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가을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닿는 쌀쌀한 바람입니다. 출근할 때 무심코 입고 나온 얇은 옷이 더 이상 쌀쌀한 바람을 막아주지 못할 때면, 희미했던 한 해의 끝이 선명한 실체로 느껴지곤 합니다. 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벌써 한 해의 끝이라니, 흘러가는 시간이 참 야속한 때입니다.
그래도 이맘 때 하늘만큼은 그 어느 계절의 하늘보다도 푸르고 맑지 않던가요? 청명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엇을 하고 사느라고 이 좋은 것을 못 보고 살았나 싶어집니다. 가을 들꽃은 이런 하늘과 잘 어울리는 짝이죠. 그중에서도 구절초(九節草)는 가을 하늘과 함께 가장 우아한 짝을 이루는 들꽃입니다.
구절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매년 9~11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산과 들에 널리 꽃을 피웁니다. 개화할 때 분홍색에 가까웠던 꽃잎의 색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하얗게 변하죠. 구절초가 군집을 이뤄 흐드러지게 새하얀 꽃잎을 피운 모습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마치 눈이 내린 듯 화단을 덮는 구절초의 새하얀 꽃잎은 푸른 하늘의 강렬한 색감과 대비를 이뤄 자연스럽게 시선을 붙잡습니다. 그 모습이 고상해 구절초를 ‘신선의 어머니 풀’이란 의미를 가진 ‘선모초(仙母草)’라고 부르기도 하죠. 가을을 타는 이들이라면 구절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전국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매년 이맘때면 일제히 구절초를 주제로 축제를 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구절초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어지는 풀’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단오절(端午節, 음력 5월 5일) 무렵에 다섯 마디였던 줄기가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을 전후해 아홉 마디가 되기 때문이라는 설입니다. 구절초는 한방에서 소화불량ㆍ월경불순ㆍ자궁냉증 등을 치료하는 약초로 쓰이는데,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가장 빼어난 효능을 보이기 때문에 구절초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유래와 상관없이 구절초라는 이름의 어감에서 아련함이 느껴진다면 저만의 착각일까요. 구구절절 무슨 사연이라도 가진 꽃은 아닌지 실없는 궁금함이 생기는 이름입니다. 꽃을 피운 사연을 알 순 없어도, 곁에 두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걸어보고 싶은 아름다움을 가진 꽃과도 잘 어울리는 어감의 이름이고요.
구절초의 꽃말은 ‘순수’,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구절초의 새하얀 꽃잎, 우아한 자태와 잘 어울리는 꽃말입니다. 하지만 가을은 짧습니다. 이는 구절초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는 의미이죠. 늘 그렇듯이 좋은 시간은 빨리 지나가더군요. 좋은 것은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 합니다. 좋은 기억은 오래가니까요.
구절초와 만나는 방법 : 도시에서 구절초를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는 공원입니다. 하얀 꽃잎이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리다보니 공원 조경에 흔히 쓰이는 식물입니다. 인도 주변도 구절초를 흔히 볼 수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