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올림푸스 PEN EE3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지상의 풍경들은 잿빛이다. 누군가 오래도록 선 채로 그 풍경을 바라다본다. 그의 눈빛은 높다란 곳에서 아래를 유심히 살핀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 멈추기도 하는데, 빼곡한 집들 사이의 시시한 다툼과 불통의 사연들, 때론 충만한 기쁨의 사연들이 대기의 중압감을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된다. 눈을 좀 더 높이 뜨면 대지 위에 제 무게로 균형을 잡고 있는 건물들과 숲의 나무들이 있다. 강이 흐르고 바다가 있다. 지상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부산스러워 보인다.
창 안은 다소 어둡다. 낮이 들어왔다 나가는 동안 구름에 살짝 그을린 달이 얼굴을 밀고 들어온다. 오후 7시의 시간은 촘촘하게 방 안을 적신다. 커튼을 양옆으로 밀고 다시 창밖을 본다. 작고 아담한 섶섬이 눈앞에 있다. 섶섬은 앞쪽에 상가들이며 집들, 거리를 품고 있다. 도라지 위스키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를 한 잔 두고 <섶섬이 보이는 방>을 그렸던 이중섭의 젊은 날, 노래가 흐른다. 파도가 일렁인다. 밤이 되면 저 먼먼, 대지의 숲 속이거나 바다를 향해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언뜻 불타는 세멜레의 사랑이 귓속에 차오르기도 한다.
어느 날이다. 망루에 올랐다. 창으로 바람을 막은 망루는 햇빛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창 하나가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빛의 각도, 눈의 움직임은 60개의 파노라마를 생성한다. 창 하나씩이 겹쳐지고 중첩되면서 같은 것 같지만 다른 풍경이 다채로웠다.
<창 밖 Out of The Window>은 여행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낯선 여행지의 호텔 방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거나, 복도의 창을 통해서 또는 높다란 전망대에 올라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다 본 것들이다. 이번 작업은 바깥 풍경 그 자체보다는 풍경을 통해 얻어지는 다채로운 안쪽 풍경이 더 궁금했다. 어두워지는 방안에서의 나는, 먼발치의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숲의 나무들의 속삭임을 더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창유리 하나가 만들어내는 다른 광경으로의 전이. 이것이 이번 작업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제는 고물카메라가 된 하프카메라의 장점을 다시 찾은 것이 하나의 소득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프카메라를 통해 또다른 창을 만들어 창 안의 창, 창밖의 창을 좀 더 확산시켜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