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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n 16. 2020

인라인과 제육김치볶음밥

당신을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




    동년배들은 모두  발로 걷는 것을 자발적으로 그만두었다.

그때가 언제인가.

세븐이 열정을 부르던 시절, 힐리스를 사달라고 야심 차게 말을 꺼내는 순간 “힐리스를 타던 초등생이 뒤로 넘어지는 사고가..”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내 말을 가로막던 시절, 그리고 “야, 힐리스는 안 돼. 저거 못 봤어?”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던 시절,

바로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의 이야기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던 쯤에, 우리 학교에는 인라인 스케이트 열풍이 불었다.

초등학교 5학년, 그때는 어쩌면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던 시기였다.

많은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왠지 나도 책가방 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 같고, 우리 반 애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아도 이상한 것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반 여자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그것도 나와 친한 친구들이 점점 이 인라인 스케이트에 입문하자 나 역시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가져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마치면 마치 제2의 자아를 장착하듯 인라인 스케이트를 장착했고, 학교 앞을 횡단보도를 온 동네를 질주했다.

 그리고 점점 더 그들의 질주본능이 커져갈수록 인라인을 사야겠다는 나의 열망 또한 커져갔다.

약간의 눈물과 아주 많은 징징거림 끝에 나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장만했고, 나도 보라색 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친구들과 동네를 질주했다.

우리는 우리 초등학교 근처의 오르막길 맛집인 고등학교 등굣길 언덕을 굳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매일같이 방문했고,

옆으로 조심조심 걸어 오르막길을 올라가 3초 만에 시원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그날도 역시 친구들과 학교를 마치고 인라인을 타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오랜만에 아빠가 집에 있는 오후였다.

그때 아빠는 나에게 조금 어색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늘 바빴다. 아빠는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고, 집에 계신 날보다 안 계신 날이 더 많았다.

아빠가 집에 있는 기간은 일을 쉬는 기간뿐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서둘러 곧 다른 일을 알아보셨고, 나 역시도 아빠가 없는 우리 집에 익숙해졌다.

가끔씩 집에 돌아온 아빠는 일로 인해 지쳤지만 우리의 집에 돌아와 편해 보였고, 나는 그런 아빠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정한 아빠는 아니었지만 아빠가 우리 집을 위해 노력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 일에 지쳐 보이는 아빠의 고단함을 사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인라인을 갈아 신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려는 참이었다.

인라인 한 짝에 막 발을 집어넣으려고 할 때 아빠가 말했다.  

“밥 안 먹나. 밥 먹고 가라”

나 밥 안 먹어도 되는데, 아빠는 그동안 내가 밥을 먹었는지 라면을 먹었는지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아빠 나 밥 안 먹어’ 하고 그냥 나가려고 했지만, 그냥 나가면 그 말이 마음에 걸릴 것 같아 부엌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빠 나 빨리 나가야 해.”


“그래, 어제 엄마가 해놓은 고기 있네, 여기에 아빠가 밥만 볶아줄게. 먹고 가라.” 아빠가 프라이팬에 담긴 제육볶음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돼지고기로 하는 요리는 모두 참 잘하셨다. 돼지고기를 썰어 넣어 감칠맛이 나는 김치찌개, 돼지 목살을 길게 썰어 넣은 잡채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는 양파를 툭툭 썰어 넣고 빨갛게 양념한 엄마의 제육볶음을 좋아했다. 고추장과 간장 그리고 가끔은 매실액을 섞은 양념장이 냄비 옆 그릇에 담겨있는 날이면 그 날 저녁은 엄마가 제육볶음을 해주시는 날이었다. 빨간 양념이 투명하게 코팅된 양파와 고기가 있는 제육볶음은 그야말로 완벽한 밥도둑이다. 제육볶음은 급식에서도 자주 나오는 단골 메뉴 중 하나였는데, 엄마의 제육볶음에 익숙해져서일까. 나는 밖에서는 제육볶음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볶음밥 하는데 오래 걸려?”

“아니다, 아빠 이거 밥만 넣고 볶으면 10분이면 된다.” 아빠가 이 정도는 금방이라는 듯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로 올렸다.

10분이면, 5분 만에 다 먹고 나가면 그래도 괜찮겠지. 대충 셈을 두드려보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밥만 넣고 볶으면 된다는 아빠의 말과 달리, 아빠는 새로운 요리를 창작할 것처럼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모두 다 꺼내기 시작했다.

계란, 대파, 김치, 양파 그리고 “버터가 없네, 버터가 있으면 좋은데” 하며 마가린을 꺼내는 아빠를 보며

난 이 요리가 절대 10분 안에 끝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당시 세이클럽이 친구들과의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던 나는 초조해져 갔다.

나만 빼고 벌써 다 도착해있는 거 아니야?

