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팬티를 바꿔 입을 만큼 열정적으로 타인을 연기하기

장편 소설 <화니단로 여행자들> 1장, 제3화

by 산개

마티니를 한 번에 들이켰더니 일순 술기운이 올랐다. 가게 밖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갔다. 드랙 퍼포먼스 복장을 한 사람들 무리가 내 앞으로 지나갔다. 그들이 오르막길 너머로 희미하게 멀어졌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는 내 몸을 반삭의 여자가 받쳐주었다. 여자의 입술 틈으로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다. 여자는 내 양팔을 잡아당긴 뒤 내 앞쪽에 서서 썰매를 끌듯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한적한 골목까지 나를 끌고 간 여자는 내게 다리에 힘을 주라고 말했다. 발가락 끝까지 긴장하고, 복부와 엉덩이에 분산해 힘을 주세요. 여자는 관자놀이 옆으로 가드를 올리는 시범을 보였다. 여자는 주먹을 왼손, 오른손 차례로 뻗었다. 오른손 주먹을 뻗어 훅을 날릴 때는 오른쪽 뒤꿈치가 먼저 움직였다.


주먹의 힘은 팔이 아니라 복부와 다리 근력이 좌우해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녀는 이번에는 오른손 왼손 번갈아 어퍼컷을 날렸다.


한 손이 나갈 때 반대쪽 손은 가드를 올리고 있어야 한다는 걸 기억해요. 원투 어퍼 어퍼.


그녀는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내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복싱 동작을 반복해 선보였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골목 바깥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그녀의 주먹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왼손은 상대적으로 느긋하고 길게 뻗는다면 오른손은 더 빠릿빠릿하고 짧게 뻗었다. 팔이 되돌아오는 패턴과 다리가 움직이는 각도를 이해했을 때 나는 그녀의 무술을 춤으로 이해했다. 길고 마른 팔이 날갯짓하듯 단단하게 움직이고, 균형 잡힌 코어 근육으로 주먹을 뻗는다. 아직 누구도 공격하지 않은 그녀의 무술은 춤과 같았다.

그녀는 내게 자세를 잡아보라고 말했다. 나는 어깨 넓이로 다리를 벌리고 오른발을 살짝 뒤로 보낸 뒤 양주먹을 꽉 쥐어 관자놀이 옆에 위치시켰다. 그녀는 주먹으로 내 허벅지를 힘주어 내리쳤다.


이 상태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겠어요?


여자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짓된 표정으로 가슴팍에 칼을 숨기는 일뿐이었다.

여자는 내 손가락에서 크기가 줄어든 담배를 빼앗아갔다.


여자가 골목을 빠져나간 뒤 나는 술기운이 말끔하게 달아났다. 테라스에서 언니와 막스가 경쟁하듯 담배를 피워대고 있어서 가게 문 앞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사오인지 마이인지 아무튼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의 옆자리에 앉았다.

왜 혼자야?

내가 묻자 사오는 곽에게 갔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마이인 모양이었다.

네가 마이야? 내가 물었다.

나는 사오야. 그가 대답했다.

사오는 갔다며. 폰이 물었다.

그래 사오는 갔어. 말했잖아, 우린 사오도, 마이도 될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여자가 가르쳐준 것처럼 가드를 올리고 오른손 주먹을 그의 명치를 향해 뻗었다. 그가 억 소리를 내며 일순 몸을 반으로 휙 접었다.


누나는 지금 사오와 마이를 동시에 때린 거야.


그의 말에 폰이 낄낄대며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사오인지 마이인지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그는 테라스로 걸어가서 사장 언니를 향해 엉덩이를 흔들었다. 언니는 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린 뒤 손에 들고 있던 술잔에 남은 데낄라를 그의 엉덩이 쪽으로 부었다.

그가 입은 린넨 바지가 천천히 젖어 바지 안의 붉은색 팬티가 드러났다.


아, 그는 사오였다.


그들은 옷은 나눠 입었지만 팬티만은 섞이지 않게 주의했다. 사오는 붉은색 계열의 팬티만을 입었고, 마이는 푸른색 계열의 팬티만을 입었다. 내말에 폰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또 모르지, 둘은 섞이는 걸 즐기는 편이잖아. 일부러 마이가 빨간색 팬티를 입고 우리를 속이는 걸지도.


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사오로 추정되는 그를 바라봤다.


팬티를 바꿔 입을 만큼 열정적으로 타인을 연기할 수 있단 말이야? 폰 너도 그래?


폰의 얼굴은 붉은색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천장에 달린 미러볼을 가리켰다.


브리즈에서는 쉬운 일이지.


폰은 테이블의 빈 잔을 챙겨 자리를 피했다.

미러볼 조명이 푸른색으로 바뀌자 사오의 팬티는 푸른색처럼 보였고, 한순간에 사오는 마이가 됐다.


반삭의 여자 옆에 앉아 있던 긴머리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반삭의 여자는 막걸리 두 병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라스에 앉은 언니를 향해 반삭의 여자는 자신의 머리를 가져갔고, 언니는 그녀의 두피 정중앙에 입을 맞췄다.

얘 또 안 오면 언니가 찾으러 간다. 언니의 목소리는 걸걸하게 갈라져 오르막 너머로 멀어지는 여자의 뒤꽁무니에 찰싹 달라붙었다.


반삭의 여자가 떠나자 브리즈에 앉아 있는 게 순간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오늘도 아침 9시가 될 때까지 이곳에 죽치고 앉아 있을 것이다.

사오 혹은 마이, 폰, 그리고 사장 언니와 크히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저 수많은 남자들과 함께.


칸을 찾을 수 있을까.