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꽃 여유

by 보비

곱게 단장한 어르신께서 마이크를 가장 먼저 잡으셨다. 다들 노래는 부르고 싶긴 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나서기가 어색한 순간이었다. 정적을 깨고 다소 쭈볏쭈볏 거리는 어르신들 사이로 평소보다 더 곱게 화장을 하신 고우신 어르신이 나선 것이다. 행사 준비를 위해 손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으면서 우리는 눈으로 ‘역시 어르신들은 대단하셔’라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노래방 세대인 나는 저렇게 반주도 없는 곳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게다가 시야가 확 트인 곳이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팀 63명은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아니던가. 젊은이들이 패기가 넘친다고 하지만 나는 어르신들의 열정에 비하면 젖비린내가 이런 맛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새벽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잠이 덜 깬 채 발이 저절로 베란다로 향했다. 오늘은 회사 야유회 날이다. 야외 행사는 아무리 잘 준비해도 날씨에 좌우되는 터라 준비를 하는 내내 날씨 스트레스가 있었다. 다행히도 미세먼지도 없는 깨끗한 바람이 코끝으로 들어왔고 하늘도 상쾌하게 맑은 하루를 예고하는 듯했다. 회사가 설립된 지 2년 만에 전 직원이 함께 야유회를 떠나는 날이다.


2015년 11월 동작구청은 어르신들을 위한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는 동작구에 살고 계신 만 61세에서 만 73세의 어르신들만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어르신 직원 90퍼센트 이상은 동작구 관내의 구민을 위한 체육센터, 복지문화센터, 도서관, 구청사, 사육신역사관 같은 공공기관의 건물 내부에서 클리닝서비스 일을 하고 계신다. 아이 돌봄 서비스 사업인 ‘산타맘’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도 있다. 할머니들의 솜씨를 활용해서 만드는 핸드메이드 제품인, ‘할美꽃’ 사업 쪽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


노인이 일한다고 해서 월급을 적게 드리는 것도 아니다. 회사가 설립된 초기부터 서울에서 실제 생활할 수 있는 ‘생활임금’을 드려 안정적으로 노인의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밸런스)’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 혹은 4일 일하시고 남은 일은 충분하게 건강도 챙기시고 여가도 즐기실 수 있다. 일하신 만큼 시급으로 책정해서 월급을 드리는데 한 달 열심히 일하시면 같은 일을 하시는 다른 곳보다 20퍼센트에서 많게는 30퍼센트 정도 더 받게 되니 우리 회사가 동작구에서는 ‘꿈의 직장 ‘구글’ 같은 회사라는 자부심도 있다. 아무리 구에서 좋은 취지로 어르신을 위한 꿈같은 회사를 만들었다고 해도 일하시는 어르신들은 처음엔 시큰둥하셨던 것 같다. 급여는 높아졌지만 그 외는 바로 보이는 것이 없으니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시고, 저렇게 하다가 말겠지 라는 생각도 있으셨다.


처음 야유회를 가자고 했을 때, 바람 쐬러 간다는 사실보다는 ‘회사가 우리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전 직원이 함께 일상과 일터를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서관 같은 곳은 주로 월요일에 쉬는 곳이 많아 일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급한 경조사 일로 함께 참석하지 못하는 분도 생겼다. 나 하나쯤 안 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하신 분도 물론 계셨다. 모두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참석하지 못하신 어르신들이 샘을 내실만큼 재밌게 다녀와 다음엔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도전의식 같은 것이 생겼다. 21명의 불참자를 뒤로 하고 함께 떠나게 된 인원이 그래도 63명이나 되었다.


