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포구
와온을 사랑했던 어느 시인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와온 포구의 가로등에 번호를 매겨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줬습니다.
그 가로등의 따뜻한 불빛들이 번져서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이제 와온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군요.
카페도 생기고, 펜션도 생기고, 식당들도 여럿 생겼습니다.
삶은 계란을 얹어 라면을 끎여주던
하나뿐인 와온 슈퍼는 제일 바쁜 곳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첫 카메라였던 니콘 FM2를 산 뒤, 이곳 와온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가로등이 세 개 밖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필름을 넣고 와온 포구를 찍었습니다. 어느 길동무가 포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와온 가는 길이 온통
인동꽃 향으로 뒤덮여 있네.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어젠 낮과 밤 두 차례나 와온길에 나섰다네.
전시 잘 치르게나."
수 년이 흘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전시를 하고 있을 때, 시인으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전시 끝나면 인동꽃 보러 꼭 갈게요."
하지만 인동꽃은 와온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참을 헤맨 끝에 사곡 모리아 카페 담장에 핀 인동꽃을 발견했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에는 거리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농주, 와온, 봉전, 반월, 복촌, 사곡...
참 아름다운 이름들을 지닌 여수 순천 해안가의 갯마을들입니다.
저마다 이름에 담긴 마을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습니다.
길섶에 핀 꽃들과 밤별들을 보기 위해 시인은 포구를 또 찾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갯내음을 맡고, 밤별들을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