 “아빠 나 빨리 가야 해”

 “그래 그래 이제 다했다.”

10분이면 다된다던 볶음밥은 냉장고 속 재료들을 썰고 볶는 시간만 10분이 경과하고 있었다.

아빠의 볶음밥이 완성되었을 때는 이미 지각 위기를 지나 지각 확정 완전 확정이었고, 나는 뭐가 나오던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많이 기다렸, 이제  됐다.”

 완성된 요리가 생쌀밥이여도 5초 안에 다 먹어버릴 기세로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나는 아빠가 식탁 위에 제육볶음밥을 올리자마자 얼른 한 숟갈을 떠먹었다.

잘게 부순 조미김의 달고 짠맛과 제육볶음의 흐물흐물한 양파 그리고 볶은 김치의 시고 단맛이 감칠맛을 돌게 했다. 아빠가 잘게 썰어 넣은 냉장고에서 찾은 회심의 김밥용 햄도 뜨거운 볶음밥을 콧김을 뿜으며 씹는 중간중간에 야무지게 씹혔다. 내가 좋아할 만한 재료를 모두 넣은 볶음밥이기에 맛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후다닥 넣은 한 입은 너무 뜨거웠고 오돌토돌 돋아난 혓바늘 위에 기름에 코팅된 밥알이 느껴졌다.


  아빠의 요리는 늘 그랬다. 늘 너무 뜨겁고, 이것저것 섞여 결국에는 ‘퓨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나 확실히 양은 많은 ‘푸짐’ 한식이 되었다.

요리를 자주 해주신 적은 없었지만 아빠는 요리를 할 때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다 꺼내서 썰기도 하고 볶기도 하며 요리왕 비룡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하여 치즈와 야채와 김치와 고기와 계란이 함께 볶인 냉장고 한마당 볶음밥이 완성되기도 하고, 온 집안에 버터향이 가득하다 못해 벽지에도 버터향이

날 것만 같은 기름이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가 완성되고는 했다.


 밥알이 너무 뜨거워서였는지 아니면 약속에 늦은 게 걱정되는 마음이 터져버렸는지, 갑자기 제육볶음밥을 한 숟갈 입안에 넣자마자 왈칵 울음이 터졌다.

맞은편에 앉아 나를 보던 아빠가 갑자기 당황했다.

“와그라노 밥이 너무 뜨겁나”

입 안에는 아직 볶음밥이 있었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걱정됐다. 학교 앞? 문구사에 모여있나? 다 먹고 어디로 가야 하지?

아빠는 내 그릇을 본인 쪽으로 당겨 숟가락을 들고 밥을 후후 불기 시작했다.

“밥이 좀 뜨겁나, 울지 마라”

배도 사실 별로 안고픈데 나중에 먹는다고 할걸.

“세희야 울지 마라, 아빠는 니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겠데이. 울지 마라”     

아빠가 후후 분 숟가락을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상하게 아빠의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아빠 나 이제 가야 해”

더 이상 뜨겁지 않은 제육볶음밥 한 숟갈을 받아먹으며 내가 말했다.

 “그래 이제 가라”

 벽에 기대 둔 인라인스케이트 두 짝에 발을 집어넣고 인라인 조임새를 드르륵드르륵 조이는데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육볶음밥을 너무 많이 남기고 와서 그런 건가.

아스팔트 골목길을 씽씽 달리며 친구들을 찾아다닐 때도 그 이상한 기분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과정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그 날 나는 결국 친구들이 있는 곳을 찾았고(그때 우리의 동선은 너무나도 선택지가 단출하여 학교 근처를 한 바퀴만 배회하면 친구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날도 뒤꿈치를 기울여 야무지게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인라인을 탔다.


 여기저기 긁히고 부딪히며 운동화 대신 평생 신을 것만 같았던 인라인 스케이트도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꺼내지 않게 되었고,

‘그때 내가 무슨 생각으로 학원 봉고차까지 인라인을 신고 탔을까’ 하며 혼자 가끔 감탄하는 어른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의 일들이 거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빠의 제육볶음밥을 먹었던 그 날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급하게 인라인을 타고 밖으로 나가기 전, 먹었던 그 밥 한 숟갈이 아직도 내 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앞으로도 남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빠의 제육볶음밥을 먹고 난 후로도 여전히 나에게 아빠는 조금 어색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참 이상하게도, 가끔 아빠와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는 날이면 제육볶음밥을 먹었던 그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빠에게 화를 냈지만 절대로 아빠를 미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제육볶음밥을 만들어주었던 아빠는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날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모른 척했지만 철없이 어렸던 그때의 나도 느꼈을 만큼 제육볶음밥을 만들어주셨던 아빠의 마음은 참 고맙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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