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매년 때가 되면 찾아오는 특별할 것 없는 계절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나가버려도 크게 아쉬울 것 없고, 다가와도 딱히 설레지도 않은. 봄에 화사한 꽃을 봐도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분들도 꽤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과연 몇 회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수명은 82.36세입니다. 봄을 몸으로 느끼는 일은 건강해야 가능할 텐데, 유병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건강수명)은 64.90세로 평균수명보다 20세 가까이 적습니다. 또한 쉽게 기억을 잃어버리는 유년시절을 제외하면, 우리가 평생 동안 건강한 몸으로 봄을 온전히 기억하며 즐길 수 있는 횟수는 약 50~60회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갑자기 봄이 귀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매년 봄의 문턱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향기를 더해주는 매화가 명품 향수 이상으로 귀하게 느껴진다면, 여러분도 도시라는 정원의 봄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된 겁니다.
봄꽃 중에서도 매화는 향기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꽃입니다. 매화는 단아한 꽃의 모양과 대조되는 그윽한 향기로 뭇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 때문에 화려함을 멀리했던 옛 선비들은 매화를 유독 아꼈습니다. 조선 초기의 문신 강희안(1419~1464)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은 꽃의 품계를 1품부터 9품까지 나눠 매화를 1품으로 꼽았고, 퇴계 이황(1501~1570)의 유언은 “매화에 물을 줘라”였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겨우내 쌓인 눈이 미처 녹기도 전에 매화 향기를 좇아 깊은 산골로 향했다는 옛 선비들을 흉내 내려면, 우선 매화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벚꽃, 살구꽃, 앵두꽃, 자두꽃, 사과꽃, 배꽃, 복사꽃 등 언뜻 보면 매화와 비슷하게 생긴 꽃들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매화와 더불어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벚꽃과 살구꽃입니다.
매화는 셋 중 가장 이른 3월 초부터 피어납니다. 아직 기온이 낮고 주변 풍경도 황량한데 홀로 꽃을 피운 나무가 있다면 매화나무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매화는 셋 중에서 향기가 가장 짙습니다. 나무의 크기는 살구나무, 벚나무보다 아담한 편입니다. 꽃은 가지에 바짝 붙어서 피어나고, 꽃받침이 꽃을 감싸고 있습니다.
살구꽃은 3월 말이나 4월 초부터 눈에 띕니다. 살구꽃은 매화처럼 꽃이 가지에 바짝 붙어서 피어나지만, 매화와 달리 꽃받침이 뒤집어져 있습니다. 꽃의 색도 매화와 비교해 분홍색 기운이 많이 도는 편이고, 매화보다 향기가 옅습니다.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는 살구꽃과 비슷합니다. 벚꽃의 가장 큰 특징은 매화와 살구꽃과 달리 꽃자루가 길다는 점입니다. 꽃잎의 끝부분 가운데에 홈이 살짝 파여 있다는 점도 둘과 구분되는 부분입니다. 결정적으로 벚꽃은 향기가 거의 없습니다.
숱한 명언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이런 말을 남겼다죠. “우물이 마르고서야 물의 소중함을 안다”. 매화도 그렇습니다. 제철 음식이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듯이, 제철 풍경만큼 아름다운 풍경도 없습니다.
매화를 만나는 방법 : 매화는 보통 3월 초부터 꽃을 피우지만, 따뜻한 남부 지역에선 1~2월에도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남 광양, 경남 하동과 양산, 제주 서귀포 등은 매년 대규모 매화 축제를 열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관광지가 대개 그러하듯 매화 축제가 열리는 곳엔 맛집도 많아 주말에 여행으로 즐기기 좋습니다.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도시 곳곳에서 매화나무를 발견할 수 있으니, 구별법만 숙지하면 누구나 쉽게 매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 용답역과 신답역 사이 청계천길은 홍매화, 청매화 등 다양한 매화를 골고루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숨은 명소입니다. 용답역 부근엔 먹자골목이 길게 조성돼 있으니 꽃구경이 더 즐거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