정유년 10월 22일 청명한 일요일. 드디어 45인승 대형버스 1대와 25인승 중형버스 1대가 동작구청 옆 도로변에 정차하고 있었다.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라고 차 옆면에 적힌 진회색 카니발 차량도 함께 출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어르신들과 일하다 보면 특징 중 하나가 항상 약속 시간보다 삼·사십 분, 때론 한 시간도 더 일찍 오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오늘 집결은 8시였다. 우리은행 동작구청 지점 앞 벤치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버스에 실어갈 짐을 챙겨 약속장소로 30분 전에 도착을 했는데도 이미 오신 분도 두어 분이나 되셨다. 어르신의 지혜와 숙성된 경험을 표현하는 와인색과 골드색을 조화롭게 디자인한 회사 유니폼을 입으신 분들이 은행 앞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흡사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길에 오르는 모습들 같아 보였다. 가방 아래가 축 늘어져있는 배낭 하나씩 둘러메셨는데 분명 저 가방 안에는 김밥이나 떡, 삶은 계란과 같은 간식거리들이 가득 차있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약속시간 8시가 되니 전원 다 모이셨다. 모처럼 떠나는 야유회에 기념사진 촬영은 기본이다. 어르신들 길 떠난다고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위해 일요일 이른 아침에 나온 동작구청장과 몇 분의 구의원들과 구청사 앞 계단에 준비된 현수막을 앞에 두고 열 맞춰 앉았다. 사진을 찍는 직원의 ‘동작구 파이팅’이라는 구호에 맞춰 한 주먹을 흔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엄지와 검지를 연결하여 만드는 손하트 동작도 신나게 하며 사진을 찍고는 도로변에 대기 중이던 버스로 올라탔다. 사무직원들이 전날 열심히 준비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적힌 간식주머니와 친환경 텀블러에 따뜻한 꿀생강차를 나눠 드렸다. 간식주머니에는 비타민이 풍부한 귤, 말랑카우, 정통 밤만주, 자유시간 등 어르신들이 주전부리를 하실 수 있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버스에는 타지 않아 어르신들께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함께 동승했던 사무직원들에게 들어보니 마치 초등학교 때 솔밭으로 소풍 가는 듯이 설레어하시며 옆 짝꿍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시고 행복해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은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이 행복해하실까를 며칠 동안 고민을 하고 준비를 했다. 아트밸리 가는 길에 있는 ‘산사원’이라는 양조장에 들렀다. 맑게 푸른 가을 하늘은 군데군데 하얀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양조장 안에서 술이 어떻게 제조가 되는지, 어떤 술들을 만들어 내는지, 제조된 술 시음도 하시고는 부리나케 술독이 있는 산책로로 달려가셔서 푸른 하늘과 가을 단풍을 배경 삼아 턱받침도 만들고, 함께 일하시는 팀들과 단체 사진도 찍으시며 즐거워하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본격적으로 아트밸리를 둘러보기 전에 배를 채우기로 했다. 아트밸리 인근은 오리고기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고향나들이라는 오리숯불고기가 유명한 식당이었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으로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고향나들이 주차장에만 차들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니 맛은 보장이라는 느낌이 왔다. 예약한 별도의 방으로 들어가니 4인상 테이블 16개가 일렬종대로 되어있는 구조였다. 짝을 지어 자리를 잡았다. 나는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건배사를 위해 일어나 좌우로 고개를 돌려 보니 장관이었다.


일을 하고 계신 어르신들은 자부심에서 오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뭉클했다.

가을을 만끽하고 오리고기로 거하게 배를 채운 뒤 아트밸리에 도착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선마루 공연장까지 올라갔다. 어르신들에게 한 시간가량 자유시간을 드렸다. 아트밸리 천문과학관 안도 둘러보시고 천주호의 폭포도 보시고 산책하시다 조각공원 앞으로 모이라고 안내를 드렸다. 어르신들이 산책을 천천히 다니시는 동안 보물 찾기와 O·X 퀴즈 등 준비해 온 상품 세팅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30분 이상이 지났을까. 발이 빠르신 분들이 삼삼오오 조각공원 앞 공터에 자리 잡기 시작하셨다. 진행을 위해 돌 벤치 위에 마이크와 엠프를 올려두었다. 적막을 깨고 고우신 어르신의 구성진 목소리가 들렸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무쵸야~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베사메무쵸야~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깜짝 놀랐다. 어르신들이 노래를 즐겨 부르시고 흥이 많으신 줄 알았지만. 내 눈앞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몸을 들썩이시며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참 멋져 보였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스스로 원하는 것에 몸을 맡기는 모습은 나이 듦의 여유에서 오는 것일까. 그 뒤 불편한 자리 나 상황에선 나도 모르게 ‘베사메~ 베사메무쵸~’를 읊조리곤 한다. 그러면 왠지 한결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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