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더니 여기더라

장편 소설 <화니단로 여행자들> 1장, 제2화

by 산개

화니단은 인천공항 외곽의 낙후한 지역이었다. 여행에 지친 각국의 배낭여행자들이 잠깐 머물러 있기도 했으나 금세 떠나갔다. 들고 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화니단은 그대로 고여 멈춰 있는 동네였다.

화니단에 게스트 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겼나면서 화니단에 오랜 시간 머무는 여행객들이 늘었다.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서 매일 열리는 야시장은 어느덧 화니단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야시장 음식의 맛과 저렴함에 감탄한 외국인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화니단에서 더 머물기로 손쉽게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이들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방랑자일 뿐이었으므로 마음 닿는 곳에 한 해 정도는 일시적 정착을 하기도 했다. 야시장에서는 하나에 500원 남짓하는 싸구려 초밥과 하나에 400원 남짓하는 내장 꼬치, 불고기 간장 국수와 유부 우동 따위를 팔았다. 오후 6시 무렵 서로 다른 음식 트럭이 좁은 골목 가장자리에 열을 맞춰 주차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여행자들은 그때부터 슬금슬금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야시장 입구에 서 있는 술 트럭에서 데킬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야시장을 즐기는 첫 번째 묘미였다. 처음에 조용하고, 소심하기만 했던 야시장의 분위기에 데킬라가 뿌려지면 화니단 전체는 활기를 띠었다. 여행자들은 그 기분에 다음 날도 야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이건 모두 해영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해영은 화니단에서 창수를 만났고, 결혼까지 했다.


화니단 조성사업이 시행된 건 10년도 더 된 일이다. 화니단에 카지노와 복합리조트가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다. 해외 거대 자본이 화니단 조성사업에 몰려들었고, 게스트 하우스가 즐비했던 그 공간에는 600호실이 넘는 원룸과 투룸형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화니단은 차근차근 카지노가 들어설 준비를 마쳤다. 이제 곧 과거의 화니단은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출 것이다.

이건 모두 해영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브리즈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곳에 오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들은 모두 언제부턴가 화니단로에 살고 있었고, 필연적 이끌림으로 이곳에 모여든 것 같았다.


영양제를 파는 상점에서 일하던 막스는 아세로라 C를 매일 아침 8시마다 두 알씩 사가던 남자에게 하루는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비굴의 적들에게>라는 다소 비장한 제목의 시집 마지막 페이지에는 화니단로 46-2라고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브리즈의 주소였다.


사오와 마이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트럭을 샀고, 트럭으로 갈 수 있는 어디든 갔다. 트럭에서는 팟타이를 만들어 팔았는데 사오가 커다란 철판에 음식을 볶았고, 마이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일회용 접시에 팟타이를 담아 손님에게 내주었다. 화니단로에서는 매일 야시장이 열렸고, 야시장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벌이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화니단로의 분위기에 매료된 둘은 조금 더 오래 머물기로 작정했다. 이들이 완전히 화니단로에 눌러 살게 된 이유는 곽을 만났기 때문이다. 곽은 화니단로에 둘의 팟타이 가게를 차려주었고, 이들이 머물 수 있도록 방도 내어 주었다. 화니단로 꼭대기에 궁궐처럼 걸린 크고, 고급스러운 집이 곽의 것이었다. 곽은 돈은 많았지만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도, 아이도 없었다. 곽은 사오와 마이가 자신의 친아들처럼 굴어주기를 바랐다. 사오와 마이는 곽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었다.


폰은 새 삶을 살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화니단로에 왔는데 무려 열 한 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오며 찾으려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까먹고 말았다. 그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발길 닿는대로 움직였더니 여기더라 라는 말이었다. 인과가 맞지 않았고, 기억은 듬성 듬성 끊겨 있었다. 왜 브리즈까지 오게 된 것이냐, 다시 한번 물으면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글쎄. 분명 뭔가 이유가 있었는데 말이지.


칸을 찾아주겠니?

해영은 맞은편에 앉은 나를 건너보며 말했다. 그녀의 보조작가로 일하기로 결심한 뒤 무슨 일이든 잘 해내겠다 다짐했다. 아무튼 글을 쓰는 형태일 것이라 생각했으니 설레면서 긴장도 되었다.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해영의 보조작가로서 내게 첫 번째로 주어진 업무는 칸을 찾는 것이었다. 칸은 해영이 떠난 뒤에도 한참을 화니단에 머문 사람이었다고 한다. 화니단에 대한 드라마를 쓰려면 칸이 필요하다고 해영은 완강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화니단에 대해서도 화니단의 과거와 그곳에서 해영의 삶, 칸에 대해서 아주 방금 해영에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영에게 그렇게 하겠노라 말했다. 나는 해영이 나를 시험해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한번 보자는 심상으로.


해영은 내게 화니단로 브리즈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브리즈는 화니단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장소라고 했다. 그곳에서 칸의 행방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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