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이 화려하든 수수하든, 향기가 짙든 옅든, 꽃들은 모두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꽃의 매력은 흔히 여성미와 비교되곤 하죠. 이 때문에 꽃들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미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흰 남산제비꽃에선 수줍은 소녀의 풋풋함이, 붉은 장미에선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관능미가, 노란 국화에선 곱게 나이든 여인의 완숙미가 느껴집니다. 여름에 피는 꽃들은 강렬한 햇살에 지지 않으려는 듯, 눈에 잘 띄는 원색으로 피어나 화려하단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죠. 이 같은 화려함 속에서 능소화는 완숙미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보기 드문 여름 꽃입니다.
낙엽성 덩굴식물인 능소화는 여름이면 고운 주홍빛으로 전국의 담장을 장식합니다. 능소화 가지에는 담쟁이덩굴처럼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다 자라면 그 길이가 10m 이상에 달하죠. 능소화라는 이름은 업신여김을 의미하는 ‘능(凌)’ 자와 하늘을 의미하는 ‘소(宵)’ 자를 합쳐 만들어졌다는군요.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높이 자라는 꽃. 능소화의 생태를 잘 설명하는 이름입니다.
능소화는 예부터 양반을 상징하는 꽃이었습니다. 고(故)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독자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소설 속에서 능소화는 최참판댁 가문을 상징하는 꽃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또한 능소화는 조선 시대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의 화관에 꽂았던 어사화 중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상인(常人)이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곤장을 쳐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들립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자신의 모습을 능소화에 투영한 것은, 아마도 거센 장마를 견뎌내는 능소화의 강인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봄비 한 번이면 허무하게 꽃잎을 어지럽게 바닥에 흩뿌리는 벚과 달리, 능소화는 활짝 핀 꽃을 송이 채 툭툭 떨어트리면서도 의연하게 여름 내내 꽃을 피워냅니다. 또한 능소화는 명줄을 끊어내고도 결코 목련꽃처럼 남루한 행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시들기 전에 가지와 이별을 고하는 능소화의 모습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합니다. 비에 젖어 담장 아래를 덮은 능소화의 낙화는 가지에 매달린 꽃송이보다 찬란합니다. 저는 동백 외엔 능소화처럼 낙화까지 아름다운 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영광’입니다. 이보다 더 능소화를 통찰하는 꽃말도 없을 듯합니다.
사실 저는 능소화의 꽃말보다 꽃에 얽힌 전설에 더 마음이 갑니다. 하룻밤 사랑을 나눴던 임금님이 다시 처소로 찾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궁녀 ‘소화’. 기승을 부리는 더위에 모든 꽃들이 숨을 죽이던 한여름에 홀로 꽃으로 피어나 생전에 머물던 처소의 담장을 덮은 여인.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인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 봅니다. 능소화의 또 다른 꽃말은 ‘그리움’입니다. 저는 매년 여름 장마에 젖은 능소화를 바라볼 때면, 흘러간 노래의 한 구절을 무심코 흥얼거리곤 합니다.
“지나간 날을 그리워하면/가슴은 마냥 흩어져가고/어두운 밤을 지나노라면/한 조각 그 마음 나를 울리지/사랑의 미련 버리기에는/아직도 남은 그대 그림자/그 입술도 눈망울도/내 앞에 남아있는데/산유화여/산유화여/언젠가 지워버릴 그 마음/산유화여 그대의/숨소리는 남았네/외로움을 그리움을/버리고 버리고”(조용필 ‘산유화’)
능소화를 만나는 방법 : 도시에서 능소화는 주로 주택가의 담장이나 길가의 옹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능소화는 가지를 늘어뜨리며 꽃을 피우다보니 사람의 시선보다 높은 곳에서 꽃을 피웁니다. 능소화는 여름 내내 꽃을 피우고 꽃송이를 떨어뜨리므로 흔하게 눈에 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