는 증세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겨우 찾은 리듬이 소중했다. 가능하다면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평화와 안정이 가끔씩 찾아온다는 사실이 짜증스러웠다. 불안하면서 잔잔한 상태, 흔들리지만 자극 없는 상태가 싫었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5분간 양 팔목과 왼쪽 발목에 측정기를 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맥박이 빠르게 올라갔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높아지는 맥박이 눈에 거슬렸다. 보지 않으려 했더니 더 신경쓰였고, 그럴수록 맥박은 올라갔다. 결국 상담 중에 맥박이 표준에 비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혈압이 높은 것인지, 자세히는 재 봐야 겠지만 기본적으로 맥박이 빠르다고. 내게 불안증이 찾아오기 쉬운 상태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사실, 맥박보다 더 심한 문제가 있어요." 감각 저하,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 모두가 미달 수준에서 머무는 상태가 더 큰 문제였다. 특히 교감신경은 거의 무용한 수준이었다. 자극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진단하셨다. 왠지 요즘따라 성욕이 거의 없다시피 하더라니, 가장 큰 이유가 교감신경 때문이었다. 적절한 생리 현상으로 몸을 지켜야 하는데. 공포에도 미지근하고, 무언가 찾아와도 두려움이나 회피하지 않게 됐다. 좋은 의미에서 내는 용기가 아니라, 못 느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아직 심하진 않지만, 지속된다면 상해를 입어도 회피하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 그래서 베이거나 다쳐도 별 반응이 없구나.


 언제부턴가 다칠 상황에서 몸을 잘 피하지 못하게 됐다. 베일 것 같은 상황에서 여지없이 베이고, 찧을 것 같은 상황에서 여지 없이 부딪히곤 했다. 아픔은 그대로 느껴서 아파서 죽을 것 같아도, 다음 상황에서 또 반복했다. 피해야 할 일을 피하지 못하는 그간의 모습이 '교감 신경 부진'으로 나타나는 것이 허무했다.


 교감 신경만 제대로였어도 말이야... 교감 신경. 나는 교감이 부진한 사람이었다. 교감... 감정 교류가 어려웠다. 그게 그렇게도 싫었는데. 동명일 뿐이지만, 그 녀석 때문에 기어코 또 병원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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