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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Nov 08. 2020

당신의 슬픔에 이유를 묻지 않을게요

당신은 그저 슬프기만 했던 사람은 아니기에


 사람들은 타인의 선택에 이유를 묻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에 모두가 크고 작은 결정과 행동을 선택하며 살아가지만,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도 있기에 우리는 타인의 선택과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어보며 내가 해야 할 선택에 대한 답을 얻기도 하고, 내가 이미 선택한 것들에 대한 확신을 얻기도 하며 말이다.

 

 타인의 선택만큼이나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대한 이유를 묻기도 한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우울했을까, 왜 슬퍼했을까. 얼마나 슬펐길래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하지만 때로는 어떤 선택에 대해, 누군가의 슬픔에 대해 이유를 묻지 않고 싶다. 그러한 선택이 있었고, 슬퍼했으나 슬프기만 했던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마음에 조용히 담아두고만 싶다. 슬프기만 했던 삶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삶에는 누군가의 농담에 박수를 치며 웃었던 순간도, 예상치 못한 작은 행운에 쾌재를 불렀던 순간도, 작은 행복에 미소를 지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슬퍼했던 이유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을 그저 슬픈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싫다. 그러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뿌듯한 순간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지만 자신의 슬픔과 우울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어하고 숨기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나를 그저 슬프기만 한 사람으로 볼까 봐, 울기도 웃기도 했던 나의 모든 순간들이 ‘우울한 사람의 우울한 인생’으로 무례하게 일반화 되어질까봐.


 그래서 때로는 슬픔에 대한 이유를 굳이 묻지 않으려고 한다. 당신은 그저 슬프기만 했던 사람은 아니었기에. 때로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을 누군가의 모든 순간들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이유를 묻기보다 그 사람 자체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기억하고 싶다. 슬펐던, 위대했던, 행복한 삶을 살았던 누구누구라는 말도 붙이지 않고 그냥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는 그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그리움의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타인이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어찌 보면 동료이기에, 삶의 여정을 지나는 모두가, 그리고 나에게도 정말로 마음 아픈 일이 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본문 커버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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