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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Sep 23. 2020

어른은 다시 어린이가 된다(1)

어린이의 마음으로(주린이와 수린이 그리고 헬린이까지)


  운동이나 취미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뉴비(newbie) 임을 스스로 지칭하고 싶을 때 요즘은 이런 말을 많이 쓴다.


‘저 이제 수영 시작한 수린이인데요!’

‘헬스 도전 일주일 차 헬린이! 스쿼트 챌린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어제 예수금 처음 충전한 주린이 인데요ㅠㅠ’ 등등


  ‘새로운 분야+(어)린이 라는 말’을 통해 이 분야에 내가 막 입문했음을, 그리고 정말 이 분야가 생소하고 아직은 경험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이 표현은 정말 과장이 아닌 것이, 사회생활도 해봤고 어디 가서 어리다고 이제 말도 못 할 나이가 된 성인일지라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학교와 가정에서 배우는 것은 한정적이고, 당연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서 학습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가치나 원리, 분야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이 모든 것에 통달할 수 없기에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맞는 몇 분야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타인의 영향이나 가치관의 변화, 자기 계발 등의 이유로 그동안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거나 도전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 도전의 문을 열자마자 깨닫게 된다.


‘아, 내가 이렇게 작고 또 작은 존재였구나^^’ 라는 것을.


 생각보다 각 분야의 깊이는 깊으며 ‘어떤 분야를 마스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그 분야에 대해 알거나 익혀야 할 것은 끝이 없다. 하지만 한국에는 능력자들만 모였는지, 유튜브만 검색해도 각 분야에 통달한 사람들의 영상이 가득하다. 본업을 물론이거니와 다른 분야에서도 준전문가의 실력/지식을 갖춘 사람을 보면 나 빼고 사실 하루 48시간을 살고 있던 거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핸드폰 잠깐 보면 잘 시간 되는 것은 사실 나뿐이었나보다. 분명 학교 다닐 때는 야무진 똑순이였던 것 같은데, 사회에 나오고 보니 나는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말 그대로 뉴비,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부터 깨야하는 초보 중의 초보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 정말 학교에 처음 입학한 초등학생이 되는 기분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이런 설정이 나온다(물론 요즘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져서 잘하지 않지만). 어떤 분야에 전혀 무관했던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그 분야를 접했는데, ‘아니 이게 웬걸?’ 사실은 그 분야에 타고난 미친 재능이 있어서 시작하자마자 초천재 초엘리트 초대박 실력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자 순응의 동물. 나에게 타고난 재능은 없다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분야에서는 내가 왕 x100초보라는 것은 흔쾌히 겸허하게 수용하기로 했다. 내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또 나의 무지함에 좌절한 분야는 다음과 같다.

최근에 처음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들에 대해 그려보았다.




1. 주식 (예수금 처음 충전한 주린이.. 바로 접니다)


 해리포터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평범한 술집인 리키 콜드런의 벽을 마법 지팡이로 톡톡 치면 숨겨져 있던 마법사들의 세계인 다이애건 앨리 거리 활짝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주식 어플을 깔고 다이애건 앨리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커다란 세상이 사실은 이 어플 너머에 존재했던 것이다.(터치 몇 번으로 갈 수 있는 것 또한 다이애건 앨리와 닮았다.)


 사실 나는 주식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내가 주식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상태였음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식은 나빠!’라는 생각이 확고했다는 것이다. 예수금이 뭔지도 몰랐고, 주식의 원리는 당연히 몰랐지만 ‘주식=위험’ ‘주식=하면 안 돼’라는 인식이 확고했다. 나는 지극히 안전 주의자이며 위험을 무릅쓴 도전을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원금이 손실될 수 있다니! 적금밖에 모르는 나에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야흐로 동학 개미 운동의 시대, 모두가 주식을 하며 너도 나도 사는 국민주가 생기는 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주식을 외면했다. 그러나 제로금리 시대의 이율은 이 적금 신봉자도 적금에 의구심을 들게 할 만큼 잔인했다.


