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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ug 22. 2021

우정, 그 씁쓸함에 대하여

하루가멀다 하고삼겹살을 꾼다네

 몇 년째 동아리 후배 회장단에게 밥을 사고 있다. 이제는 10 기수 째, 이전엔 알 수 없던 것들이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장이 될 운명이라도 있는 것인가. 항상 묘하게 무언가가 느껴졌던 사람들이 회장단이 되곤 했다. 운영진의 상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강하게 느낀다. 덤덤한데 눈에 총기가 있는 사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들 그렇게 운영진이 되곤 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총명함은 그런 것 같다. 물론 운영진을 안 했다고 그 사람이 총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운영진들은 대부분 총기가 가득했다.


 어색할 때는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선배 된 도리를 떠나, 나이 많은 사람이 입을 열기 위해서는 지갑을 연다는 필요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선배들에게 녹록지 않다. 어쩌면 지갑을 열 수 있는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낀다. 밥을 살 수 있는 사람, 이 간단해 보이는 문장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 사는가.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고 뿌듯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남겨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 나는 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주는 일도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고문에 가깝게 초밥을 먹이고, 카페로 향했다. 힙하지 않을수록 자리가 여유롭다는 공식도 합정동의 주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교통이 불편하고,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가는 길에 천천히 좀 걸어달라는 후배의 핀잔을 디저트 삼았다.


 동아리 선배와 후배의 대화라고 별 다를 게 있을까. 사람들 사는 얘기는 놀랍도록 거기서 거기다. 사는 얘기는 결국 일과 관계로 정립되고, 그 중심에는 연애나 친구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남는다. 특히 우리를 사로잡은 이야기는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말 내가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 앞에서도 벽을 세우게 되는 게 고민이야."

 마음씨 따뜻한 후배 L이 말했다. 하도 벽을 세우다 보니,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 앞에서도 벽을 치게 된다는 말이었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 마음과는 다른 행동 때문에 오해를 살까 봐 두려운 날, 나는 가만히 앉아 그 한마디를 되짚어봤다. 되새긴다고 좋은 해결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사람은 떠나가, 그냥 그 시기가 빨라진 것뿐이지."

 할 수 있는 건 시큰둥한 결론뿐이었다. 누구나 아는 말, L조차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다른 시선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데 대부분은 무력하다. 나 또한 그런 무력함 속에서 마음을 빠르게 정리하는 방법만을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나도 그 상황에서는 별 다른 수가 없었기에, 위로나 조언이 아닌 그냥 결론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있던 P는 조금 다른 답변을 내려다가, 결국 L이 귀엽다고 결론지었다. 사소한 것에 마음을 쓰는 L이 순수하고 여리게 느껴졌기 때문일 테다. 어쩌면 단단함을 연기하고 있어야만 할 자리에서, 앞으로도 더욱 많이 무너지고 여려질 일이 많을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또한 L의 숙명일 테고 인생의 파도임을 알기에, 덤덤히 지켜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굳이 억지로 물줄기를 꺾지 않고, 다치고 부서지는 순간을 막아주지 않기로. 대신 쓰러졌을 때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다시 붙일 수 있도록 몇 마디 붕대는 준비해놓는 것으로 말이다.


  "관계는 벤치 같아. 언젠가 떠날 테니까. 그저 앉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일이지."

 일 년 전쯤, 친한 누나가 전해준 관계에 대한 말, 함께 운영진을 했던 친구가 해준 말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진리처럼 느껴진다는 그 말. 어쩌다 보니 나도 그 말이 작은 진리라고 믿게 되는 순간이 왔다. 물론 여전히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 떠난다는 사실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씁쓸한 우정의 벤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초밥을 사는 일? 커피를 사는 일? 익살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웃음을 지어주는 일? 친구들의 고민에 진심으로 동공을 키우는 일? 생각하면 할수록, 최선은 어떤 방법 따위가 아니라고 느낀다. 우정의 쓴 맛을 녹여낼 우유나, 시럽이 되어주는 일. 결국 부드럽고 달콤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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