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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ug 27. 2021

식당에 우산을 두고 온 다음 날

우산을 두고 온 뒤에 든 생각

 식당에 우산을 두고 왔다. 돈까스 하나에 6천원이던 식당, 화정역은 그런 곳이다. 굳이 비싼 고급 음식점은 없어도 여러모로 든든한 식사 하나 하기엔 충분한 곳. 올 일 없던 곳을 4년만에 들렀다. 고작 20분 거리지만 4년 간 한번도 들릴 일이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그렇다. 집 앞에 있고, 가까운 곳일수록 갈 일이 없다. 아마도 등잔 밑이 그저 가까워서는 아니고, 특별히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겠다.


 그 우산은 스페셜 에디션이었다.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가 디즈니 코리아와 제휴를 했을 때 받은 우산, 검정색 배경에 빨간 마블 마크가 수 놓아져 있다. 굿즈에 시큰둥했던 선배들 덕분에 마케팅 팀 막내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우산을 가질 수 있었다. 아니, 그분들은 좋아하는 물건이었어도 내게 먼저 양보했을 사람들이다. 막내라면 능히, 나도 막내가 팀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우산은 매우 컸다. 거의 파라솔만큼. 그래서 누군가와 만나면 자연스레 내 우산을 쓰는 일이 잦았다. 시쳇말로 썸이라고 부르는 관계에서 그 우산의 활용도는 쏠쏠했다. 비를 핑계로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작은 우산이었다면 더 가까울 수 있었겠지만, 가까쓰로 어깨가 스치는 거리도 충분했다. 오히려 각자 우산을 들고 온 날에도 같이 쓸 핑계가 되어주니 큰 우산에게 고마울 일이 많았다.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라면 작은 우산이어도 같이 썼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 줄만 알았다. 큰 우산이여서 같이 쓸 수 있었지만, 큰 우산이여서 알아채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사무실에 우산을 두고 나온 게 기억났다. 굵어지는 빗방울을 사이로 선배들과 뛰듯이 걸으며 마음이 불편했다. 분명 우산을 챙길까 고민했었다. 그치만 그냥 맞고 말지라고 생각하며 걸어 나온 게 아쉬웠다. 이기심으로라도 우산을 챙겼으면, 셋 다 비를 적절히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기적인 행동이라도 나눌 구석이 있는 것이다. 너무 빡빡하지 않게만,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충분히 이기적이어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에는 어제 두고  우산을 찾으러 식당으로 갔다. 어젯  안쪽 중간 자리에 있던 손님 맞죠? 사장님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때때로, 지금도 가끔씩은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억에 초점을 두면 과해지는  같다. 대부분의 오버나 실수는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에서 출발했다. 욕심부리지 않아도 기억될 것들은 기억된다. 애초에 기억은 내가 시킬  있는 것이 닌 것 같다. 각인을 목표로 일하는 마케터지만, 결국에 기억해주는 것은 상대의 몫이다.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주는 것이다. 식당 사장님처럼. 가만히 앉아 기억나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머리에 구름이 꼈고, 역시  우산을 들고 다니길  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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