 나는 정말 재테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정말 잘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뭐가 뭔지 감도 안 온다. 그럼에도 돈은 왠지 모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적은 금액이지만 달마다 적금을 넣고 있었다. 작고 소중한 나의 월급을 일부를 떼어 만든 적금통장은 정말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따로 하는 재테크가 없기 때문에 적금이 나의 재테크이자 나의 든든한 동반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여름, 이슬땀을 흘리며 뙤약볕을 뚫고 간 은행에서 만기가 조금 남은 나의 적금을 깨고 ‘와 정말 작고 소중하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나의 이자금을 현금으로 쥐고 나는 굳게 다짐했다. 나도 주식을 당장 시작하겠다고. 적금아, 이제 너만 보고 살 수 없는 시대였구나. 너 이 녀석 변했구나.


 적금을 깬 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 더 강렬하게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 적금 이자금과 함께 장바구니로 쓸 수 있는 작은 천가방을 받았는데, 단언컨대 나는 적금 이자금보다 그 장바구니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결연한 의지로 주식어플을 깔며 나는 살짝 이런 기대를 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하며 멋지게 주식을 사고, 주식이 잭과 콩나무의 나무마냥 오르고 올라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라는 멋진 결말과 부자의 삶. 우리 모두 알 듯,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나는 어플을 설치한 후 정말 알 수 없는 메뉴와 단어의 향연에 뭔가 무서워졌다. 아니, 이건 분명 한국어인데! 그리고 어려운 단어도 없어 보이는데, 이 메뉴를 누르면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전혀 예상이 안됐다. 분명 익숙한 회사 이름인데 이 숫자들은 뭔데 이렇게 빨리 바뀌고 숫자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면 일단 스톱’이 나의 모토이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뭐야, 나 빼고 다 주식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주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내 주변에 지인들도 하나둘씩 모두 주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뒤늦게 예수금이 뭔지, 호가창이란 게 뭔지 물어보고 찾아보며 겨우겨우 매수 버튼을 한 번 눌렀다. 아직 주식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몇 주 사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몇 주 샀다고 가끔 주식어플을 들여다보며 ‘오 올랐군’ ‘뭐야 떨어졌어’하며 가끔 감탄사를 날렸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올라도 왜 올랐는지를 모르겠고,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방청객마냥 주식창을 보면서 ‘와 올랐습니다 짝짝짝’, ‘우우~떨어진다’ 감탄사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남의 돈이 아닌 내 돈임에도 불구하고 제 3자인 마냥 멀찍이 관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유명하다는 유투버의 채널을 구독하고,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며 공부를 시작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주식의 세계는 정말로 거대하며,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중요한 문장은 쫙쫙 밑줄 쳐서 외우고, 모르는 문제는 별표 치고 풀이집을 보며 공부하던 모범생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공부하는 걸까! 일단 어디에 밑줄 쳐야 할지 감도 안 잡히며 풀이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는 건지 ‘어떤 기업이 이번에 이런 제품을 출시하며, 사실 이 회사의 지분을 얼마 가지고 있다더라, 그래서 주가가 올랐고 그래서 떨어졌으며 등등..’ 정말 유튜브 댓글의 닉네임에 노크를 하며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 이거 어디서 아시는 거예요? 또 저만 모르나요?’


 한 회사의 주가가 오르고 떨어짐은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와 관련이 있었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흐름 및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내가 정말 뉴스를 안 보고 살았구나, 사회 변화에 둔감했구나 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주식의 세계에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여전히 주식은 너무나도 나에게 낯설고 무서운 큰 세계지만, 주식을 비롯한 경제 분야에 조금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재력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나, 때로는 돈이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주린이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주식 왕초보 주알못이지만 그래도 언젠가의 빨간불을 기다리며 조금씩 꾸준히 공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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